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해 19세기 말까지도 서구의 평균 수명은 40세에 한참 못 미쳤다.
4 초기 자본주의는 한마디로 비인간적인 괴물이었다. 초기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만들어낸 사회의 모습이 이러했으니 자본주의의 대안을찾으려는 시도가 생겨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러한 시도의 결과가 사회주의(Socialism)이다. 사회주의는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초기 자본주의를 대체할 대안으로 등장했다.

공산주의는 실패로 끝났고, 일정한 성공을 거둔 중국식 사회주이는 공산당 일당 제제에서 가능행기에 민주주의를 기할하는 한국에게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는 복기국가를 이루는등의 성과를 기두었고 시장 근본주의적인 영미식 자본주의와는 다른 유럽식 자본주의를 만드는 데 기여했기만 기금은 다른 자본주의체제와 마찬가지의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사회주의 경제체제들의 역사적 실험 결과에 비춰보면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냐는 길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 라고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사라져가고 있으나 우리를 여전히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추동시켰던 가치와 이상을 그냥 제쳐둘 수가 없다. 그 중

한 교훈이 된다. 스웨덴은 제3의 길을 택한 이후에 사회민주주의적인 정책들이 후퇴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하기전 2007년까지는 여전히 세계에서 소득 불평등도가 가장 낮은 나라였다. 지금의 자본주의가 위기에 봉착하고 회의론이 제기된 가장 큰이유가 분배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를 위해서 사회민주주의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이 아직도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일그러진 모습의 자본주의 대안은 무엇인가?
그 답은 ‘자본주의 고쳐 쓰기‘이다.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아니며, 더구나 ‘제3의 체제도 대안이 아니라면 지금의 선택은 자본주의 고쳐 쓰기‘일 수밖에 없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배에 구멍이 났다고 해서 배를 버리고 바다로 뛰어드는 것은 죽는 길이다. 살아남으려면 갈아탈 배가 올 때까지, 또는 육지에 다다를 때까지 구멍을

가 자신의 기득권을 악용하여 경쟁 과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하고 다시 불공정한 경쟁을 반복해서 계속 승자의 지위를 굳혀가는사례는 더더욱 흔하게 있는 일이다. 이러한 경쟁의 속성 때문에 자본주의의 현실에서는 노직이 규정한 정의로운 사유재산의 원칙을 충족하는 사유재산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노직이 정의로운 사유재산의 불가침성을 이유로 분배에대한 교정 시도를 반대한 것은 논리적 모순인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노직이 반대하는 정부의 분배 정책은 오히려 사유재산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자유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정의로운것이지, 노직의 주장처럼 단순히 정부가 시장에 개입했기 때문에 자유를 침해한 것은 아니다.

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대학 입시를 치를 때까지 19년 동안 남들보다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대학 입시는 19년 동안 이미 결정된 ‘실력‘을 측정하는절차나 마찬가지이지 경쟁의 시작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대학 입시의 기회균등은 절차적 공정성에 불과하며, 실질적 공정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학력 사회인 한국에서 일류 대학에 합격한 아이들은 졸업한 이후에도 남들보다 더 좋은 직장을 갖게 될 가능성 높기때문에 47 대학 입시는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불평등을 용인하고 더욱 강화시켜주는 절차가 되는 것이다.

정의에 대한 철학적 논의에서 정의를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슈는 ‘분배‘ 이다. 따라서 공정한 분배는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또한 공정한 경쟁과 분리하여 분배의 정의를 강조하는 이유는 균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을 보장한 경쟁의 결과를 나눈다고 해서 당연히 공정하고 정의로운 분배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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