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오직 하나의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다수의 마르크스주의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로수렴할 수 없는 이런 다수성으로 인해 마르크스주의는 여전히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낡은 일‘ 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마르크스도 유령처럼 이를 따라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최종적 결론이라기보다 새로운 문제를 인지하기위한 질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의 상황이었고, 서구의 경우 많은지식인은 이미 1950년대부터 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을 예측하고있었다. 서구 마르크스주의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현한 것이다. 서구 마르크스주의는 소련의 스탈린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루카치의초기작 『역사와 계급의식과 칼 코르쉬의 『마르크스주의와 철학을이론의 토대로 삼아 탄생한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경향이다. 한마디로 신좌파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처음부른 이는 프랑스의 현상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로 알려져 있는데, 대개 그 구성원들은 대학에 몸담고 있는 마르크스주의 연구가들이었다.

그람시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손해를끼치는 이념과 결탁해서 이에 대한 강고한 믿음을 보여주는데, 이런착시현상은 믿음과 이념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해서 종교적인 은유를 만들어낼 때 가능하다. 이런 방식은 지젝이 이데올로기를 판타지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과 유사하다. 지젝의 생각은 뒤에서 다루고, 먼저 그람시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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