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
정호승 지음 / 시공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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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시에 대해 잘 모르고 많이 읽는편도 아니지만 이 책의 저자인 정호승 시인은 알고 있다. 아울러 그의 대표시중 하나인 봄길도 얼핏 싯구가 기억난다. 1972년 등당한 작가는 50주년을 맞아, 주로 시를 써왔지만 동시, 동화, 에세이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했고 이를 결산하는 의미로 우화소설집을 펴냈다고 한다.


정호승 시인은 우화소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던진다.

"우화소설이라는 그릇에 담을 때 시가 소설로 재탄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자연과 사물과 인간이 지니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우화소설의 그릇에 담을 때 보다 자유스러운 창작의 상상력과 구성력이 주어졌다. _「작가의 말」에서"

본래 우화, fabla의 어원이 말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fan-do에서 기원된것처럼 동식물을 비롯한 사물들이 자신의 말을 마음껏 펼쳐낼 수 있는 이야기를 말한다.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로, 누구나 어렸을때 접해봤을 [이솝 이야기]가 생각나는 장르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의 주인공은 죽은 사람이 입는 수의, 볼품 없는 불상, 참나무, 걸레, 숫돌, 오래된 해우소(절간의 화장실)의 받침돌 등 다양하고 보잘것 없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총 17편의 작품에 일관되게 등장하는 주제는 왜 나는 살아가야 되는가에 대한 의문과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우화집의 제목인 [산산조각]은 연작소설중 [룸비니 부처님]에 나오는 불상의 말에서 기인한다. 삶이 망가지고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자포자기 하지말고 이겨내라는 메세지를 뭉클하게 전달한다. 조금만 이야기를 살펴보자면,

"룸비니 부처님은 부처님의 고향 룸비니에서 만들어진 순례기념품이다. 룸비니 부처님의 외형은 갈비뼈가 다 드러난 고행상(苦行像)을 하고 있다. 그런 탓인지 일년이 지나도록 진열만 되었다가 다행히 한국인 중년 남자 순례객에게 팔리게 된다. 서울에서 장애를 가진 스무살 아들과 단둘이 살고 있는 이남자는 룸비니 기념품 부처님을 진짜 부처님처럼 소중하게 모시며 믿고 의지한다. 과거 산산조각의 기억에서 제대로 벗어나기도 전에 그는 다시 산산조각의 절망적 상황에 부딪친다.


친구의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지하 단칸방을 거쳐 노숙자 생활을 전전하기에 이른다. 남자는 삶의 의욕마저 잃고 실의와자포자기에 빠진다. 이때 룸비니 부처님이 앞에서 소개한 산산조각" 철학을 설파한다. 이를테면 "깨어진 종을 치면 깨어진 종소리가 나는 것이 아니라 "파편 하나하나가 "제각기 하나의 종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산조각이 나면 새로운 산산조각의 삶을 얻게 된다. 남자는 이제 자포자기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의 고통의 파편들을 소중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점차 새로운 재활의 길에 나선다."

갖가지 현실의 어려움으로 인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과,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우화집은 지금의 나 자신과 내가 머물러 있는 삶을 보다 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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