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행동경제학 - 행동 설계의 비밀
마이클 샌더스.수잔나 흄 지음, 안세라 옮김 / 비즈니스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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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경제학은 행위의 주체인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판단한다. 즉,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자주 거론되는 예시 중에 절약의 역설이 있다. 경제가 불황에 진입했을 때 개인이 허리띠를 졸라매면 오히려 공황에 빠질 수가 있다. 소비가 줄면서 기업은 더 큰 위험을 맞고 그 결과 실업의 증가와 개인 소득 하락의 악순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살기가 빡빡해졌을 때 오히려 소비를 늘리는 사람들이 있을까? 전문가들이 아무리 어리석은 일이라고 호소해봐야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도대체 미치지 않고서야 어떤 개인이 그런 판단을 내리겠는가?


인간은 이성적이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이성의 입장에선 그걸 결함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바로 인간의 본모습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무리 본인에게 이득이 된다고 해도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혹은 믿음이 없으면 행동하지 않는 게 바로 인간이다. 때때로 판단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내린다. 인간이 정녕 이런 존재라면 전통 경제학은 그 기반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소수의 이단아들은 바로 이 점을 파고들었다.


행동경제학(Behavior economics)은 경제학과 심리학이 융합된 학문이다. 판단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내려진다면 경제학도 그 관점에 서야 행동을 더 잘 예측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학제적 학문이 거의 그렇듯 행동경제학은 잡스러운 것으로 치부됐고 주류 경제학에서는 늘 뒷전에 머물렀다. 인간의 탐욕과 야만성이 똘똘 뭉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전 세계 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들기 전까진 말이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행동을 미시적으로 관찰하기 때문에 굉장히 좀스럽게 보일 수 있다. 내놓는 결과물을 보고도 '에이 설마', '진짜 그러겠어?'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예컨대 행동경제학은 특정 고정관념에 빠지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성과가 낮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생각을 갖는 것만으로도 수학 시험에서 원래 자신의 실력보다 더 낮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는 예전부터 행동경제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분야였다. 히틀러는 인간의 판단력이 흐려지는 저녁 시간대에 연설하기를 고집했다. 야외 연설은 붉은 노을이 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했는데, 그 황홀한 분위기가 달콤한 거짓말과 융합해 목전에 다다른 패배도 잊게 해 줬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는 행동경제학>은 비슷한 장르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실험과 결과를 담고 있다. 마케팅이나 홍보, UX, 서비스 기획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사례들을 통해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 KPI를 달성할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책 한 권을 읽는 것으로 천지가 개벽할 성장을 하는 건 무협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은 이론이 아닌 사례를 다룬다. 그래서 읽기가 쉽고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비슷한 실험을 계획하고 있지만 대상을 어떻게 나누고 어떤 방식으로 실행해야 할지 몰랐던 사람이라면 눈 앞을 가리는 안개가 한결 옅어진 것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책을 몇 권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신선한 느낌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행동경제학 이론을 적용해볼 만한 일을 하지만 아무리 들어도 반신반의했던 사람이라면 아주 작은 것부터 한번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의 마음은 복잡한 듯 보이지만 또 의외로 단순한 점이 있다. 간단한 수정만으로도 고객의 유입과 전환이 변화하는 걸 확인하면 더 큰 흥미를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한번 맛을 들이면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일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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