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커빌가의 개 열린책들 세계문학 102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조영학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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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은 셜록 홈즈다. 아서 코난 도일의 만들어낸 이후로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다. 19세기의 영국인들이 그렇게 믿었고 그 자손들이 믿음을 이어 나갔다. 시간이 흐르자 믿음은 전설이 됐다. 셜록 홈즈를 번역한 나라가 이 전설에 동참했다. 번역한 나라의 자손들이 그 말을 이어나갔다. 번역의 불길은 황무지와 살인, 런던과 대저택, 스릴러와 추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극동 아시아의 남조선에까지 번져 급기야 열린책들 '세계 문학'의 102번째 시리즈로 '바스커빌가의 개'가 출판되기에 이르렀다. 런던 베이커가 221번지 B호에 작은 사무실을 갖고 있던 셜록 홈즈는 이렇게 전세계적인 탐정 신화를 완성해 냈다.  

 

 

 

고전의 아우라는 언제나 후세들의 가치관에 공포감을 조성한다. 그 사람이 누구든 고전을 파괴하려는 자는 사회적 교수형에 처해 주류 세계에서 밀려난다. 앞 세대의 눈부신 광채는 눈먼 후손을 낳고 눈먼 후손은 고전을 영원히 눈부시게 만든다.

그래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일리아드, 오디세이' 서사의 촌스러움을, '로미오와 줄리엣'의 진부한 신파를, '셜록 홈즈'의 농밀하지 못한 트릭을 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광신도들의 무자비한 돌팔매를 피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전의 가치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깊은 통찰력을 통해서만 발견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스커빌가의 개'는 가장 유명한 소설이다. 그 유명한 셜록 홈즈 시리즈 중에서도 말이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셜록 홈즈의 부활'때문 이었다.

아서 코난 도일은 1893년에 출간한 '셜록 홈즈의 회상록', 그 최종장인 '마지막 사건'에서 셜록 홈즈를 폭포 밑으로 떨어뜨려 죽인다. 그것은 셜록 홈즈 시리즈의 종지부를 알리는 대사건이었는데, 아서 코난 도일 자신이 추리 소설이라는 대중적 장르를 떠나 문학가로서의 길에 정진하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이처럼 훌륭한 작가에게도 세상일이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미지의 것이었나 보다. 정치에 대한 꿈은 낙선의 현실로 이어졌고, 아서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의 부활'만큼 독자를 열광시키는 소재는 없을 거라며 출판사에 흥정의 서신을 보냈다. 서신에는, 은근히 다른 출판사를 언급하며 100파운드 정도면 셜록 홈즈가 무덤에서 뛰쳐나올 의사가 있다는 내용을 적어 넣었다.  

 

 

 

'바스커빌가의 개'는 바스커빌가의 전설로 부터 시작된다. 데번셔의 황무지에 자리잡고 있는 바스커빌가의 대저택에는 대저택을 갖고 있는 부잣집 도련님이 으레 그렇듯 망나니 아들이 하나 살고 있었다. 이 망나니는 망나니 답게 여색을 즐겼는데 하루는 친구들과 잔뜩 술에 취해 옆 마을의 미녀를 납치해왔다. 그러나 미녀는 잡혀온 미녀들이 으레 그렇듯 머리가 빈 공주님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망나니 도련님이 술독에 빠져있는 동안 담쟁이 덩쿨을 타고 탈출에 성공했다. 흥분과 욕망으로 축축해진 입김을 내뿜으며 망나니가 문을 열었을 때 방은 이미 텅비어 있었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망나니는 친구들을 끌고 야밤의 추격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추격은 실패했다. 망나니의 친구들이 비명 소리가 들려온 계곡으로 달려가보니 망나니의 시체가 그들을 바라보며 일그러진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 위엔 두 눈이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거대한 사냥개 한마리가 서 있었는데 사냥개는 지금 막 망나니의 목을 물어 뜯어 꿀꺽 집어 삼키려는 찰라였다. 야밤의 추격전은 피와 공포로 물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황무지에는 '바스커빌가의 망나니'를 물어 죽인 '지옥개의 저주'가 퍼지기 시작했다. 바스커빌가는 완전히 몰락했다. 망나니 바스커빌의 3대손 찰스 바스커빌이 남화공에서 얻은 막대한 부를 업고 황무지로 돌아올 때 까지 바스커빌가의 대저택은 아무도 살지않는 황무지에 버려져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 찰스 바스커빌마저 '지옥개의 저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자 드디어 런던 베이커가 221번지 B호에 사건 의뢰가 접수 된다. 

 

 

<출처: Flickr.com, loja> 

 

'바스커빌가의 개'에는 두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우선 홈즈의 부활로 유명한 소설이지만 사실 이야기의 대부분이 왓슨 박사의 시점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물론 이런 구성은 후반부의 반전을 극적으로 전개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둘째로 전작과는 확연히 다른 소설의 분위기다. 사람과 말을 삼키는 늪지대, 피폐한 황무지, 불을 뿜는 지옥개, 죽음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대저택의 공포 등이 의문의 살인 사건과 어울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바스커빌가의 개'가 고딕 소설로까지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점을 감안하더라도 나에게 셜록 홈즈는 자정이 넘은 시간 오래된 브라운관 TV로 보는 토요 명화만큼이나 빛 바랜 영광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나는 단 한편의 셜록 홈즈를 봤을 뿐이다. 이 한권으로 소설가 아서 코난 도일의 전부를, 혹은 그의 삶과 경험의 화신인 셜록 홈즈를 비하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일 것이다.

고전의 독해란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가 철저히 현대성을 잊고 빠져드는 과거로의 여행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고전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그것에 몰입하는 독자의 태도에 달려있다고도 볼 수 있다. '왜 고전을 읽을 것인가', '그곳에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단순히 고전을 읽는 것을 넘어서 고전이 현대와 상호작용하는 혹은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점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니 '바스커빌가의 개'가 재미 없었다면 곰곰히 생각해 보라. 과연 자신이 틀린 건지 아니면 셜록 홈즈가 틀린 것이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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