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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ㅣ 믿음의 글들 9
앤도 슈사꼬 지음, 공문혜 옮김 / 홍성사 / 199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에 마틴 스콜세지옹의 사일런스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극장에서 보려고 했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아 영화를 놓쳤는데 찾아보니 원작소설이 있는걸 알게됐다. 엔도 슈사쿠의 작품이었는데 노벨상 후보로 여러번 거론된걸 기억하고 있어서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물론 그의 소설은 한번도 접해본적이 없다.
침묵은 엔도 슈사쿠의 대표작으로 그가 평생에 걸쳐서 다뤘던 일본인과 카톨릭에 대한 주제를 심도있게 다룬 작품이다. 로마 교황청에서 훈장을 받았을 정도로 서양에서도 인정받는 소설인데, 영국의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은 ‘20세기 가톨릭 문학에 있어 누구보다도 중요한 작가‘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가톨릭과 일본인의 정신적 풍토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과 갈등을 둘러싼 끊임없는 문제 제기와 근원적 고찰을 목표로 여러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이 소설은 그가 지향하는바를 잘 그려낸 걸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설의 배경은 17세기로 카톨릭을 허용했다가 교리의 문제를 느낀 막부에서 본격적으로 탄압을 시작한 시기다. 여러 신부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던 포르투갈 예수회 소속 신부 페라이라의 열렬한 선교와 그후 그가 배교했다는 소문이 돈다, 그 배교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종교탄압이 한참인 일본으로 떠나는 신부들의 고난과 갈등을 다룬 소설이다.
하나님을 믿는 기리시탄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죽어 가는 일본 민중들의 아픔을 외면한 채 침묵을 지키고 있는 하나님에게 로드리꼬 신부는 절규를 하며 수 많은 의문을 가진다. 도대체 이런 고통으로 밀어넣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그를 신고한 일본인 기찌지로는 신부에게 따져 묻는다. 왜 자기가 지금 태어나서 이렇게 박해를 받느냐며? 카톨릭이 허용됐던 시대였다면 아무런 고통없이 하나님을 섬기고 즐겁게 살며 천국으로 갔을텐데 라고....
물론 신도들은 모든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겠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이기도 하다. 종교의 부조리성을 느끼는 순간이다. 어차피 일본에서 하층민들에게 카톨릭이 퍼진 이유는 현실에 대한 부정과 내세에 대한 강한 열망에서 비롯됐지만, 일본인 특유의 다양성으로 인해 그리스도교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일본에서 기독교인의 비율은 상당히 낮은거롤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엄청난 선교와 세계적으로 커다란 대형 교회들이 교세를 확장하는걸 보면 일본인과 한국인들은 같은 동양인이라도 성향이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신학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라는 문제를 신앙을 부인해야만 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고민하는 인물들의 심리적인 내면을 적절하게 잘 묘사한 훌륭한 소설이다.
종교를 떠나서 자기의 신념과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추천한다. 영화의 리뷰를 먼저 올렸지만 소설을 읽고나서 영화를 봤는데 두 작품 모두 괜찮다는 생각이다. 서로 다른 지점을 발견하는 재미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