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로 예술적이고 첨단적인, 난해한 영화도 있다. 그것은 훈련된 관객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룬 영화는 작품의질과 관객 호응이 대체로 일치하는 것들이다. 그 점에 의지해서마음 놓고 이 글을 썼다. 오래전에 본 영화를 얘기하다 보니 착오가 있을 것이다. 고의성 없는 착오는 삶의 한 형식인 회상의불가피한 속성이라 생각하고 양해해 주기 바란다. 등장인물의이름을 그대로 적은 경우도 있지만 배우 이름으로 대신한 것도많다. 영화 얘기할 때 흔히들 하는 일이니 역시 양해해 주기 바란다.

1939년의 바르샤바 거리를 흑백으로 보여 주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전차가 지나가고 바쁜 걸음의 행인들이 보인다. 이어 방송국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는 말끔한 주인공의 모습이 보이고 독일군의 공습으로 벽과 천장이 무너지며 주인공이가벼운 찰과상을 입는 장면이 나온다. 1939년 9월 초의 일이다.
그 후 1945년 1월 바르샤바에서 독일군이 축출될 때까지 오 년오 개월 동안 주인공이 겪은 연속적 구사일생의 자초지종이 숨막히게 전개된다.

1830년의 연대기‘란 부제가 달린 스탕달의 『적과 흑을 영화화한 문예 영화이다. 요즘 문예 영화란 말은 사라졌지만 문학 작품을 비교적 충실하게 영화화한 영화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특히 미국영화에서 문학 작품을 기반으로 했으되 자유롭게 각색한작품이 많아지고 또 영화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슬그머니 사라지게 되었다. 1054년에 제작된 이 색채 영화는 1950년대에 관람한바 있지만 최근에 디브이디로 다시 구경했다. 역시 오래된 영화라 템포가 더디고 장면 변화가 굼뜨지만 그렇기 때문에 옛 영화특유의 한가함을 느끼게 되는 것도 별미였다. 알몸의 베드 신이없는 것도 옛 영화답다.

안토니오니는 유명한 「정사」를 통해 알게 되었고 소감을 적은바가 있다. 그 후 많은 수작을 냈다지만 디브이디로 근자에 구경한 것은 「구름 저편에, 정도다. 색채 영화여서 더욱 돋보이는 서정적 화면은 더할 나위 없이 일품이지만 모더니스트의 ‘예술 영화 답게 모호한 구석도 적지 않다. 관객 쪽에서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영화의 의미를 완성해야 하는, 말하자면 열린 텍스트이다. 그러나 그림엽서 같은 유서 깊은 도시의 운치 있는 거리나건물의 정경은 그것만으로도 압권이다.

의사의 이름은 토마스이고 이골이 난 바람둥이다. 쿤데라는소설에서 바람둥이에는 서정형과 서사형의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서정형은 자기의 이상적 여성을 상대 여성에게서 찾고 서사형은 여성의 무한한 다양성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것은서정적인 것과 서사적인 것의 고전적 구분과 일치한다. 즉 서정시는 자기 계시적인 주관성의 표현이고 서사시는 세계의 객관성을 포착하려는 충동에서 나온다는 헤겔의 구분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토마스는 서사적 충동의 바람둥이로서 여성 편력을 통해그 무한한 다양성을 음미하는 것이다.

"소설이라는 거대한 허위는 세부의 진실에 의해서 성립된다."
라는 발자크의 말을 재확인하게 된다. 장구한 시간이 걸리긴하지만 결국 소원 성취를 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아주 개운한느낌을 준다. 악질적인 중죄인이나 상습적 비행자가 아닌 이상관객들은 주인공의 성공에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마련이다.

져 들어가는 영화관에는 그 고유 매력이 있다. 그렇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과절차가 너무 성가시고 소모적이다. 그래서 디브이디로 보고 싶은 영화를 본다.
케이블 텔레비전이 있지만 시간 맞추기도 성가시고 또 허드레 영화가 너무나많다. 디브이디의 장점은 자투리 시간을 선용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보고 싶은 때에 볼 만큼 보면 된다. 눈이 피로하면 중간에 쉴 수 있고 또 두었다 볼 수있어 편리하다. 또 고전의 반열에 드는 영화를 구해 볼 수 있어 좋다. 가격도상대적으로 저렴해서 전자 민주주의 시대란 말이 실감이 난다. 근대 소설 같은것은 사실상 ‘빈민의 고전‘이란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야말로 대중의 예술이며 향수자의 의지에 따라 ‘빈민의 새 고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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