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하지만 궁극적으로 매우 잘못된 두 종류의 해답이 있다. 하나는 국민을 비난하는 것이다. 개인의 권리를 우선시하고, 자본주의에 어느 정도 만족하며, 다양성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동시에민주주의가 다수에 의한 독재로 전락할 지속적 위험에 처해 있다는인식을 물려받아 고뇌하는 리버럴 사이에서 특히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소위 ‘우익 포퓰리즘의 전 지구적 부상‘이라는 현상을19세기 군중심리학의 클리셰를 재소환할 핑계로 삼곤 한다. 즉 대중이 그 모든 재앙을 자초하며,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잘 알더라도 비합

권위주의적 포퓰리즘 통치의 기술은 대체로 인종주의적 색채를띤 민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장악한 국가를 열성적인 당파주의자들의손에 넘기며, 더 은밀하게는 경제를 무기화해 정치 권력을 잡는 방식,
즉 문화 전쟁과 지지자에 대한 후견주의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이들의 민족주의는 주권의 모의 실험이자 집단적 자기주장의 계획된 퍼포먼스라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실제로는 별로 변하는 것이 없다. 세계화 반대를 외치는 수많은 구호가 사실은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에 대한 지속적 탈규제를 비롯해 타국 엘리트 계층의 배를 불리는 여러 정책과 얼마든지 사이좋게 양립한다.

추가적인 감사를 요청하면 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은 없다. 결과적으로, 눈에 띄게 정권에 충성하지 않는 힘 있는 기업인은 거절할 수없는 제안‘을 받고 자신의 지분을 팔게 된다. 이는 헝가리 야당인 사회당에 동조하는 듯한 기업인들에게 늘상 일어나는 일이다. 사회학자킴 레인 샤펠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런 패턴이 외부인의 눈에 늘 쉽게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본질적으로는 정치적인 행위를 언제나 경제·금융 관련 일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미국 우체국 서비스에 대.
한 트럼프의 뻔뻔한 공격이 효율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명분을 두르고 있었지만, 실은 2020년 대선에서 우편 투표를 어렵게 만들겠다는 뻔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10

꼭대기 층에는 정치에 깊이 관여하지만 언제든지 이곳을 떠나 살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바닥에는 정치에 거의 참여하지 않으면서도여기 말고는 달리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물론 상황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해 묘사한 것이다. 그 사이에는 점점 더 큰 스트레스에시달리는 중간층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부 국가에서는 부유한 전문직으로 구성된 중상위 계층도 이 집단에 속한다. 미국에서는바로 이 계층이 증가하는 교육비와 좁아지는 대학문 때문에 불안감에시달리고 있다. 이들에게 ‘위대한 교체‘는 무슬림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회계 및 경영 직군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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