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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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쓰인 장르 소설을 읽는 건 언제나 곤욕이다. 그 당시에 이런 이야기라니, 바로 이 이야기가 우리가 알고 있는 장르의 시작이다, 라며 그 가치를 상기시키는데 솔직히 나는 셰익스피어나 호메로스 등 이른바 전설이라 불리는 작가들의 책에서조차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나에겐 고전적 가치를 판별하는 심미안이 눈꼽만큼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전설이다>는 두 번이나 영화화가 됐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두 번 다 엉망이었다고 한다. 두번째 영화는 나도 직접 봤다. 윌 스미스 주연에 내가 진짜 좋아하는 영화 <콘스탄틴>의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좀비 영화 매니아라면 그럭저럭 볼만한 수준이었다고 생각한다. 좀비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만 빼면.


감정을 가진 좀비라...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 그건 좀비에 대한 모독이었다. 웨스턴 컬쳐를 대표하는 두 괴물은 뱀파이어와 좀비라고 생각한다. 둘은 완전히 다른 존재지만 사실 한 쌍으로 읽을 수 있는데, 그건 뱀파이어가 몸은 죽었지만 정신이 살아 있는 존재고 좀비는 몸은 살아있지만 정신이 죽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뱀파이어에겐 사랑하는 연인이 있고 그들이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반면 좀비는 그저 식욕에만 충실한 괴물로 그려지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 좀비가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다니, 쌩뚱맞다는 말이 딱 이 때를 위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원작 <나는 전설이다>를 읽으며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이 소설에 등장하는 괴물은 '좀비'가 아니었다. 그들은 뱀파이어였다. 낮에는 어두운 건물 속에 들어가 잠을 자다 해가지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마늘과 십자가, 거울을 무서워하고 사람과 대화도 나누며 도구를 사용하기 까지 한다. 그들 중 일부는 온 몸에 썬크림을 바른채 낮의 거리를 활보한다. 이 이야기를 계승한건 영화 <나는 전설이다>라기 보다는 오히려 <블레이드>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영화는 원작의 뱀파이어를 좀비로 바꿨지만 감성과 지능 등 일부 설정은 그대로 옮겨왔다. 나는 그게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더 좋았냐고 물어보면 그래도 역시 영화쪽이 아닐까? 감정을 가진 좀비를 받아들이는 건 힘들지만 그래도 이상한 좀비 정도로는 인정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이 이야기에 어울리는 배경도 뱀파이어가 지배하는 음침한 세상보다는 좀비 아포칼립스에 더 가깝다. 황량한 도시. 텅빈 거리. Nobody else? 라고 소리쳐도 바람에 나뒹구는 신문지만이 답하는 세계. 그런면에서 원작 소설의 주인공에겐 그닥 절망적인 고립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매일 밤 그의 집 앞을 찾아와 그를 감염시키려 안달이 난 뱀파이어는 인간이던 시절 주인공의 절친이고, 둘 모두 그 시절의 기억을 여전히 공유하기 때문이다. 나는 밤마다 주인공을 집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에게서 끔찍함보다는 오히려 친근감을 느꼈다. 뱀파이어는 로버트 네빌의 집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나와라 네빌!


이거 참, "알았어 금방 나갈게"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끔찍한 괴물이라기보다는 약간 거친 매너를 지닌 야만인 정도로 느껴지는 뱀파이어들에게 둘러쌓여 로버트 네빌은 오늘도 세상을 파괴한 원인을 찾아 낮의 거리를 질주한다. 그는 마지막 순간 홀로 남은 자신이 이 세상에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고 '나는 전설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그가 왜 전설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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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첫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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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없이, 문자와 그 밑에 숨은 심오한 의미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면, 마치 흐르는 물을 즐기듯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손에 든다. 이 남자의 수필은 독자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기려는 어떠한 야망도 갖고 있지 않다. 한 봄, 벚꽃이 휘날리는 벤치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느낀다. 솔솔 잠이 오는 과정에 귓 속에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 길을 지나는 오토바이, 조곤조곤 벽을 때리는 강물, 마치 유체이탈을 한 듯 멀리 또 가깝게 들리는 이 소리들이 하루키의 수필이다. 기억은 하나도 남지 않지만 꿀잠을 자고 깼을 때 몰려오는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책을 덮고 힘껏 기지개를 켜면 온 몸에 힘이 넘친다. 어쩐지 오늘 저녁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한때 하루키 에세이의 강력한 악플러였던 나지만 이제서야 그 용도를 안 것 같다. 문득 내 서재에 빽빽이 꽂혀 있는 하루키의 책들이 눈에 띈다. 오랜 만남은 결국 오해를 녹이고 새로운 가능성으로 나아갔다. 남과 북이 두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듯, 이라고 말하면 너무 과장이려나? 아무튼 지금 제 마음은 그렇습니다만.


하루키가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너무 많이 알려져 있지만, 한번만 더 얘기하면, 이 남자는 어느날 저녁 야쿠르트 스왈로즈(맞나?)의 외야석 잔디밭에서 맥주를 마시며 야구를 관람하다 딱, 하며 날아오는 타구를 봤고 그 순간 바로 소설을 써야겠다는 에피파니의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첫 소설부터 어마어마한 논쟁에 휘말리는데 핵심은 이 남자의 소설은 소설이 아니라는 것. 매년 빠짐없이 노벨상 후보로 오르는 인물이? 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하루키는 이 책에서 독일의 유명한 책 관련 TV쇼에서 있었던 얘기를 해준다. TV쇼에는 당연히 유명한 사람들이 나오고 대중적 인기도 상당했던 것 같다. 그 중 십수년간 고정 패널로 활약한 문예평론가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그녀인가?)가 하루키의 소설은 껍데기이며 이런 껍데기들은 문학계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사회자는 반론을 제기했지만 의견은 한 치도 좁혀지지 않았고 머리 끝까지 화가 난 평론가는 결국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했다는 얘기.


무표정에, 유유히 자기 삶의 파도를 타고 넘는 쿨가이처럼 보이지만 이런 일이 벌어질때면 그의 마음도 썩 유쾌하지는 않음을, 하루키는 고백한다. 그리고 나는 이 대목에서 하루키에게 글쓰기가 갖는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깨닫는다.


데뷔때부터 수십년간 그런 비난에 시달려왔지만 이 남자는 하루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추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속도와 양, 질에 있어서도 독보적이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였던가? 하루키는 자신이 갓 데뷔를 했을 때 자신의 소설을 읽은 옛 친구들이 그런 것도 소설이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 실제로 소설을 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하루키는 그걸 필연성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반드시 소설을 써야한다는 필연성.


결국 소설가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은 그 필연성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이야기를 쏟아내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다. 하루키에게 있어 글쓰기는 숙명이고 숙명이란 자기 자신조차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숙명을 망토처럼 두르고 문자로 빽빽한 이야기의 정글을 헤쳐나갔다. 무려 40년동안 말이다.


하루키의 40년에는 그 누구도 쉽게 매도할 수 없는 작가의 위엄이 담겨 있다. 숱한 비난과 악평을 뚫고 넘어온 40년. 더 놀라운 사실은 그가 여전히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꼴찌에게도 갈채를 보내는 법인데, 자기 자신의 달리기를 이토록 꾸준히 해나가는 남자에게 박수를 치지 않을 이유가 어디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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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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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한 장에 그림 한 장. 카트 멘시크의 일러스트레이션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고는 하나 63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책이다. 그림 빼고, 줄간, 여백을 고려했을 땐 1만 6천자가 겨우될까 싶은 단편 하나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이거 상술이 너무한데,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실례는 아니다. 그러니 하루키의 단편에 어지간히 굶주려 있는 게 아니라면 이 책을 손에 들기 전 한번쯤 생각해보기 바란다. 책값도 1만 3천원이나 된다고.


카트 멘시크와의 콜라보가 처음은 아니다. <잠>이라는 책이 처음이었는데 그 쪽은 분량도 단편 이상은 됐고 이야기의 밀도가 상당히 짙었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는(글이 나오지 않았던) 하루키의 불안이 잠, 꿈, 불면을 매개로 현실과 환상을 모호하게 뒤섞어 놓은 이야기. 마치 처음부터 한 장의 비단이었던 것처럼 부드럽게 경계를 지우는 작가의 솜씨가 압권이었던 작품이다. 반면 <버스데이 걸>은, 글쎄 뭐랄까, 냄새는 나지만 그 편린이 너무 작아 충분히 즐길 수 없었달까?


스무 살 생일날, 그녀는 평소와 똑같이 웨이트리스 일을 했다(p.9).


이 레스토랑의 주인은 같은 건물 육층에 살고 그는 매일 저녁 8시, 가게가 가장 붐빌 때 자신의 집으로 배달을 시켜 먹는다. 배달은 늘 홀 매니저의 몫이었지만 그날따라 우연이 겹쳐 그가 배달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리고 배달 업무는 오늘 바로 20세가 된 그녀에게 할당된다.


괴물을 만나는 건 아니다. 레스토랑의 사장일 뿐이다. 노인이라고는 들었지만 어떤 외모인지, 어떤 성격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배달을 시키는 이유도,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레스토랑 사장이라고는 하지만 한번도 내려온 적이 없으니까). 그녀는 시간이 되자 카트를 끌고 사장이 사는 604호로 향한다. 홀 매니저는 그녀에게 "벨을 누르고 식사입니다, 라고 말하고 놓고 오기만 하면 되"(p. 22)라고 말했는데 사장을 마주한 그녀는 무슨 이유에선지 "식사를 안으로 들여가도 될까요?"(p.26) 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장의 방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내가 말해줄 수도 있지만, 역시 그건 실례가 되는 일이겠지?


나는 이 짧은 단편 소설이 인생의 메타포 혹은 인생에 대한 한줄 요약 같은 건 아닌가 싶다. 20세의 생일. 한 인간에게 20세는 충분히 이정표가 될만한 나이다. 이제 그녀는 사회가 제시해온 길을 떠나 '스스로' 인생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과연 나의 선택만으로 움직이는걸까? 감히 말하건대, 인생은 우연과 선택이 날실과 씨실처럼 엮여 저마다 고유의 문양을 드러내는 카펫짜기 같은 것이다. 완성된 패턴은 내가 의도한 것도 세상이 의도한 것도 아니다. 운이 좋은 사람이라면 두개가 반반쯤 섞인 문양을 얻게 되겠지.


그녀가 20세 생일날 레스토랑 근무를 하게 된 것도 애초에 그녀의 의지는 아니었다. 친구의 대타였으니까. 하필 그날 매니저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긴 것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녀에게 배달 임무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받아들인건 그녀 자신이었다. "식사입니다, 라고 말하고 놓고 오기만 하면 되" 라는 말에 "식사를 안으로 들여가도 될까요?" 라고 답한 것도 그녀 자신의 선택이었다. 이 우연과 선택이 604호실 안에서 인생에 느낌표를 찍을만한 사건을 일으킨다. 어쩌면 그건, 인생에서 처음으로, 그녀가 얻어낸 문양일지도 모른다. 최초의 무늬. 아마 그녀의 인생은 이 문양을 토대로 점점 더 커다란 그림을 짜 나갈 것이다. 


버스데이 걸.


그날 그녀의 인생에서 무엇이 태어났을까? 책을 다 읽는덴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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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리틀 드러머 걸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4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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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르 카레의 돼지같은 인내심은 독자를 힘들게도, 기쁘게도 한다. 기다림이 클수록 성취의 맛은 달콤한 법. 산더미같은 서류를 뒤지고 베일것 같이 정교한 준비를 마치고 나서야 사건이 벌어진다. 실제 영국 정보부 MI6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이 늙은 스파이에게 휙, 슉, 펑, 하는 첩보 액션은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모양이다. 존 르 카레의 작품이 그 어떤 첩보 소설과도 궤를 달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리틀 드러머 걸>은 그 중에서도 최고다. 기억을 떠올려 보자.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스마일리의 사람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모스트 원티드 맨>. 이 책의 여자 주인공 찰리는 그동안 내가 읽었던 존 르 카레의 소설 중 유일하게 등장하는 일반인 공작원이다. 이스라엘 정보부에 포섭된 영국인 여자. 배우. 모사드는 그녀를 데려와 대어를 낚는 미끼로 갈고 닦는다. 오색 빛깔의 꼬리를 흔드는 완벽한 미끼. 이 미끼를 만드는데 들이는 모사드의 노력은 흡사 방망이 깎는 노인을 연상시킨다.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한 지독한 심문으로 한 인간의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린 뒤 첩보 세계에대한 달콤한 환상, 조작된 사랑을 채워 완전히 새로운 인간을 탄생시킨다. 이들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작은 기계 부품을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끝도없이 끼워 맞추는 시계공의 모습이 떠오른다. 신을 시계공에 비유했던 자가 누구였던가? 그렇다면 이들도 신이다. 진짜 공작이 뭔지 아는 어둠의 신.


존 르 카레의 소설을 힘들게 만드는 이유는 이 인내심 말고도 여럿이 있다. 그의 소설은 언제나 이야기의 중간에서 시작된다. 중간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장소와 시간, 시점과 인물을 건너 뛰며 파편적으로 전개된다. 이 늙은 스파이의 눈에는 그것이 결국 핵심으로 향하는 미궁의 지도로 보이지만 우리 같이 평범한 독자들은 문장 하나하나를 세심히 읽어나가지 않는 이상 그의 큰 그림이 쉽게 눈에 들지 않는다. 방망이를 깎는 노인은 독자들 또한 자기와 같은 방망이 깎는 노인이 되기를 바란다. 독자는 이 늙은 스파이와 똑같이 돼지같은 인내심을 갖고 문장들을 뚫어봐야 한다. 때때로 나는 그가 우리들에게 첩보술을 가르치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게임의 방관자가 아닌 플레이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이야기 속의 플레이어가 되는 순간 독자들도 존 르 카레가 쌓아 놓은 문장들을 훑고 또 훑어야 한다.


감정이나 태도를 모호하게 묘사하는 것도 독자의 미간을 찌푸리게하는 요소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거지? 저 태도가 암시하는 것은? 스파이의 행동에는 항상 두개의 차원이 존재한다. 어떤 스파이가 나를 돕는다면 그 속내를 파악해야 한다. 굳건한 혈맹, 도움이 우정의 발로라고 생각한다면 냉혹한 스파이의 세계에서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살아갈 방법은 없다. 그들에게 윤리와 도덕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목적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기계처럼 임무를 수행해 나간다. 사람과 똑같이 생긴 로봇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의 감정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존 르 카레의 소설엔 승자가 없다. 그들은 모두 회색 공간에 갇힌 비인간들이고, 인간이 아닌 것을 존재의 이유로 삼아야 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 매력적인 첩보의 세계란 말에 존 르 카레가 얼마나 쓴 웃음을 지었겠는가. 나는 이 노인이 존경스럽다. 할 수만 있다면 이 남자의 모든 것을 배우고 싶다. 정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그 텅빈 회색빛 눈동자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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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0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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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이 책에 대해선, 그저 읽어보라는 말 밖에는 할 얘기가 없다. 피차에 바쁜 사람들이니 과연 이 이야기가 당신의 구미에 당길지 지금부터 몇가지 간단한 설문을 해보겠다.


1. 꼬부기 하연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임수정, 양갱을 와구와구 먹고 낮잠을 자는 아이유, 영화 <아멜리에>의 아멜리에 같은 여자 캐릭터들을 좋아하십니까?

(1) 진짜 진짜 좋아합니다: 5점

(2) 그냥 그렇습니다: 2점

(3) 아니요, 좋아하지 않습니다: 0점


2. 로맨스 판타지 장르의 소설을 좋아하십니까?

(1) 네 로맨스도 판타지도 다 좋아하는데 로맨스 판타지라니,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흥분됩니다: 5점

(2) 로맨스는 좋아하지만 판타지는 글쎄요 or 판타지는 좋아하는데 로맨스는 좀...: 2점

(3) 로맨스고 판타지고 질색입니다: 0점


3.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움직이는 성에 매료된 적 있으십니까?

(1) 그럼요, 만화는 싫어도 그 움직이는 성 만큼은 대단히 매력적이었습니다: 5점

(2) 글쎄요 그런 만화적 상상력은 저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하지만, 꽤 흥미로운 부분은 있었습니다: 2점

(3) 만화라면 질색입니다: 0점


4. 당신은 다신론자 입니까? 예컨대 헌책방의 신, 감기의 신, 잉어의 신 등 이 세상은 각각의 분야를 주관하는 신들의 협동 조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 그렇습니다. 저는 이 세상의 모든 사건, 생명, 사물에 전부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습니다: 5점

(2) 다신론을 믿는 건 아니지만 그 이야기적 가치에 대해선 긍정적입니다: 2점

(3)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쓰레기 같은 생각입니다. 설령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런 역겨운 생각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0점


5. <스내치>, <락 스탁 앤 투 스모킹 베럴스> 같이 얽히고 설킨 이야기, 회오리바람같은 줄거리가 온 책을 휘젓고 다니며 이야기를 엉망진창, 혼란의 세계로 빠뜨리는 걸 좋아하십니까?

(1) 내 인생은 혼란 그 자체입니다. 나는 얼마든지 혼란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5점

(2) 딱히 혼란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 구성에 대해선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2점

(3) 복잡한 건 질색입니다: 0점


6. 정말로 좋아하는 여자가 있지만 도저히 고백할 용기는 못내는 남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게 전부, 상사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아 눕는 수줍은 남자에게 감정이입이 되십니까?

(1) 흑흑, 딱 저 같은 남자로군요: 5점

(2) 제가 그런 남자라는 건 아니지만, 좀 귀엽다고 생각됩니다: 2점

(3) 제가 가장 혐오하는 남자입니다: 0점


7. 빤쓰총반장, 괴팍왕, 축지법 고타츠, 하늘을 나는 인간, 달마 오뚝이, 예술작품 - 벽을 뚫고 나온 코끼리 엉덩이, 핥기만해도 감기를 낫게 하는 단맛의 정수 윤폐로, 궤변 댄스, 친구 펀치, 코털이 하루에 1미터씩 자라는 남자, 규방조사단 중 관심이 있거나 더 알아보고 싶은 것, 당신의 호기심을 미치도록 자극하는 것이 몇 개나 있습니까?

(1) 8~11개: 5점

(2) 5~7개: 3점

(3) 3~4개: 2점

(4) 1~2개: 1점

(5) 0개: 0점


이제 위 설문에서 당신이 답한 점수의 총점을 내보시라.


(1) 25~35점: 당신의 인생에서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소설이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 기회를 잡으세요. 한번 지나간 기회는, 두번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2) 15~24점: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났군요. 인생에 길이길이 남을 정도는 아니지만 당신의 무료한 일상에 촉촉한 감성을 더해줄 수는 있을겁니다.

(3) 6~14점: 평소 읽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 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당신의 생각과는 달리, 어쩌면 당신의 마음이 이런 이야기를 반길지도 모릅니다.

(4) 0~5점: Mac 사용자라면 애플키 + Q, 윈도우 사용자라면 alt + f4 키를 눌러주세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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