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집권당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것만으로는 정치적 평등이나 정치적 자유가 실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말을 길게 돌려 했다.
공개적으로 국민의 일부를 폄하하거나, 누구는 진짜 시민‘이 아니라잘해봐야 이등 시민이라고 말하는 우익 포퓰리스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정치적 평등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견고한 차별금지법조차 시민 일부의 정치적 권한 박탈과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요컨대,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 같은 정기적인 행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삶에 리듬을 부여하고 정당 지지자들의 정치 활동에 기준점을 제시한다.42 또한선거는 승자뿐 아니라 패자에게도 자원을 제공한다(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승자는 어느 정도 독자성을 가지고 자신들의 정치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길 수 있지만, 패자 역시 다시 돌아올기회를 정확히 알고 준비할 수 있다.43 이는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과거에는 언론도 마찬가지였고, 이는 언론

것이다. 권력이 집중된다는 것은 곧 책임지지 않는 개인들이 선거에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고, 동시에 정부가 플랫폼의 수익을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정치 성향도 바꿀 수 있는 개인들에게 영향력을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트럼프와 저커버그 같은 인물은각각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지만, 그런 인물들이 서로를 이용하게 되면 위협은 훨씬 더 커진다.

기술결정주의 신봉자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기술이 개인들을 연결해주는 동시에, 행동을 예측하고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체제, 나아가 돈이 된다는 이유로 양극화와 분노를 부추기는 감시 체제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소셜미디어 선택지가 극소수인 지금의 상황 역시 주어진 조건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정보와 의건의 출처, 그리고 정당을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조직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할 수있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가 이상적으로 무엇을 원해야 하는가에 대한답이 되지는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