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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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는 197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소설가이자 언론인 마리아나 엔리케스의 공포 소설이다. 작가에 따르면 공포 소설은 원체 넓은 범주라서 호러와 환상, 다크 픽션과 네오고딕 등 많은 명칭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작가 스스로 공포라 지칭한 것을 한국어 판에서 굳이 고딕으로 소개하는 것을 보면 진지한 한국 문학계의 양장본 책에 새기기에 '공포'라는 장르가 어울리지 않았나 보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불법 서적으로나 유통되는 공포 이야기로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어떻게 세계적인 소설가가 될 수 있었을까? 비슷한 차별을 받고 있는 SF를 돌아보자. SF에 노벨상이 있었다면 첫 번째로 받았을 거라 칭해지는 어슐러 K. 르 귄의 작품들은 세상의 편견과 인간의 불완전성을 SF적 상상력을 동원해 탁월하게 은유한다. 한편 반 평생을 별 볼 일 없는 소설가로 살아가다 <제5 도살장>으로 일약 세계적 SF작가가 된 커트 보네거트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분위기는 좀 다르지만 역시 세계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지프 헬러의 <캐치-22>와 함께 대표적인 반전 소설로 꼽힌다.(둘 모두 전쟁의 부조리를 초현실적으로 표현하는데 <제5 도살장>이 훨씬 어둡고 난해하다)


이상으로 볼 때 답은 명확하다. 장르, 솔직히 좀 비하의 느낌도 있고, 진지한 문학인이라면 결코 손대지 않을 것이라는 무시를 담지만 대놓고 말하기는 어려워 만든 이 허울 좋은 말을 쓰고 '문학'이 되려면 그것을 '도구'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한때 아르헨티나는 저 위대한 북유럽의 부국 스웨덴을 포함, '가난한 유럽인'들이 수없이 기회를 찾아 떠나던 초경제 대국이었다. 그러나 과도한 복지 정책의 실패와 뒤이은 정치 불안으로 아직까지 진흙탕을 구르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남미의 많은 국가, 그리고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오랜 군사 독재를 경험했다. 사람들은 이유 없이 끌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는 실존이 공포 그 자체였던 시간을 은유한 소설이다.


이 단편집은 몇몇 지루한 소설을 담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특히 요란을 떨지 않고 푹 눌러 담은 푸딩처럼 절제된 스타일이 그랬다. 전해야 하는 충격과 표현은 반비례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운다. 한국 문학계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이야기를 원한다면 도전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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