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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불운
아무도 예상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운인거지.
내 꿈을 위하여 오늘도 화이팅. 내일은 더 행복해 질거야 라는 기대를 가지고 사는 거지, 언젠가는 불운이 날 덮칠거야 라고 생각하며 살진 않는다. 그렇게 자만하며 방심하는 그 순간 찾아온다. 다섯째 아이가.
이물감
하얀 이 사이에 낀 고춧가루 이야기. 행복해 보이는 가족 사이에 등장한 세상에 더없이 낯선 존재. 예기치 못한 존재가 이렇게 문득 내 삶에 등장한다면 그 두려움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남이라면 피하면 그 뿐이겠지만, 양육해야하는 내 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와의 싸움도 시작되는 것이다. 내 삶에 들어온 저 이물질을 어떻게 도려낼 것 인가. 모르는 척 할 것인가. 이물감을 인정하고 더불어 살 것인가.
세상이 기대하는 것과 다른 나를 찾고 싶어 계속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어 했던 나의 2-30대. 욕망과 희망을 구분하지 못해 불안정했고, 쾌락의 유혹에 위태로웠고, 방향감 없이 무질서하게 자신을 소모하여 바쁜 척하며 결국 나태했던 나의 청춘. 내가 내 자신에게 이물감을 느끼던 시절. 이 세상에 나만 어긋나 있는 것 같은 느낌. 잘못 박다 말아서 삐죽 나와 있는 못처럼. 이걸 더 쳐서 박아 넣어야 할까, 잡아 빼야 할까, 그냥 이렇게 놔두면 안 되는 걸까.. 매일매일 불안하던 시절. 산시로의 청춘. 이제는 그런 걱정은 없다.(그래, 나이 들어 좋겠구나 야.) 이젠 제법 세상에 익숙해진 40대이다. 것도 50세에 가까워진 40대. 물론 여전히 걱정스럽고 두려운 마음도 없진 않지만, 아침에 눈뜨자마자 불안해했던 20대와 비교하면 삶에 대한 두려움의 강도는 인간의 감각으로는 잘 느껴지지 않는 규모 3,0 이하의 지진.
대신 내 속으로 향하던 이물감이 타인에게로 향한다.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기에 그 언행의 범주가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괴물들. 나이값이란 낱말이 저절로 떠오르는, 유아적으로 이기적인 인간들을 보면 화가 난다. 퉤 뱉고 싶은 이물감.
진실
뭐가 진실일까.
아이를 보는 엄마의 시선. 벤이 괴물같은 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괴로워하면서도 괴물같은 그 존재를 받아들인다. 벤을 선택한 까닭으로 꿈꾸던 단란한 가족의 모습은 결국 붕괴되나, 그래도 끝까지 벤을 책임지는 이는 오직 엄마, 해리엇이다.
타인들. 두려운 눈초리로 그저 단순하게 떠들어대고 마는 주변인들 말고, 전문적 소양이 있는 타인들. 헤리엇의 주치의, 정신과의사, 교장선생님은 말한다. 벤은 다른 아이들과 매우 다르긴 하나 정상 범주에 든다. 느리지만 아이는 노력하고 있다. 오히려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생각이 이상하다. 누가 진실을 보고 있는 것일까.
가족들로부터도 괴물 취급받으며 경멸받던 아이는 타인들과의 접촉하게 되는 시기가 온다. 사회로부터의 극한 혐오감에 노출되어 급기야 사람들을 생닭 물어뜯듯 엽기살인마로 발전하는 거 아니야 했는데.. 이 괴물 같은 아이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의 타인들과 생각보다 잘 지낸다. 학교도 끝까지 다닌다. 뭐가 진실일까.
결국 아이가 살아가며 보여주는 모습이 진실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