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신이건 그 어떤 신이건 세상의 모든 신들은 대체 우리에게 무슨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당신의 신은 우리의 고난을 이해하지도 않을뿐더러 인간의 비참, 살육, 굶주린 백성들, 그 많은 전쟁, 그리고 그 밖의 끔찍한 일들과는 애당초 아무 상관도 하려 하지 않습니다." "계속하시오!" 그는 거의 혼몽 상태에 빠진 사람처럼 말했다. "말해보시오!"
포함시켜 재출간하기로 한 것은 독자들이 그 소설의 경이로움을 다시 생각해보고 재평가할 좋은 기회를 주고 있다. 『순교자, 초판 출간당시 뉴욕 타임스 신문이 "이 작품은 욥, 도스토옙스키, 카뮈의 위대한 전통 속에 있다"고 평가하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서평자가 "이것은 우리가 위대한 소설이라 부를 소수의 20세기 작품군에 포함될 만한 눈부시고 강력한 소설(Drilliant and powerful novel)"이라 경탄했던 일, 작가 필립 로스가 순교자』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토로했던 일 등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에도『순교자』에 대한 그런 평가는 유효할까? 그것은 ‘세계문학전집‘에 우
교자 재번역을 수행하고 있던 1978년 당시에도 이 소설에 대한 나의속내 평가는 그리 찬란한 것이 아니었다. 서른두 살 젊은 작가의 작품치고는 뛰어난 것이지만 한국 독자와의 관계에서는 문제가 없지 않다. 는 것이 솔직히 그때의 내 생각이었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모두한국인이고 사건 무대도 한국전쟁이지만 소설의 주제 자체는 너무도서구적인 것이어서 그 서구적 주제와 한국인의 경험 내용 사이에는잇기 어려운 간극이 존재한다고 나는 판단하고 있었다. ‘고통의 의미와 무의미‘라는 문제는 순교자의 핵심에 놓인 큰 주제의 하나이다.
그다음 장들로 마치 마법에 홀린 사람처럼 숨 돌릴 틈 없이 소설의 사건 속으로 빨려든다. 독자를 생포하는 이 흡입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사건 전개의 삐른 템포, 극도로 말을 아끼고 너절한 감상을 배제한 고도의 언어적 긴축과 절제, 흥미로운 인물들, 예상을 깨는 전환과 반전, 건조한 문체 뒤에 깊게 숨겨진 폭발적 열정 - 이런 요소들은 『순교자가 꿀통처럼 독자를 끌어당기는 이상한 힘의 진원이다. ‘침묵‘ 도 비밀의 하나이다. 『순교자』는 역설적이게도 많은 부분에서 정보공급을 차단하는 침묵의 기법으로 되레 판단정보를 암시하고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 모든 비밀들 중에서도 내가 보기에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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