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 세상을 위협하는 멍청함을 연구하다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 지음, 이주영 옮김 / 시공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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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우리는 모두 멍청이다. 노벨상을 받거나 각 분야에서 특출 난 업적을 쌓은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믿기 어려운가? 그렇다면 주변에서 가장 똑똑해 보이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아 보험금 청구나 은행 App에서 비대면 계좌 개설을 시켜보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것이다.


사실 멍청함은 인간이라는 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기본 특성이다. 역사의 페이지를 조금만 들쳐봐도 이 주장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차고 넘친다. 신성로마제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황제이자 사후 영웅으로까지 추앙된 프리드리히 1세는 십자군 원정 중 강에서 헤엄을 치다 물에 빠져 죽었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강으로 달려드는 젊은 병사들을 보며 67세가 된 프리드리히의 마음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끓어올랐다. 내 활력이 저 젊은것들 못지않다는 걸 보여주겠어! 강물로 뛰어들자마자 물에 젖은 갑옷은 그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유럽을 평정한 노인은 결국 젖은 갑옷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강물에 빠져 죽었다. 깊이는 고작 엉덩이 정도였다.


우리가 멍청함을 싫어하는 이유는(자기 자신도 멍청이면서) 그들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붉은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만으로 지구를 파괴할 수 있거나, 이를 전 인류가 실시간으로 시청할 만큼 미디어가 발달한 세상에서는 시시각각 조여 오는 멍청함의 향연에 질식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차르, 시황제, 그리고 가깝게는, 흠...


멍청함에는 대개 혐오라는 일관된 반응이 동반되지만 그 종류에는 나름 유형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멍청함이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 따라 크게 3가지로 구분한다. 확신에 찬 멍청이, 무지한 멍청이, 그리고 부주의한 멍청이. 영향력은 언급한 순서와 같다.


우선 확신에 찬 멍청이에 대해 알아보자. 이는 세상에 가장 큰 피해를 끼치는 유형이다. 이 유형이 멍청함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확신이 멍청함을 낳고 멍청함이 다시 확신을 강화하는 피드백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정말 무서운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나쁘다는 걸 알지만 본인의 이익을 위해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이 아니라 정말로 그 일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나 과거 기독교인들이 흑인을 함의 자손으로 규정하여 노예제를 정당화한 것처럼 말이다. 이런 유형은 사실상 치료제가 없다. 살면서 이런 멍청이들을 만난다면 그저 도망치는 것만이 해답이다. 그러나 당신의 상사나 대통령이 그런 유형이라면? 흠...


무지한 멍청이는 말 그대로 뭘 모르기 때문에 멍청한 짓을 벌이는 유형이다.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밥을 굶고 탄산음료와 과자로 허기를 달래는 사람이나 LG 유플러스에서 개통한 삼성 갤럭시 폰을 LG전자 서비스센터에 와 고쳐달라고 하는 부류가 여기에 속한다. 가끔 보면 귀엽기도 한데, 막상 겪어보면 여지없이 짜증과 답답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 유형은 자신의 무지를 심각하게 비난하거나 공격하면 나는 멍청이가 아니라는 방어기제가 폭발하면서 무지를 믿음으로 전환해 확신에 찬 멍청이로 진화할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이런 부류를 다룰 때는 좋은 말로 타이르거나 잘못된 점을 차분히 설명하는 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마지막은 부주의한 멍청이다. 사실 부주의 또한 습관과 같아서 고치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은 있지만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부주의란 대개 우리 존재의 크기만큼 미미해 그냥 웃고 넘어갈 경우가 많다. 물론 얼마 전 발생한 삼성증권 위조 주식 유통 사건이나 토스 증권 환전서비스 오류처럼 개인이 감당하기에 벅찬 규모의 실수가 단순한 부주의로 야기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시스템의 개선을 통해 실수 자체를 막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이런 정리가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에 대한 질문과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결론만 말하면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이 책은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우리가 기대했던 내용들, 예컨대 멍청함은 어디서, 왜 생겨나는 것이며 그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그들이 왜 우리 주위를 서성이는지, 또 우리 자신이 그런 멍청이가 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도 전해주지 않는다! 제목은 그저 낚시에 불과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내가 여러분보다 먼저 이 책에 낚였고 그 실패담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분은 나의 멍청함으로 인해 멍청한 선택을 하게 될 일 하나를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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