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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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읽는 책중 소설 대 비소설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대략 반반정도 되지 않을까 싶지 않지만 아직 세어보지 못해서 모르겠다. 좋아하는 소설은 아무래도 장르소설로 분류되는 스릴러나 추리물인데 너무 한쪽으로 치중되지 않나 싶어서 올해부터는 나름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소설도 부지런히 읽어보기로 했다. 물론 명작의 기준이 모호해서 애매하기는 하지만 누구나 고래를 주억거리며 끄덕거릴만한 소설이 그런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그런 명작 읽기의 일환으로 읽어줬다. 사실 아주 오래전 읽었던 소설이기는 하지만 머릿속에 남아있는건 다소 야한 이미지와 영화의 오버랩이다. 프라하의 봄으로 개봉됐던 영화는 줄리엣 비노쉬의 싱그러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안정적인 연기, 레나올린의 퇴폐미가 기억난다.

 

사실 책을 읽는 내내 그 세 사람을 떠올려가면서 읽었으니 이미지가 얼마나 무서운건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책은 크게 토마시와 테레자, 사비나와 프란츠 두 연인들의 사람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프란츠는 사비나와 연결되어 있지만 토마시 커플과는 연결되어 있지 않고 사비나는 토마시와 한때 연인이었고 끝까지 남는 화자로 기록된다.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어느쪽이 옳은가 니체의 영원한 재귀는 무거움이지만 실제요, 진실이다. 니체의 철학에 대해서 귀동냥으로 들었지 아직 정식으로 접해본바는 없지만 소설은 니체의 실존사상을 기반으로 씌여진 듯 하다. 우리의 삶은 단 한 번이기에 비교도 반복도 되지 않아 깃털처럼 가벼운데 토마시에게 진실되게 토마시를 사랑하는 테레자는 무거움이고, 자유로운 영혼인 사비나는 가벼움이다.

 

프란츠는 인물설정에서도 물러나 있지만 책에서도 역시 주변 인물중의 평범한 사람으로 기록된다. 나약한 지식인의 캐릭터인데 누구나 프란츠와 비슷한 다소 찌질함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에 공감가는 캐릭터로 다가오기도 한다.

 

책중 약간 곁가지로 다뤄지는 느낌이지만 사비나와 프란츠의 관계를 기술한 대목이 있다. `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탄 자세로, 두 사람 모두 말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그들이 원하는 먼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그들을 구원하는 배신에 도취했다. 프란츠는 사비나를 타며 그의 부인을 배신했고, 사비나는 프란츠를 타고 프란츠를 배신했다.˝ 프란츠를 타고 프란츠를 배신했다는 말이 가슴에 확 꽂혔다.

 

˝사랑이 탄생하는 순간은 이런 것과 유사하리라는 것을 테레자는 알았다. 여자는 분노에 찬 영혼을 부르는 목소리에 저항하지 않는다. 토마시는 결코 사람의 함정 앞에서 안전하지 않고 테레자는 매시간, 매분마다 그를 위해 몸을 떨 수밖에 없다.˝ 첫 독서에서는 둘의 관계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제 나이가 드니 토마시도 테레자도 모두 이해가 된다. 왜 그토록 서로를 갈망하면서도 어떤 견지에서는 겉도는지 그 이유를 막연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이래서 이 책이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받는걸까?

 

책 뒷편에 인상적인 발췌글이 있다.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유럽 역사와 마찬가지로 보헤미아 역사도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보헤미아 역사와 유럽 역사는 인류의 치명적 체험 부제가 그려 낸 두 밑그림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그래 그렇다. 어떤 일이 아무리 심각하고 무겁게 다가온다 할지라도 그건 단 한 번이고, 깃털처럼 가벼운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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