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생리학 인간 생리학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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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없다면 당신은 평생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는 건 좀 오버고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어디서 한 번쯤은 이름만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발자크는 19세기 프랑스에서 활동한 소설가이자 컬럼리스트로 <인간희극>과 <고리오 영감>등의 작품을 남겼다.


워낙에 문명이 휘날리는 사람이라 이름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끄덕 할 테지만 그의 책을 읽어본 사람 손 들어보세요,라고 묻는다면 상황이 좀 달라질 것이다. 쭈뼛쭈뼛 두리번두리번. 사실 대문호들의 작품이란 게 다 그렇다. 대부분 제목만 '확실히' 알고 있는 것들. 이를테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던가 <안나 까레리나> 같은...


아무튼 발자크도 이런 반열에 드는 사람이다. 최고의 작품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인간희극>을 꼽는 거 같은데, 몇 개의 작품이 워낙에 유명하다 보면 반드시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찾아 틈새를 노리는 기획이 탄생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바로 이 <공무원 생리학>이다.


사실 나도 뻔질나게 발자크라는 이름을 들어왔지만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런 나에게 이 번지르르한 신간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덫' 같은 것이었다. 게다가 최근에 크게 논란이 된 LH 사태로(물론 그들이 공무원은 아니지만) 공기업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것도 한몫을 거들었다.


<공무원 생리학>은 19세기 프랑스, 이제 막 공화국이 된 이 갓난아이의 공무원들을 살벌하게 비판하는 책이다. 이 나라나 저 나라나 공무원은 다 똑같네 하는 공감대가 형성될 수는 있는데, 그 이상이 없는 건 조금 아쉽다. 그냥 씹고 끝낼 생각이었다면 굳이 이렇게 길게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 혁명과 왕정이 엎치락뒤치락 반복되던 격동의 시대를 경험하다 보니 아무래도 작가의 감정이 뼈에 사무친 게 아닌가 싶다. 콩 코드르 광장에서 시민이 직접 왕의 목을 자른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왕들이 돌아오고, 혁명을 완성할 것처럼 보였던 국가의 희망은(나폴레옹) 제국주의의 야망에 불타 나라를 수렁으로 몰아넣었으니, 누가 우두머리가 되든 그저 배를 붙이고 자기 자리를 지키기 바빴던 공무원들에게 분노를 내뱉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에 깊숙이 파묻힌 감정은 역시 시간의 흐름과 함께 빛이 바래는 걸 막을 수는 없는 것 같다. 지나친 뜨거움은 종종 시간이 지나 민망함으로 변하곤 한다. 책 전반에 걸친 과장된 말투는 그 시대를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생뚱맞게 들릴 수 있다. 감정을 이입하기 위해선 우리를 괴롭혔던 부조리한 공무의 경험을 끊임없이 떠올려야 한다.


많이 기대했던 책이기에 아쉬움도 크다. 변화구보다는 역시 직구를 노려야 했던 걸까? 오노레 드 발자크라는 큰 산을 이렇게 오르기엔 부족함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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