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주 개봉영화를 한 편 이상 감상한다. 작년만 하더라도 코로나로 인해 무척 신경이 쓰였는데 극장에서 나름 방역도 철저히 하는것 같고, 내가 보는 영화들이 별로 관객이 없을뿐더러 주로 주말 오전을 이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쾌적하게 감상한다. 주중에는 주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서 위시리스트에 넣어놨던 영화를 출퇴근시 감상한다.마지막으로 보유 디비디를 이용해 홈씨어터를 즐기는데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비용은 제일 많이 소요됐지만 활용도가 좀 떨어져 아쉽다. 물론 은퇴를 하면 가장 많이 사용할것 같기는 하다. 디비디 타이틀도 이것 저것 다양하게 가지고 있지만 그중 한 섹션이 고전영화다. 가끔씩 고전영화를 보고 리뷰를 올리기도 하는데 가이드로 영화에 관한 책들을 살펴본다. 이 책은 그런 차원에서 구입해 읽어봤다.저자는 유종호 교수로 한국 문단의 1세대 평론가이자, 섬세하고 날카로운 언어감각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작품을 대한다는 정평을 얻고 있는분이다. 정통 문학평론 이외에 에세이나 꽤 많은 책들을 내셨는데 이 책도 그중 한 권이다. 우연히 술 자리에서 영화에 대해 논하다가 신문의 칼럼제의를 받고 세계일보에 연재한 원고를 모아 이렇게 책으로 펴내셨다고 한다.아무래도 전문 영화평론가가 아닐뿐더러 연세가 있으신지라 문체가 다소 고루하고 영화에 관한 정보가 조금 단면적인건 있지만 오히려 그 점이 색다르게 다가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교수님은 책에서 겸손하게 이렇게 말씀을 하신다.˝고도로 예술적이고 첨단적인, 난해한 영화도 있다. 그것은 훈련된 관객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룬 영화는 작품의질과 관객 호응이대체로 일치하는 것들이다. 그 점에 의지해서 마음 놓고 이 글을 썼다. 오래전에 본 영화를 얘기하다 보니 착오가 있을 것이다. 고의성 없는착오는 삶의 한 형식인 회상의 불가피한 속성이라 생각하고 양해해 주기 바란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적은 경우도 있지만 배우 이름으로 대신한 것도 많다. 영화 얘기할 때 흔히들 하는 일이니 역시 양해해 주기 바란다.˝그래도 나름 알차게 영화를 소개하신다.˝1830년의 연대기란 부제가 달린 스탕달의 [적과 흑]을 영화화한 문예 영화이다. 요즘 문예 영화란 말은 사라졌지만 문학 작품을 비교적 충실하게 영화화한 영화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특히 미국영화에서 문학 작품을 기반으로 했으되 자유롭게 각색한 작품이 많아지고 또 영화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슬그머니 사라지게 되었다. 1054년에 제작된 이 색채 영화는 1950년대에 관람한바 있지만 최근에 디브이디로 다시 구경했다. 역시 오래된 영화라 템포가 더디고 장면 변화가 굼뜨지만 그렇기 때문에 옛 영화특유의 한가함을 느끼게 되는 것도 별미였다. 알몸의베드 신이없는 것도 옛 영화답다.˝총 66편의 영화가 소개된다. 이중 절반정도 감상한것 같은데 못 본 영화중에 관심이 가는 영화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역시 영화에 관한 책을 읽게 되면 이런 부작용이 덤으로 따라온다. 그중 프랑스 영화인 [인생유전(천국의 아이들)]에 가장 관심이 간다. 김수영 시인이 일기에서 이 영화에 대해 엄청난 혹평을 남겨놓았다는 글을 읽고 더 궁금해졌다. 아무튼 노교수의 영화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 무척 흥미로웠다.˝방대한 독서를 바탕으로 저자가 적시적소에 배치한 인용 역시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공감대를 넓히거나 비판의 연장선에 설 수 있도록 돕는다. 「인생 유전」에서는 이미 작고한 김수영과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는 대목이 흥미롭다.김수영은 일기에서 [인생 유전]은 시시한 영화다. 그 제목부터가 고색창연하였고 내용도 구태의연하다. 나는 이 종류의 불란서적 리얼리즘을 극도로 싫어한다. 결국 [인생 유전]은 불란서적 영화 협잡이다. 그것을 모르고 아직도 불란서 영화라면 모두가 예술 영화이며 일류 영화라고 생각하는 무리들이 나의 주변에 있다는 사실은 나를 질식시킨다.라고 말한다.이에 대해 저자는 애증과 호오(好惡)가 분명한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나 있어 흥미롭기는 하나 수긍은 가지 않는다.라고 쓰며 이 영화의 대하 소설과 같은 장대한 흐름과 예술적 장면들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이어가고 있다. 다채로운 읽을거리로 영화의 본질에 접근해 가는 방식은 누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저자의 깊고 넓은 지적 세계를 실감하게 한다.(소개글 발췌)˝역시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고, 봐야 될 영화도 매우 많다는 교훈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