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최후의 날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빅토르 위고 지음, 한택수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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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빅토르 위고와 함께 하는 여름]이라는 책을 읽고 위대한 작가인 위고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위고의 작품중 [레미제라블]은 역사에 길이남을만한 명작으로 꼽히지만, 그 외에 다른 책들도 널리 읽히고 있다. 이 책은 위고가 젊은 시절 사형제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소설로 풀어냈고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고 한다.


먼저 빅토르 위고의 삶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자면,


"저자이자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NOTRE-DAME DE PARIS)]과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저자이며 시인·극작가인 빅토르 위고는 브장송에서 장군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군인인 아버지 덕택에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외국 생활을 하게 된다. 파리의 명문 고등학교 루이르그랑 재학 시절 시를 써서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상을 받았다.


1819년, 형제들과 가톨릭 왕당파 리뷰 [문학적 보수주의자(CONSERVATEUR LITTERAIRE)]를 창간했다. 이를 통해 그는 다양한 문학적 작품들을 접하고 실험했다.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이 있은 후, 그는 1822년 사랑하던 여인 아델 푸셰와 결혼하여, 레오폴딘, 샤를, 프랑수아, 아델 등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


같은 해 첫 번째 시집 [송가 및 기타 시(ODES ET POESIES DIVERSES)], 그리고 다음 해 첫 번째 장편소설 [아이슬란드의 한스(HAN D'ISLANDE)]를 발표했다. 젊은 작가 그룹의 리더인 그는 1827년 첫 번째 운문 희곡 [크롬웰(CROMWELL)]을 출판했으며, 서문에서 고전극의 형식을 거부하고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한 낭만주의 극작품의 미학을 정의했다.


샤를 10세의 검열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지만, 1830년 코메디 프랑세즈에 [에르나니(HERNANI)]를 올려 재능을 인정받고, 낭만주의 계열의 예술가들이 출입하는 ‘세나클’과 관계했다. 뒤마, 메리메, 발자크, 생트뵈브 등이 모임에 참여했으며, 이러한 계기를 통해 그는 낭만주의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 1831년 첫 번째 역사소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출판했다.


1841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는 등 많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과 부딪혔다. 세나클 회원들이 점차 흩어졌고, 친구인 문학비평가 생트뵈브는 아내인 아델의 정부가 되었다. 1843년, 갓 결혼한 딸 레오폴딘이 센 강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이러한 고통 가운데 그는 정치에 관심을 가졌고, 1851년 공화주의자로서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와 제정에 맞섰다가 망명길을 떠났다.


그는 영국해협에 있는 저지 섬 등에서 1870년까지 십구 년간의 망명 생활을 했다. 망명 중 많은 시집과 소설을 출판했는데, 특히 1862년 커다란 대중적 반향을 일으키게 될 소설 [레미제라블]을 출판했다. 그의 천재성과 격정, 그리고 파란만장한 삶은 그를 하나의 전설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빅토르 위고는 아주 젊은 나이에 법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악한 행위, 즉 사형제도와 투쟁할 것을 결심했다. 그는 27세에 [사형수 최후의 날]을 썼고, 소설 [클로드 괴(CLAUDE GUEUX)]를 비롯한 많은 글들을 통해 인도주의적인 외침을 멈추지 않았다.(소개글 발췌)"


이 소설은 비교적 절은 나이에 27세의 나이에 썼고, 아울러 자신의 이름을 내걸지 않은채 출간되고 나중에 본인의 이름을 밝혔다. 극중 화자이자 주인공인 사형수가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서술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사형수 최후의 날은 자유와 행복을 상징하는 과거화, 구속과 불행만을 환기시키는 현재의 대립을 발판으로 전개된다. 사형수가 묘사하는

추억들, 상상의 공간, 과거의장소와 사람들은 그의 뇌리를 벗어나지 않는 단일한 생각, 즉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과 대조를 이룬다. 강박관념의 포현 형태는 반복일 것이다. 


같은 문장의 반복, 시간에 대한빈번한 언급은 홀로 (자신이 사형수라는 생각과 끊임없이마주하고 있는 사형수의 역설적 상황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떠나지 않는 감방이 갖는 고독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한편, 사형수는 사형의 집행을 구경하는 수많은 인파들과 그들의 기쁨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과연 사형제도가 옳은것일까에 대한 의제는 아직도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사형되기 바로 직전 사형수가 남긴 이 말이 기억에 남는다.


"누가 압니까? 사면이 내려올지도! 내 나이에 이렇게 죽는것이 얼마나 끔찍한가요! 마지막 순간에 내려지는 사면, 종종 그런 경우를 보았습니다. 나에게 사면이 내려지지 않으면 누구에게 내려지겠습니까, 선생? 끔찍한 사형집행인! 그는 판사 곁으로 가 일정한 시간에 형이 집행되어야 하는데 그 시간이 됐고, 자신이 책임을 맡고 있고, 게다가 비가 내려 기계가 녹이 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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