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김은주 지음 / 봄알람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양팩의 아홉번째 책이다. 총 10권중 두 권의 책이 페미니즘 내지 여성운동에 관한 책이다. 공교롭게도 두 책을 쓴 동기가 모두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기인했다고 하니 그 사건의 영향이 상당했던것 같다.


제목이 상당히 인상적인데 책의 서두에 에이드리언 리치의 [며느리의 스냅 사진들]이라는 시에서 차용했음을 밝히고 있다. 오래된 철학사중 여성의 이름이 보이게 된것이 얼마 되지 않았으며 가부장제도하에서 여성들이 억압받았음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철학을 공부하는 여성들이 많지 않은건 가부장제도와는 큰 관계가 없는것 같다.


나도 문과에서 어문계열을 전공했지만 철학과 학생들은 대부분 남자였고 여자 동기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철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걸로 보였는데 모든게 남성 우월주의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는건 아닌듯 싶다. 교대에 수재급 여학생들이 몰리는걸 보면 대충 이유를 알 수 있을것 같지만 아무튼...뭐


책에서는 여섯명의 여성 철학자들이 소개된다. 한나 아렌트야 워낙 유명하신분이니까 알고 있었지만 나머지 철학자중 주디스 버틀러와 스피박 정도만 이름을 들어본것 같다. 간단하게 철학자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새롭게 알게 된 학자들중 시몬 베유라는분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간다. 그녀의 실천적인 삶에 절로 존경심이 일어났다. 조만간에 그녀의 책을 찾아서 읽어볼 예정이다.


소개글에 각각의 학자들에 대한 글을 추려서 올려본다.


폭력의 시대에 사유로 맞서다, 한나 아렌트


의심의 여지 없이 한나 아렌트는 이미 20세기 철학사에서 빛나는 존재감을 가진 철학자다. 그의 일생의 동력은 ‘사유하는 기쁨’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그리고 마지막까지 비판으로서의 사유가 지니는 힘을 신뢰했다. 처음 유대인으로서의 차별을 겪었을 때 그것에 분노하기보다는 그것을 이해하고자 한 어린아이였으며, 나치가 집권한 뒤 망명해 떠돌아야 했을 때에도 비관에 젖기보다는 전 세계로 확산되는 믿을 수 없는 폭력의 현실을 똑바로 보고 해석하고자 했다. 그는 기존의 해석 틀을 벗어나는 사유를 지속하며 점점 독자적 영역으로 나아갔다. 아이히만 재판을 지켜보며 유명한 ‘악의 평범성’ 개념을 주장해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비난을 받고 고립되기도 했지만 그의 독실한 사유 여정을 멈추지는 못했다. 그는 사유의 힘으로 그만의 정치철학을 수립했고, 지독한 폭력의 시대에서 인간성을 신뢰하는 데 ‘성공’했다.


서발턴의 목소리를 들어라,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인도 콜카타에서 태어난 그는 벵골어와 영어를 절반쯤씩 모국어로 갖고 있지만 화술로는 국가기관이 인증한 토론 챔피언인, 다소 독특한 배경을 지닌 활동가이자 학자다. 그는 자신의 논문 제목이기도 한 유명한 질문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통해 목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문제를 정면에서 조명했다. 그것이 제국주의든 자본주의든 가부장제든, 온갖 종류의 권위주의는 권위를 갖지 못한, 권위적 주체에 의해 타자가 된 이들의 목소리를 지워낸다. 이들 서발턴(하위주체)을 침묵에 빠트리는 광범위한 인식의 폭력에 공모하지 말 것을 요청하며 스피박은 서발턴 자신이 말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3세계’ 문제, 세계 각지의 여성 문제에 실천적으로 개입하고 목소리를 내는 그는 “나를 제3세계 여성이라 부르지 말라”고 외친다. 


나의 욕망의 편에서 규범에 질문을 던지다, 주디스 버틀러


일찍이 그는 자기 자신이 세상이 말하는 기준과 불화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곧바로 질문했다. 그렇다면 나의 욕망은 틀린 것인가? 나는 나의 욕망을 억누르고 제시된 삶의 기준을 따라야 할까? 스스로 물은 뒤, 그는 그러지 않기로 결정한다. ‘올바른 삶’이라고들 하는 그 규범이 자신의 욕망을 억압한다면 규범과 조건을 바꾸겠다고 말이다. 그는 전 세계에 파문을 던진 책 『젠더 트러블』을 통해 ‘젠더’ 자체를 문젯거리로 제시하고, 기존의 이분법을 가차 없이 허물었다. 그리고 잘못된 통념으로 욕망들을 억압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 자체, 욕망 자체를 인정하고 인정받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서로의 인정을 통해 개인의 욕망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 모일 때에 공동체는 살 만한 곳이 된다. 다른 이의 삶은 나의 삶의 조건이다.


죽은 백인 남성의 지식에서 벗어나기, 도나 해러웨이


도나 해러웨이는 과학자이자 철학자, 페미니스트다. 그는 페미니즘 관점에서 영장류를 연구해 독보적 이론가로 자리 잡았다. 나아가 그는 영장류학을 포함한 과학 전반이 남성적 원칙에 기초해 있음을 비판하며 기존의 과학이 토대로 삼은 이분법적 전제 자체를 문제시했다. 그는 백인 유럽 남성들의 전유물과도 같은 ‘객관적 지식’이라는 환상 대신 ‘상황적 지식’ 개념을 제안하고, 모든 상황을 떠나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진리의 담지자가 되는 대신 ‘겸손한 목격자’로서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이미 우리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이분법의 망령을, 애써 벗어버려야 한다. 그를 위한 길잡이로서 그는 ‘사이보그’를 제시한다. 사이보그는 동물과 기계의 경계, 정상성의 범주 자체를 붕괴시키는 존재다. 그는 사이보그 개념을 통해 여성을 사유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 질문하며, 선언한다. “나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그의 삶은 고의적 어리석음의 연속이었다, 시몬 베유


시몬 베유. 가장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겠다 결심하고 교단을 떠나 육체노동자의 삶을 살았으며 병중에도 전쟁 포로들과 동일한 식사를 고집하다 서른넷의 나이에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난 그의 삶은, 강렬하다. 인간의 현실은 고통의 연속이다. 생존을 위해 인간은 너무나 쉽게, 얼마든지 비루해질 수 있다. 인간이 처한 이런 조건을 베유는 ‘중력’이라 불렀다. 이 중력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괴물이 되지 않고, 삶의 의미를 매섭게 응시할 수 있을까? 베유는 가장 약한 이들의 고통에 치열하게 공감하며 사유했고, 중력 속에서 은총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신학자 도로테 죌레는 그를 “현대의 성자”라 불렀다.


경계의 공간에서 세상을 사유하기, 쥘리아 크리스테바


프랑스의 대중지식인이자 세계적으로는 포스트구조주의의 선두에 있는 대학자인 쥘리아 크리스테바. 그는 불가리아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학술 활동을 시작했다. 일찍이 스스로를 어디에 귀속될 수 없는 이방인으로 경험한 그는 일찍부터 자신의 이러한 ‘경계성’을 역량으로서 받아들였다. 그는 텍스트에 완결적 의미를 부여하는 저자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독자가 있다는 기존의 인식을 뒤집는 상호텍스트성 이론으로 텍스트의 경계를 허문다. 주체와 대상 또한 결코 깨끗이 나뉠 수 없다. 그는 비체(아브젝시옹)를 통해 주체의 경계에서 출몰하는 전복성이 갖는 힘을 조명한다. 무의식적인 것, 말해지지 않는 것, 경계에서 출몰하는 것들에 창조성의 근원이 있으며 경계성을 무화하고 억압하는 기존의 이분법은 다름에 대한 배척, 혐오, 폭력이 될 수 있다. 경계인으로서 세계를 이해하는 것, 이것이 동일성을 고집하는 딱딱한 자아를 넘어 사랑의 활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열쇠다.




얼마 전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해군 병사를 조롱하는 글을 올렸던 워마드의 유저를 보고 한숨이 나왔다. 저런것들도 페미니즘에 속하나 싶다. 책의 마지막에 너도 메갈이냐고 물어본다고 하던데...메갈이 중요한게 아니다. 니가 이렇게 하면 나도 이렇게 한다는 식의 대응은 이슬람 국가에서나 통하는 얘기다.


홀로코스트를 겪고도 팔레스타인들을 탄압하는 이스라엘 국민들을 보면 정이 안간다. 유대인의 피해자 코스프레라니...아무튼 남녀가 중요한게 아니고 우리 사람이 좀 되자....사람이.... 읽어볼만한 책이다. 시몬 베유의 책을 찾아 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