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운동이 되고 운동이 근무의 한 형태가 되면, 과거에는 별개로 취급되던 두 활동 간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회사 예산을 책정하면서 산책을 하거나, 서류를 작성하면서 자전거 페달을 밟거나, 심지어 점심시간을 이용해 서핑을하는 것은 모두 여가와 노동을 결합하는 행위다. 이제 직장생활은 우리가 건강을 챙기는 데 걸림돌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돌보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시간과 장소가 되는것이다. 그러나 회사가 원하는 기업적 선수의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운동은 또 다른 노동일 뿐이다.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과거에는 그의 자제력과 의지력이 부족했다고 암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는 어린애처럼 행동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대상의 ‘유아화‘가 대부분 식단 통제의 특징이다. 호화 유람선 여행을 하고 있다고 속아야 하는 구글 직원, 실종된 의지력이 신체 부위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상상해야 하는 덴마크공무원, 건강 학교를 다녀야 하는 스카니아 직원을 떠올려보시라.

신봉자와 모든 면에서 정반대의 특징을 구현한 인물이다. 저질 체력에 과체중에 무례하고 민폐나 끼치는 데다 만사에 부정적이다. 그런데 차브는 웰니스 신드롬의 덫에 걸린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죄책감을 투사할 편리한 대상이기도 하다. 현재형 인간이 새벽 스피닝 수업을 빼먹은 죄책감을 덜수 있는 간편한 방법은 텔레비전을 틀어 민망한 몸매를 보면서 ‘그래도 난 저 정도는 아니지‘라고 자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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