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지나오며 그렇게 한국의 계층 간 교육 격차는 계속해서확대되어, 이제 교육은 계층 상승의 도구가 아니라 세대 내 불평등을재생산하고 고착화하는 수단으로 성격을 바꾸었다.
하지만 그들 상위권 학생 및 학부모의 교육 인식에는 중위권 및 하위권학생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한 가지 존재한다. 바로 교육을 ‘출세‘를위한 통로로 인식하며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입시 문제는, 입시를 이미 경험한 사람은 입시가 끝났기 때문에관심을 끄고, 입시의 당사자는 당장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체념하고적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낳았다.
그해 최대의 화두는 단연코 ‘조국 사태‘였고, 조국 사태를 둘러싼 그 수많은쟁점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큰 파급력을 가진 것은 무엇보다 딸의 입시문제였다.
다시 한번 지적해두자면, 학벌을 비롯한 각종 고등교육 문제가 생기게 된이유는 단순하다. 대학이 교육과 평가에 있어서 자율성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대학이 차등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이 자율성을 갖게 된 것은경로의존성과 시대적 한계 때문이었다.
즉, 교육이 생산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지식이 주가 되어야 한다. 혹자는지식 이외의 다른 것을 논하기도 한다. 교육이 인성이나 창의력 등에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진보교육론자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주장들은 교육에 대한 잘못된 가정과 근거 없는 막연한 감상에 기대고 있는경우가 대부분이다. 언제나 사회는 실질적인 기능과 지식을 갖춘 이들을우대했으며, 인류의 역사는 시대 변화에 더 적합한 기능과 지식을 갖춘양질의 인적자원을 확보한 사회가 승리해온 역사였다. 인성과 창의성은언제나 교육의 진짜 목표와 기능에서 부가적인 수준만을 담당했을따름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의 입시제도가 겪은 변천사를 생각하면 이런 논쟁이실질적 의미가 없을 것이고, 어떤 입시 개혁안이 나와도 전체적 그림은전혀 바꿀 수 없다는 것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교육을 구성하는 가장강력한 힘인 ‘속의 요구, 즉 입시를 사회적 지위 획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관념이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어떤 겉의 가치를 표방하고 어떤 제도를갖고 와도 중산층과 상류층들의 해킹 대상이 될 뿐이다.
조국 같은 ‘초엘리트‘는 특권으로 스펙을 만들 수 있었지만, 그 밑의중산층들은 각종 사교육을 통해서 자녀를 특목고에 진입시키고, 거기서막대한 투자를 통해 추가적 스펙을 만들어낸 뒤에 명문대로 밀어넣을 수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도 역시 보수와 진보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