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 포스트 AI 시대, 문화물리학자의 창의성 특강
박주용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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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시간 대학교에서 통계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KAIST 포스트 AI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학창 시절에는 미식축구에 빠져 '울버린 매서드'라는 전미 대학 리그 네트워크 랭킹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좋아한다. 한때는 사진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문화물리학자라고 자칭하는데, 아마도 인류와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진 과학자인 듯하다. 지금은 KAIST 문화기술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과학과 문화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처음에는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기술에 깃든 과학의 원리를 밝히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다 보니 진정한 연결고리는 콘텐츠를 만드는 기술 이상의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저자가 풀어낸 이야기들을 모아놓았다. 때로는 미술이, 때로는 영화가, 그리고 음악이, 스포츠가 과학이라는 외피를 둘러쓰고 등장한다.


인문학에 빠진 과학자만큼 무서운 게 없다. 구양진경의 심법에 구음진경의 초식을 갖춘 셈이니까, 어떠한 주제로도 논박이 가능하고 무슨 일에도 자기만의 주장을 내놓을 수 있다. 쉽게는 르네상스인이라고도 하는데, 모나리자를 그리면서도 헬리콥터를 설계할 줄 알았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빗대어 만든 말이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어딘지 모르게 '인간'에 경도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인문을 과학보다 더 큰 일로 느끼는 것이다. 마치 사울이 폭풍 속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고 가장 열렬한 사도가 된 것처럼(심지어 예수의 제자도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이런 태도는 특히 AI기술을 대할 때 더 강해진다. KAIST에서 포스트 AI 연구소장을 역임하기까지 했으니 AI 대혁명으로 들끓는 지금보다 한참 전부터 AI를 연구해 왔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AI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기술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게다가 저자 같은 전문가의 눈에는 현존하는 AI기술의 치명적인 단점들이 얼마나 많이 보이겠는가. <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라는 제목은 AI기술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나도 지금의 AI 기술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발전 속도는 공포스러울 정도다. AI가 만들어내는 글과 음악, 이미지들은 얼핏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고, 판박이처럼 서로가 똑같아 보이기도 한다. 인간이 '작정하고 만든' 콘텐츠와 비교해 보면 너무나도 허술한 점이 많은 것이다. AI가 인간의 단순 노동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는 있겠지만 창의력이 고도로 요구되는 분야를 대체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 인간은 영원히 기술을 지배하며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는 '산업'의 힘을 지독하게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산업은 늘 부가가치에 방점을 찍어왔다. 떼 돈을 벌 수 있는, 불가능한 영역에 전력을 다해온 것이다. 그래서 AI는 가장 창의적이라고 알려진 영역, 그러니까 큰돈이 몰리는 영역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창의적인 인간이 가장 먼저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정말로 인간 시대의 끝이 도래한 걸까? 한때는 우리 인류에게도 개인이라는 개념이 존재조차 하지 않던 시절, 신이 이 세상을 전부 지배하던 천년의 암흑기가 있었다. 하지만 14세기 무렵 암흑의 껍질을 깨고 이른바 '인본주의'라고 부르는 사상이 태동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과거의 개념은 사라지고 새로운 미래가 열린 것이다. 지금 우리가 믿는 인간의 모습, 본질, 가치들이 생명이 태어나던 시절부터 존재한 개념처럼 느껴지겠지만 이는 역사적, 문화적 산물에 불과하다. 태양 아래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진리뿐이다.


인간은 과거를 학습해 모양을 가다듬은 뒤 미래로 던진다. 미래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과거 혹은 수정된 과거다. AI는 인간이 했던 말, 인간이 썼던 글, 인간이 찍었던 사진과 영상을 학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AI의 생성물들을 단순히 학습된 결과를 기계적으로 내놓은 것이라 폄하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역사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단언컨대 인간의 시대는 끝난다. 하지만 그 뒤에 오는 건 인간의 파멸이 아니다. '새로운 인간'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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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조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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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조>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구성이 엉성한 소설이다. 대도의 완벽한 사기극을 기대했건만 '2인조'는 잡법이라고 보기에도 한참이 모자란 얼빵이 들이었다. 너무 황당해 화도 안 난다. 3, 7, 12, 19, 28, 이런 식으로 페이지를 건너뛰어 읽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헐겁다. 다음에 읽은 <홍학의 자리>가 아니었다면 정해연을 다시 읽을 일은 영영 없었을 것이다.


<2인조>는 교도소에서 만난 잡범 2명이 인생을 역전시킬 큰 건을 만들기 위해 다시 뭉치면서 시작한다. 하나는 사기, 다른 하나는 절도, 둘은 각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갖췄기에 합이 잘 맞을 거라 생각했다. 출소 후 둘은 최근 재개발로 뭉칫돈이 쏟아져 들어오는 신도시로 향한다.


건수를 물색하던 두 사람은 한 노인을 차로 치는 교통사고를 내버린다. 훔친 차에 갓 출소한 두 사람. 일이 꼬이지 않길 간절히 바랐던 두 사람은 노인이 하자는 대로 이끌려 말도 안 되는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 물론 두 사람에게도 속셈은 있었다. 얼떨결에 따라 들어간 노인의 집은 번드르르했고 착수금을 꺼내준 금고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금은보화 앞에서 세 사람의 치졸한 수싸움이 시작된다.


이후의 이야기들은 반전에 반전에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지만, 전율이 인다거나, 폐부를 찌르지 않고 난데없이 떠올라 누더기처럼 엮인다. 그 사이로 알맹이들이 빠지고 나면 남는 건 말짱 꽝. <2인조>는 장르 소설이다. 이런 책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임프린트다. 오마카세에서 김치를 달라고 할 수 없듯이 라면집에서 와사비를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서로 다른 것이고, 우열은 없다. 그래도 뭔가 아쉬운 건 사실이다.


소설이 짧은 건 대단한 미덕이다. 술잔이 식기 전에 화웅의 머리를 들고 온 관우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은 독자라면, 어디 한 번 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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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의 이슈 한국사 - 둘만 모여도 의견이 갈리는 현대사 쟁점
박태균 지음 / 창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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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 교육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다. 요즘 들어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역사는 늘 천대받는 종목이다. 아무래도 역사는 실용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많은 것 같다. 훨씬 모호하고 어려운 인문학이 나름 각광을 받으며 명맥을 유지한 이유도 출세에 유용하다는 느낌을 절묘하게 포장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역사는 뭐가 없다. 역사를 잘 안다는 건, 그저 과거에 벌어진 일들을 달달 외우는 것에 불과하다. 역사 얘기를 하는 사람은 지식을 자랑하고 싶은 꼰대 부장님 뿐이다. 지루에 고루를 더했으니, 무슨 수로 살아남겠는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역사는 이제 종교와 마찬가지로 금기가 되어버렸다. 역사를 그저 사실로 여기는 건 굉장히 순진한 생각이다. 현대인이 점점 탈역사화되고 있다면 관심 가진 이들의 역사는 '정치화'되고 있다. 무엇이 맞고 틀린 지, 저마다의 이념에 따라 마음껏 구부리고 찢고, 갖다 붙인다. 대한민국의 근대사는 여기에 종교화까지 더해지고 있다.


2024년 광복절은 정말 슬펐다. 어디서부터 대한민국인가 하는 문제로 두 집단이 첨예하게 대립한다는 사실을, 그 사람들이 같은 나라의 국민으로, 같은 땅에 살고 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했고, 이 골이 얼마나 깊은지 경험했다. 나는 일본이 정말 미웠다. 미국도 미웠다. 소련도 미웠다. 북한도 미웠다. 그러나 가장 미운건 그 수많은 시간 동안 과거를 말끔하게 매듭짓지 못한 우리 자신이었다.


대한민국 근대사는 청산과 인정, 반론이 어렵다. 모두 정치화, 종교화됐기 때문이다. 아무도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는 잘못된 사실 관계에 기인한 것이 많다. 그것이 그대로 확정되어 교육을 통해, 동일한 이념을 지지하는 집단을 통해 확산한다. IS가 광신도들을 모집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에겐 '성전'말고 할 게 없다.


<박태균의 이슈 한국사>는 근대사 중에서도 하나하나가 리히터 규모 10의 파괴력을 갖는 쟁점만을 다룬다. 너무 두려워 입이 아니라, 마음속에 올리기조차 어려운 이야기들. 우리가 쉬쉬하고 외면할수록 더 더럽고, 더 냄새나고, 더 추악해질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를 이토록 차분하고 우아하게 논했던 책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저자는 유려하게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그래서 재미는 좀 덜할 수 있겠지만.


내 말이 맞다는 걸 광속으로 확증해 주는 책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평양냉면 같은 글 맛에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번 읽고 따져보자. 나의 생각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말로 뭐가 맞고, 뭐가 틀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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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찰리와 폭스트롯 로미오 아작 YA 9
존 발리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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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찰리와 폭스트롯 로미오>의 저자 존 발리는 휴고상을 3회, 네뷸러상 2회, 로커스상을 10회나 수상한 유명 SF 작가임에도 한국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가다. 나도 처음이다. 책 표지가 캐주얼하고 220p밖에 되지 않아 골랐다. 심지어 신인인 줄 알았다.


존 발리 얘기를 좀 더 하면 보수의 왕국 텍사스에서 태어나 지금은 낙후한 러스티 벨트 중 하나이나 당시에는 잘 나갔을 공업주 미시간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전공은 물리학.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영문학으로 전과했으나 그마저도 끝내지 못한 채 친구와 미국 횡단 여행에 나선다. 바야흐로 대 히피의 시대였던 것이다.


이런 자유분방한 태도와 진보적 사고가 작품에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다. 자유와 사랑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탐구하고 독특한 세계관으로 독자를 매료시키며 복잡한 현실 세계의 문제를 다루는 휴머니스트. 이 책의 내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잉글리시 쉽독이 수십 마리 등장하고 어린 여자애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배경은 건담에서 볼 법한 우주 콜로니 같은 곳인데, 달 궤도를 돌고 있다. 번역이 '바퀴'로 된 탓에 좀 깨긴 하지만 어쨌든 '돈다'는 속성만큼은 정확히 반영하고 있으니 넘어가주자.


이 바퀴는 몇 년 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아 그 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 근처에 다가오는 물체는 모두 레이저로 파괴하기 때문에 접근할 방법이 없고, 원격 조종은 고장 났다.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려 들어갈 방법을 찾는다 해도 살아 돌아오는 건 불가하다. 바이러스는, 달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 위를 도는 최첨단 콜로니를 만들 정도로 뛰어난 문명을 이룬 미래인에게도 여전히 미지의 괴물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바퀴가 점점 달의 인력에 끌려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대참사를 피할 수 없다. 달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니까. 달의 행정 기관은 다량의 미사일을 쏟아부어 바퀴를 산산조각 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그 안에 어린 소녀 한 명이 생존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존 발리 얘기를 길게 했으니 이 뒤 이야기들이 어떻게 전개될지 얼추 그려질 것이다. 막 흥미롭고, 막 짜릿하고,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책은 아니지만 짧은 길이만큼 속도는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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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미래 -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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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코로나 시기에 나와 공간의 미래에 대해 얘기한다. 이 대단한 전염병은 우리의 시대를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 시대로 바꿔놓았다. 상업 중심지에 불멸의 성전처럼 서 있던 대형 쇼핑몰들은 폐허가 되었고 일 년에 일조씩 적자를 내던 쿠팡은 유통 거물 신세계를 가뿐히 즈려밟았다. 공간이 해체되면서 권력이 재분배된 것이다.


코로나가 몰고 온 재택근무 열풍은 꿈에 그리던 일상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처럼 보였다. 출퇴근이 사라지면 기업은 더 이상 중심가의 노른자땅 위에 서 있을 필요가 없어진다. 직주가 얼마나 근접하냐에 따라 수억 원씩 차이가 나는 아파트의 가치도 재평가가 불가피하다. 대도시에 모여있을 필요가 사라진 사람들은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 점점이 흩어져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도시는 사라졌는가? 많은 기업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히 재택근무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도시는 전보다 더 북적거린다. 우리가 도시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직주근접과 부동산 투자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은 여러 가지의 생각이 부딪히고 융합하는 용광로의 역할도 한다. 시골보다 도시가 역동적이고, 흥미롭고, 더 많은 기회가 생성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정적으로 도시는 젊은 남녀의 더 많은 만남을 보장한다. 대 코로나 시대에도 강남과 홍대의 클럽은 다른 나라 이야기가 펼쳐졌었다. 연애를 아무리 틴더로 시작하더라도 그 완성은 오프라인 만남에서 이뤄지는 법이다. AI는커녕 AI할아버지가 와도 강릉에 사는 상철과 목포에 사는 현숙의 연애는 오래갈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인류 역사에는 우리를 멸망시킬 수도 있었던 팬데믹이 몇 번이나 존재했었다. 그럼에도 도시는 귀신같이 부활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도시는 위기를 맞을 때마다 해체가 아닌 재구성을 택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공간도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논의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유현준 교수가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팬데믹 이후와 결을 맞추고 있는지는 솔직히 좀 의심스럽다. 코로나는 핑계일 뿐이고, 유현준의 상상극장을 팬데믹에 끼워 팔고 있는 건 아닌가? 이 책은 유현준 교수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곳곳에서 빛을 발함에도 불구하고 산만함을 지울 수가 없다.


도보도시와 발코니가 있는 집, 낡은 건축법을 없애고 다양성과 창의력을 발휘하는 건설사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자는 주장, 그리고 지하에 하이퍼루프나 로봇들이 운영하는 물류 시스템을 만들자는 이야기. 이런 것들은 사실 저자의 유튜브나 다른 책에서도 비슷하게 등장하는 이야기다. 딱히 코로나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이리저리, 여러모로 돌려봐야 끼워 맞출 수가 있다.


여의도에는 유현준 건축사무소가 맡은 재건축 단지가 있다. 건물 외벽에 그 사실을 홍보하는 대형 현수막을 걸어놔 지나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볼 수 있다. 여의도라는 입지에 유현준이라는 브랜드가 추가됐으니 얼마나 좋은 아파트가 나오겠는가! 사실 나도 너무너무 기대가 된다. 하나같이 똑같은 디자인, 그걸 탈피하겠다고 수두 환자처럼 들쭉날쭉 발코니를 빼놓은 아파트들. 생각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답답한 건축계에 유현준의 아파트가 벼락같은 깨달음을 내려주길 바라면서, 한편으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이 똑똑한 교수님이 어떤 선택을 할지, 정말로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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