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들이 두툼한 빵 조각 사이에 끼워지기 전까지 지내는곳이 비육 농장이다. 자돈 농장을 떠난 돼지들은 여기서 3개월간 살을찌운 다음 도축장으로 보내졌다(비육은 짐승을 살찌운다는 뜻이다). 처음 내가 찾아간 곳은 경기도 양주의 양돈장이었는데 아직 공사 중이었다. 건설 인부는 일당이 비싸기 때문에 농장 직원으로 고용한 다음 건설 작업을 시키고 있었다. 돼지가 없는 양돈장에서 일하는 건 내 계획에서 심하게 벗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에 다른 농장을 찾아보기로 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횡성에 있는 양돈장이었다.
돼지가 본능적으로 먹는 곳과 배설하는 곳을 구분하는 청결한 동물이라는 설명을 자주 들었지만 비육사의 돼지를 실제로 보고 있으면 그런 말이 좀처럼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어쩌면 이는 돼지들의잘못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위와 같은 본능은 효과적일 수 있을 때에의미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돼지들이 원하는 만큼 충분한 거리를 둘수 있을 때 먹는 곳과 배설하는 곳을 구분한다는 말이다. 돼지들이 돈방 구석에서 똥을 싸고 그 자리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해도 네다섯 걸음 정도 걸어가면 벽으로 가로막힌다. 그것도 돈방 안에 다른돼지가 거의 없을 때나 그렇고 평소에는 다른 돼지들에게 가로막혀서그렇게 ‘멀리‘ 이동하지도 않는다. 돈방의 크기와 수용 두수는 동마다 달랐는데 돼지가 클수록 돈방 크기도 조금씩 커졌다. 정리해보면 이렇다.
문제의 ‘세상‘은 사장이 제대로 된 사료 대신 음식 쓰레기를 개들에게 먹일 수 있게 해줬고 그가 산과 논을 더럽혀도 그대로 내버려뒀고노동자들을 혹사시켜도 문제 삼지 않았다. 그가 교묘하게 법망을 피한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법체계 안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계산에는 아직 동물이 겪는 고통은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그러니 사장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세상은 사장 같은 사람들에게 호락호락한 정도가 아니라 수리얀이나봉휘 아저씨 같은 사람들은 결코 누릴 수 없는 특혜를 몰아준 것처럼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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