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3

부암동 방문의 원 목적지였던 환기미술관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평일이라 사람도 별로 없고 한적하니 좋구나. 크고 시원한 작품이 보고 싶었다. 사실 지난 월요일에 MMCA(국립현대미술관)에서 5시간을 돌아다녔는데도 내 마음에 들어오는 작품하나를 못 만나 허전했었다. 그래서 부암동에 오고 싶었던 것 같다. 감동에 목 말라있는 나는야 선인장. 물을다오 물을. 결론부터 말하면 여전히 목이 말랐다. 전시가 뭐 나쁘지는 않았지만 정작 김환기의 작품은 별로 없었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도 나랑 교감되는 작품은 없었다. 환공포증 있는 사람은 김환기의 점화 작품은 절대 못보겠지? 하는 잡생각을 하며 돌아다녔다는.. 재작년(?) MMCA에서 윤형근 전시회 했을 때 그때 자주좀 갈 걸.. 2년이 지났는데도 그때 감동의 여운이 화선지에 먹물 번지듯 내안의 선을 자꾸 넘어간다. 단아하게 절제된 것 같으나, 흙, 나무, 하늘 물, 바람. 세상이 다 들어있는 것 같은 깊이의 색. 김환기와 윤형근이 장인과 사위 관계라는데 이렇게 뛰어난 예술가가 한 집안에 두 명이나 나오다니.. 참 대단한 인연인 듯. 집안 내력이라고 하기에는 사위는 혈연관계도 아닌데, 어쨌든 장인어른의 이름은 넘어서야 할 벽이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해낸 윤형근 화백도 정말 대단하다. 모든 예술가는 위대하지. 환기미술관와서 윤형근 전시회를 검색하고 있는 나. 오늘 부암동 내머릿속 미술관에 다녀오셨어요.
자.. 이제 잠시 쉬며 커피와 활자를 섭취할 타이밍. 엄청 고대했던 ㅈ카페는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오픈이 1시인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시각은 2:30 혹시나 휴가를 갔다거나 임시휴일인가 해서 인스타를 살펴봤지만 아무 예고도 없음. 오픈시간 안지키는 가게는 신뢰도급하락. 골든냐옹이 보고 싶었는데 나랑은 인연이 아닌가봐. ㅠㅠ 아쉬운 마음으로 창밖이 시원하게 잘 보일 것 같은 다른 카페로 들어갔다. 더러운 창문 너머, 그래도, 가까이에 북악산, 왼편 멀리 북한산까지 잘 보였다.

따뜻한 비엔나커피를 마시며 창밖 세상 움직이는 것도 훔쳐보고, 앤드루 포터의 세상도 한참 구경하며 부암동 산책은 마무리되었다. 여기저기 사부작사부작 잘 돌아다니다가 해 질 무렵 집에 돌아가는 길은 기분이 항상 차암 좋다.
p.29 「코요테」
그 해 여름의 저녁에는, 간혹 인근 언덕 지대에서 코요테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가 데이비드와 나가고 없을 때 나는 걸핏하면 내 침실 창문 밖에 있는 지붕 위에 앉아, 우리집 뒤쪽의 가파른 경사지에 사는 녀석들의 울음소리를 듣곤 했다. 녀석들은 낮에는 보이지 않다가, 밤이 되어 해가 거리 저편으로 떨어지고 나면, 멀리서 개들처럼 우짖었다. 뒤뜰의 잔디 너머로, 달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어두운 대양과 요트 정박지에 있는 자그마한 집들의 불빛들이 보였다. 나는 내 유년의 모든 때를 그 지붕에서 보냈을 것이다. 바다를 내다보면서, 충분히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에 대해 뭔가 의미심장한 발견을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p.68
고양이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자유를 좋아할 뿐이다. 그는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지만 항상 정해진 집으로 되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