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일이 있나 보다 하고 넘어갔으면 사건이 터지지 않았을 텐데.... 이런 식으로 계기들이 이어져, 결국 시어머니에게 폭언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부부 싸움을 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상대방의 가족을 싸잡아 비난하거나 문제의 원인으로 물고 늘어지는 것인데, 이 부부는 그 정도가 아니라 직접폭언을 해버렸기에 도저히 수습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가고 만것이다.
부부 싸움은 필요한 것이지만, 매우 소모적으로 반복되는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문제만 지적하면서 일방적으로 변화를요구하기 때문이다. 그 근거와 논리는 대개 타당하다. 그러나논쟁으로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공격적인 태도로 나를 변화시키겠다고 달려드는 사람 앞에서는 마음을 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더 나아가 오히려적반하장으로 나올 수 있다. 인간은 이성보다 감정의 지배를훨씬 많이 받기에, 누군가가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면 거의 본
에로티즘과 관련하여 결혼이 지니는 함정은 습관이다. 무한히 허용되는위반은 더 이상 위반이 아니다. 간단히 말해 결혼은 성행위를 습관화하고, 습관적 성행위에는 위반의 느낌이 약화되고, 위반의 부재는 관등의부재를 야기한다. 만일 혼외정사가 에로티즘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 면, 거기에는 육체적인 이유보다 정신적인 이유가 더 클 것이다. 다시 말해혼외정사에 흥분, 기대, 죄의식이 소용돌이치는 강렬한 위반의 느낌이 없다면, 그것은 격렬한 에로티즘을 불러일으키기 힘들 것이다. 3
자기 배반의 덫에 걸려들지 않고 삶의 절정을 맛볼 수는없을까. 파멸의 위험을 떠안지 않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스릴은 가능할까. 외도의 유혹은 희박한 존재감에 대한 각성일수 있다. 불륜의 번민은 자신을 깊이 알아가면서 삶을 크게 배우는 공부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바깥의 길은 다시 안으로 향한다. 사랑의 본거지에 이르는 여정이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삶이냐』라는 책에서 ‘쾌락‘과 구별되는 ‘기쁨‘을 환기시키며, 그 핵심으로 내적 탄생birth within‘을 역설했다. 매 순간다시 태어나며 언제나 살아 있다는 느낌, 삶에 스며드는 희열과 자아의 신화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행복의 연금술사를 찾아 방황하는 우리에게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은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의 힘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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