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그가 관직에서 물러나 은둔의 삶을 살기위해 성문을 빠져나갔을 때의 일이다. 서쪽 관문의 출입을 관리하던 수문장 윤회는 소를 타고 오는 흰 수염의 범상치 않은 노인을 알아보고 그를 잠시 멈춰 세웠다. 그리고 이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노자에게 잠시 쉬며 한 말씀만 남겨주시기를 간곡히 청했다. 노자는 그 청을 받아들여 앉은자리에서 오천여 자의 글을 써주었다. 이 문서가 지금까지전해지는 도덕경>이다. 성문을 빠져나간 노자의 이후 기록은 없다.
는가? 도는 영어로 ‘Tao‘, 혹은 ‘The Way‘로 번역되지만, 이것이 단순히길‘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노자에 따르면 도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고,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은밀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굳이 이 말의 의미를 설명해보면, 그것은 우주의 질서라고 할 수 있겠다. 우주 만물의 실체 또는 그 실체를이루는 근본 이치가 도인 것이다. 잠시 머릿속에 그려보자. 나를 포함한우주 전체를 말이다. 우리는 앞서 우주에 대해 충분히 다뤘으니, 초차원의 시공간에서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는 수많은 미니 우주의 거대 집합을 상상해도 좋을 것이다. 너무나 아득하지만, 우선은 도가 그러한 우주의 실체와 우주가 운행하는 근본 원리를 말한다고 생각해두자.
노자의 도덕경>은 다양한 시대와 여러 문화권에서 널리 읽혀왔다. 깊은 상징과 해석의 다양성으로 어떤 이에게는 형이상학적 철학서로 읽혔고, 어떤 이에게는 초월적 경지에 이르는 수양서로 읽혔다. 또 다른 이에게는 정치와 권력에 대한 처세서로, 혹은 문학으로, 혹은 종교서로 읽혔다. 이 중에서 어떤 방식의 해석이 가장 옳은지를 묻는 것은 적절하지않을 것이다. 모든 고전이 그러하듯 좋은 텍스트는 해석과 함께 매 순간다시 탄생하는 것이니 말이다.
것으로부터 인을 실천할 수 있다. 오늘날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춰 인과예를 말한다면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좋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라. 공자는 인을 지향하고 예를 따르는 사람은 성인, 군자라고 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소인이라고 보았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군자와소인의 개념은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나를돌아보게 하는 기준이지, 남을 비난하는 데 사용하는 기준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대의 물질문명 속을 살아가는 나는군자인가 소인인가. 공자의 가르침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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