4차 산업혁명 시대, 어떻게 일할 것인가 - 기하급수 기업을 만드는 비즈니스 혁신 전략
전성철 외 지음 / 리더스북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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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런 책들은 왜 하나같이 별로인지 모르겠다. 구한말에 잠들었다 21세기에 눈을 뜬 아저씨들에게 현대 세계를 유람시켜주는 책인 것 같다. 구체적 방법은 하나도 없이 사례와 현상만을 얄팍하게 늘어놓는데 일종의 강의 원고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자들이 기업 교육을 기획하는 사람들이라 그 포맷에 완전히 인이 박힌 것 같다. 강의에서 Deep한 토론을 벌일 수는 없으니까, 참신한 생각과 주장은 버리고 누구나 알만한 회사들의 성공 사례를 팜플렛처럼 펼쳐놓는다.


이런 책이 별로인 이유는 저자들이 독자로 규정하는 집단에서 내가 너무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책과 강의도 유용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의 기업에서 의사결정권자로 일하고 있으니 이 회사의 전략은 나름 탁월하다. 나도 나이면 들면 이런 얘기에 혹하게 될까?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주제들을 언급하지만 말 그대로 언급에 그치기에 딱히 할 말이 없다. 요약하면 세상이 급변하고 있으니 당신의 회사도 그 속도에 맞춰 '트랜스포메이션'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탈바꿈 시킨 이건희 회상의 신경영 선언이 인용되는 것은 당연하다.


저자들의 설득 방식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공포와 희망, 그리고 해결책. 첫번째 단계는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여기서 삐끗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최강의 육식 공룡이라도 안전하지 않다. 위협이 같은 공룡이 아니라 우주에서 날아오는 운석이라면 내가 지구에서 가장 센 동물이라 한들 무슨 소용이있겠는가? 다음 단계는 운석 충돌 후에도 살아남은 공룡들의 적응기를 보여주며 당신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손 쉬운 해결책은 마치 그 내용의 부실함을 숨기려는 듯 재빠르게 떠올랐다 순식간에 사라진다. 뭐지? 뭐지? 방금 나타난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람들은 사라진 진리의 흔적을 찾아 우르르 달려나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성공적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해 강력한 '거버넌스'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이 책의 독자와 목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거버넌스는 특정 집단이 변화를 주도하는(주로 최고 의결기관 혹은 Boss) 전형적 탑다운 방식을 벗어나 소속 구성원들 혹은 이해당사자들간의 협치로 이뤄지는 정책 결정 방식을 뜻하지만 말만 그럴듯하지 이렇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버넌스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그대로 답습한다. 유권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라고 뽑아 놓은 국회의원들이 당선만되면 본분을 망각하고 유권자 위에 군림하는 것처럼, 협치를 강조하지만 거버넌스도 각 부서의 엘리트들을 소수로 차출하여 구성한다는 점에서 결국 협력 기관이 아닌 권력 기관으로 변질될 우려가 높다. 생각해보라 그 똑똑한 사람들이 내린 결정에 누가 감히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단 말인가? 거버넌스는 진리의 심판관이 될 수 밖에 없다. 거버넌스가 내린 결정은 막강한 권한을 이용해 조직에 강제로 이식된다. 이 방법이 최고의사결정권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이유는 곳곳에서 일어나는 반론을 효과적으로 무시할 수 있고(겉으로 보기엔 이해당사자들의 협치에 의해 결정된 사안이니까 보스는 뒤로 물러서 너희들이 결정한 사안 아니니? 라고 되물을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변화에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독자들은 역시 폭탄주 문화에 익숙하고 토론을 귀찮게 여기는 아저씨들인 걸까? 


4차 산업혁명을 찬양하면서도 아직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 운동이나 그 유명한 삼성그룹의 구조조정실에 향수를 느끼는 걸까? 이런 교육이 중견기업의 최고경영자나 팀장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좀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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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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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은 냉소와 비아냥의 천재다. <넛셸>이후 그를 완전히 신뢰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솔라>는 그 다짐이 무너지지 않으리란 걸 확신하게 만들어줬다. 열기대신 차가운 냉소와 회의로 이글대는 태양. 제목에서부터 골수 회의주의자의 존경할만한 악취미가 느껴진다.


주인공 마이클 비어드는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다. 결혼을 네번했고 그때마다 본인의 외도로 이혼을 했다. 네번째 결혼은 만만치 않았는데 마이클의 외도를 눈치 챈 아내가 당당히 맞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다. 마이클은 질투심에 휩싸인다. 뭐? 지금까지 자신이 상처줬던 모든 여자들의 마음에서 아무 것도 배운 게 없는 이 남자는 아내의 외도남을 찾아가 그 부도덕함을 훈계하려 한다. 마이클이 얻어낸 건 외도남의 속죄대신 눈이 번쩍이는 주먹이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마이클은 뚱뚱한 몸을 뒤뚱거리며 가까스로 위기를 탈출한다.


어느날 해외 출장에서 돌아왔을 때 마이클은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목욕 가운을 걸치고 침대에 앉아 있는 - 그 속은 분명 나체였던 젊은 연구원을 발견한다. 마이클은 아내에게 그 연구원을 딱 한 번 소개해준 적이 있다. 더 파렴치한 외도로 아내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리리라 계획했던 마이클 비어드의 전쟁은 이 대목에 이르러 그야말로 대패를 하고 만다. 한때는 천재라 불렸던 노벨상 수상 물리학자. 하지만 이제 걷기도 힘든 돼지로 늙어버린 남자는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용서를 구하기 위해 마이클에게 달려오던 젊은이가 카펫을 밟고 미끄러져 유리 탁자에 빅뱅을 일으킨 순간 그의 머릿속에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마이클 비어드에겐 두 개의 사실이 있다. 하나는 아내의 외도남이 자기 집 침실에서 싸늘한 시체로 누워 있다는 것. 또 하나는 그 침실에 자신을 때린 또 다른 외도남의 흔적이 가득하다는 것. 노벨상을 수상한 천재 과학자 마이클 비어드는 이 두 개의 사실을 융합해 하나의 복수를 만든다.


<솔라>는 태양열을 이용해 에너지 혁명을 일으키려는 한 물리학자의 삶을 그리지만 과학 소설은 전혀 아니다. 소설에는 태양보다 더 들끓는 추한 욕망의 인간들이 등장한다. 마이클은 아내의 외도남이자 죽은 연구원의 연구자료를 훔쳐 에너지 혁명의 싹을 틔웠음에도 그것이 100% 순수한 자신의 연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솔라>는 천재적인 희극배우가 비극의 밧줄 위를 외발 자전거로 달리는 듯한 소설이다. 이야기는 절대적 비극을 향해 치닫지만 천재적 희극 배우의 우스꽝스런 연기가 우리로 하여금 그 사실을 잊게 만든다. 도대체 얼마나 인간 본성에 회의적이어야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그를 이토록 회의적으로 만든 건 도대체 어떤 사건과 경험일까? 이언 매큐언은 내가 걷는 길의 끝에 서 있는 거대한 산같다. 나는 감히 그 산을 오르려하지만 아직 그 밑에도 도착하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다.


사람들은 긍정적 태도와 행복한 말들이 사람을 구원한다고 믿는 것 같은데, 내 생각은 많이 다르다. 나는 오히려 비관주의자만이, 인간의 선한 본성을 단 한톨도 믿지 않는 회의주의자만이 이 세상에서 찰나나마 구원의 순간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뒤틀리지 않은, 고귀한 생각의 그들은 악으로 들끓는 이 세상에 매번 배신감만을 느낄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래도 인간은 선하다는 맥없는 자위일 뿐이다. 하지만 그 반대에 서 있는 우리는, 뒤틀린 괴물이라 손가락질 받는 우리는, 바로 그런 인간이기 때문에 악으로 들끓는 이 세상에 찰나처럼 스쳐지나가는 선의 불씨에도 기적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선한 행동이 마땅히 해야만 하는 당연한 일이라면 우리가 왜 거기에 감사를 표해야 할까? 나는 인간이 본디 악하다고 믿기에 가뭄에 콩나듯 보여주는 그들의 선의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이 세상에서 기적을 경험하는 건, 오직 회의주의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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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코노히 1 - 시무룩 고양이
큐라이스 지음, 손나영 옮김 / 재미주의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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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양이가 세상을 지배했다. 농담이 아니다. 10년전만 해도 고양이는 애완동물의 세계에서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아파트 단지 단지마다 그득 그득 들어찬 길고양이들은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때는 길고양이라는 말도 쓰지 않았다. 도대체 뭘 훔쳤갔다는건진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이 요망한 동물을 도둑 고양이라고 불렀다.


야생의 왕. 너구리가 흔하지 않은 도심에서 고양이는 생태계의 정점으로 군림했고 높은 번식률은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어디서부터 변화가 시작된걸까? 강아지들이 따뜻한 안방에 누워 안이한 세월을 보내는 동안 고양이는 야생을 넘어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기를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인터넷과 SNS 각종 커뮤니티를 점령한 고양이 사진들을 보라. 캐릭터 상품에서부터(그 유명한 헬로 키티는 사실 고양이가 아니다. 헬로 키티는 영국 출신의 소녀로 불쪽에 나 있는 수염은 수염이 아니라 소녀의 솜털이다. 못 믿겠으면 캐릭터를 만든 회사의 소개를 읽어보라) 책, 드라마, 영화, 고양이가 나오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의심없이 지갑을 열고 있다. 명심하라. 오늘날 돈을 벌고 싶다면 당신은 고양이를 그려야 한다. 날리는 털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람도, 아무리 모래를 갈아 줘도 풍기는 그 끔찍한 오줌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도 종이에, 열쇠 고리에, 화면에 나온 고양이 만큼은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 1인 노동가구가 늘어날수록 손이 덜 가는 고양이는 더더욱 각광을 받을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미래의 억만장자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라잇 나우, 고양이의 세계로 뛰어들어라.


"인생은 언제나 흐림 뒤 맑음" 시무룩한 표정이 매력터지는 애잔보스 고양이 네코노히의 '석세스' 도전기. SNS와 대형 커뮤니티를 뒤집어 놓은, 지금 가장 힙한 네컷 만화!


위 띠지의 설명처럼 만화는 시무룩 고양이 네코노히의 거듭되는 실패담을 다룬다. 거대 서사에 질렸거나 거기에 집중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일상 생활의 소소한 실패담은 잔잔한 공감을 일으킨다. 이렇게 대단치 않은 이야기가 SNS와 대형 커뮤니티를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이유는 복잡하고 짜증나는 세상이 주는 피로감때문일 것이다. 이 피로감때문에 현대인은 점점 더 세상과 괴리되고 있다. 현존하는 문제에 맞서기 보다는 눈을 돌리고 피하는 것이다.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끈을 끊고 몸을 말아 내 삶을 단단히 안아쥔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폭넓게 유통될 수록,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고 믿을수록 인간은 점점 더 파편화되고 타인, 그리고 세상과 소통 없는 고립된 삶을 살거라 생각하지만 이렇게 불편한 얘기는 하는 사람도 힘들고 듣는 사람도 짜증이나니 오늘은 그만하자. 어차피 목적이 다른 책. 인생이라는 것도 강약약 중간 약약 리듬이 있는 거니까, 항상 진지할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뚱보에 딱히 귀여운 상도 아니고 사람으로 따지자면 중년의 아저씨 같은 고양이지만 독특한 작화와 색, 거기에 맞는 행동의 조합으로 애정을 불러일으킨다. "인생은 언제나 흐림 뒤 맑음"이라는데,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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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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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은 이 책에서 2,500년간 기록되어온 역사를 탐구한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에서 시작하여 사마천, 이븐 할둔, 랑케,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 나아가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유발 하라리까지 열다섯명 가량의 역사가와 그들이 서술한 역사책을 소개한다. 유시민은 "그들이 왜 역사를 썼는지, 무엇의 역사를 서술했는지, 왜 하필이면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했는지 알고싶어서 귀를 기울였다." 고 말한다.


굴곡 많은 현대사를 살아온 그에게 역사만큼 위안이 되는 이야기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역사를 읽는 이유가 우선 재미있기 때문이고, 현재를 이해하고 싶어서, 또 미래를 전망하고 싶어서 라고 말한다. 그는 한때 자신이 처했던 고난을 위로하기 위해, 또 그 고난의 이유를 알고 싶어서, 나아가 그것을 극복할 방법을 찾기 위해 역사를 읽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쓰는 사람은 어떨까? 역사가들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광활한 백지 앞에 앉아 먼지나는 사실들을 꺼내 냄새 맡고 씹어보며 그 감정과 생각들을 기록하는 걸까?


"역사가는 존재의 유한성을 넘어서고 싶어한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도 가치를 유지할만한 사건과 사실을 이야기하고, 거기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한다. 역사가는 또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사상과 감정을 표현해 타인의 이해와 공감을 받으려한다."


남자로선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당했으면서도 사마천이 끝까지 살아남아 '사기'를 집필한 이유를 생각해보자.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건 이 뛰어난 역사가에게 궁형을 내린 멍청한 왕이 아니라 사마천 그 자신이다. 죽간과 먹, 붓을 이용해 내린 우아한 복수. 그것이 바로 사마천을 구원했던 것이다. 유시민의 말을 곰곰히 듣고 있자니 그렇다면 유시민이 역사를 쓴 이유는 무엇인지, 무엇의 역사를 서술했는지, 왜 하필이면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했는지 알고 싶어졌다.


역사보다 진위에 대한 시비가 첨예한 학문은 없을 것이다.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일반 논문의 데이터를 조작하고 왜곡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람들은 역사의 왜곡을 훨씬 비윤리적으로 느끼며 거기에 훨씬 더 강하게 공감한다. 한마디로 분노의 크기가 다른 것이다. 이유가 뭘까? 역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완전히 객관적인 역사가 존재할 수 있을까? 사악한 당나라의 백만 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을 찬양한다면 그것은 객관적인 역사인가 아니면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주관적 역사인가? 객관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진정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인가?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역사가가 존재하지 않는 역사라면 말이다.


랑케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 사실 그 자체만을 기록하려 노력했지만 그의 책에 실린 역사적 사실과 그렇지 못한 사실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걸까? 역사가는 왜 다른 사실 대신 '그' 사실을 기록했을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빠짐없이 기록한 비디오라면 그것을 객관적이라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역사는 단순한 사실의 총합이 아니다. 역사란 여기저기 퍼져있는 고엔트로피 상태의 사실들을 역사가의 관점과 해석으로 줄지어 세워 저엔트로피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한마디로 역사가 없이 역사는 존재할 수 없다. 이 말은 인간이 존재하는한 역사는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유시민은 어쩌면, 진보 지식인에게 부여되는 결벽적인 객관성에 피로를 느꼈을지 모르겠다. 그는 여전히 똑같은 생각을 갖고 일관된 주장을 펴고 있지만 그가 패자의 입장이었을 때, 그가 약자의 입장이었을 때 사람들은 그의 말에서 더 많은 객관성을 느꼈던 것 같다. 그는 사람들을 탓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부당함을 느꼈을 수는 있지만 그는 충분히 그런 생각에 공감했던 것 같다. 그는 이제 대중과 한 발짝 떨어져 원래 자신이 서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무리한 추측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가 왜 역사가들의 시선에 자신의 시선을 집중했는지 알 것 같다. 그는 역사적 진실을 획득한 현인도 아니고 그 진리를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구원자도 아니다.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는 그런 일을 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된다. 수천년 동안 존재해왔던 역사가들과 마찬가지로 유시민 또한 자신의 관점에 따라 역사를 수용하고 해석하는 인간일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주장에 동의하거나 지지하거나,


혹은 자신의 관점에 따라 새롭게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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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모든 순간의 물리학 -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물리학의 대답 카를로 로벨리의 우주 3부작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현주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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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의 물리학>은 상대성이론에서부터 양자 역학, 입자 물리학, 우주의 구조, 공간과 시간, 블랙혹의 비밀에 대해 얘기하지만 이 중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이 책은 너무 짧다. 리디북스의 작은 크기 eBook으로도 고작 146페이지 밖에 안되는 책에 앞서 언급한 주제들을 담는게 가능하리라 생각하는가? 처음 이 책을 실행했을 때 나는 기기 오류인줄 알았다. 학술 세미나의 팜플렛 수준도 되지 않는 분량에 전 우주의 비밀을 몰아 넣으려다보니 사지 절단을 넘어 몸통과 머리까지 버린 뒤 한 줌의 머리카락만 담는 꼴이 됐다. 아무리 쉬운 대중서를 표방한다지만 대중을 너무 무시하는게 아닌가? <모든 순간의 물리학>은 쉽게 쓰는 것과 덜 쓰는 것을 완전히 혼동한 것 같다.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는 복잡한 공식과 전문 용어 없이도 훌륭하게 우주를 설명한다. 이 책이 쉬운 이유는 상대성이론과 양자 역학에 대해서만 수백 페이지를 할애하기 때문이다.


맛만 보여주고 이후의 심화 과정은 스스로 선택하게끔 하려는 의도도 완전히 헛다리를 짚는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놨습니다 라고 하면 한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질거라 생각한걸까? 그 세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테지만 이제 막 우주의 신비를 탐험하려는 초심자에게는 "일단 한번 만나" 보라는 소개팅 남의 외침처럼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나는 이 책이 내놓는 수많은 주제 중 그 어디에도 입맛이 동하지 않았다. 진도 빼기에 급급한 강사처럼 놀라운 사실을 열거할 뿐 그것이 왜 놀라운지는 효과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한 마디로 서사가 부족하다. 이렇게 어려운 주제를 다룰수록 서사는 더 풍부해야 한다. 사람들이 역사는 싫어하지만 역사 이야기는 좋아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건 물리도, 우주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장, 시간과 블랙홀의 비밀에 어느 정도 희망을 걸었지만 이마저도 완전히 박살나버렸다. 내가 원서의 편집자였다면 각 주제 뒤에 더 읽어볼만한 참고 서적이라도 남겨 성난 독자들의 분노를 가라앉히려 했겠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자에게 그런 짠내나는 요청을 할 수는 없었나보다. 간만에 별들의 세례를 받으려던 내 꿈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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