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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평점 :
자신이 원하고 간절히 바랐던 삶, 그리하여 그 안에서 희열을 느끼고 웃음을 지을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권력과 명예와 부를 지녔다 한들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순수한 꿈에서 비롯하여 성취 되었거나 자신의 모든 것을 걸만한 가치 있는 것이었다면 모를까 결국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그 끝부분에 다다랐을 때, 만족한 미소를 지울 수 없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 있을까 싶다. 굳이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가르침을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아도,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자신이 그 동안 기를 쓰고 애써 소유했던 모두를 다 내어 놓고 가야 하는 우리 인생의 마지막 지점 앞에서는, 우리 모두 동등한 처지의 입장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때로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아예 다 드러내놓고 악의적인 삶을 사는 인생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이유로 그 누구의 삶은 정녕 아름다웠다고 혹은 아름답기는커녕 오히려 추한 인생이었을 것 이라고 당신은 판단 할 수 있을지, 또 무슨 근거로 함부로 재단하여 남의 삶을 그렇게 쉽게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싶기도 하다.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언젠가 친구에게서 우연이 선물 받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을까라는 책에서였다. 그 당시 나는 그분의 책을 통해 가난하고 순박했던 어린 시절을 거쳐 힘들고 처절했던 자신의 성장과정을 어쩌면 이렇게 진솔하고 아름답게 표현 할 수 있을까 하는 그의 글에서 작은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런 연유로 이번에 발간된 이 책은 조금 각별하게 다가온 책이다. 복잡한 서울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신이 자랐던 고향의 아늑함이 불현듯 느끼게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언젠가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거처를 옮기면서 자연과 더불어 동화되어 살아가는 지금 현재의 삶에서 그 동안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희열을 느끼면서 산다는 그녀의 담담한 이야기로 시작 되는 이 책은, 그가 살아온 인생의 긴 여정에서 때로는 용기가 없어 부끄럽고 너그럽지 못했던 자신의 회한적인 내용들과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상에 대해 맞닥트릴 희망적 충만함이 함께 담겨있는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지금까지의 삶의 과정에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했던 그리하여 한때 치열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과분하게도 자신을 감싸고 안아주었던 많은 이들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의 표현과, 자신이 걸어왔던 길과는 사뭇 다른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이제는 좀 더 가까이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배우려하는 겸허한 자세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녀의 글을 읽을 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솔직함에서 배어나오는 사실적인 생동감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은근이 전해져 온다는 것이다. 이 책 역시도 그녀만의 솔직하고 담백한 고백과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특히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향하여 외치는 그녀 특유의 표현법으로 보이는 사회 비판의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만큼 격한 세월을 살아온 인생선배로서 혹시 무덤덤하게 살아갈지도 모를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가지고 세상을 적극적으로 살라는 의미로 받아 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또한 그가 읽었던 여러 책에 관한 소감과 느낌을 적은 내용들에서는, 작가의 입장에서 본 책에 대한 그의 생각과 관점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신선한 내용이 될지 않을까 싶기도 하며, 이제는 고인이 된 김수환 추기경, 박경리, 박수근과의 이승에서의 교류 중 있었던 짧은 에피소드와 애틋한 사연들은 우리의 마음을 한결 숙연하게 만들기도 해서, 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독서의 묘미를 한층 깊게 느끼게 하는 책이라 여겨진다.
이 책 서두에서 말했듯이 그녀는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에 대해 마치 소녀와 모습과 같은 부끄럼으로 행복감을 마음껏 피력 하고 있는데, 내게는 그것이 책과 함께 독자를 대하는 일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어떤 절대적인 숙명처럼 보이기도 하고, 작가에게는 곧 세상과 소통하는 아주 보람되는 일이기도 하며, 살아가는 하나의 큰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란 누구든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길이 때로 힘들고 고달픈 가시밭길이어서 눈물로 점철되어지는 고난과 고독의 연속일지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비록 남이 알아주지 않는 초라한 것이어도 그 안에서 희열을 찾고 자신만의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여 최선을 다하는 삶일 것이다. 그녀에게서 문학은 자신의 아름다운 인생을 맛보게 해준 중요한 매개체였을 것이며 글을 쓰는 것에서 세상으로 나아 갈수 용기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에게 있어 세상은 경험해보지 못한 놀라운 세계들이 분명 어딘가에는 또 존재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를 갈망하는 자신을 위해서라도 힘차게 앞으로 한발 내딛기를 이 책을 통해 오늘도 간절히 소망하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글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미 크고 작은 감동을 많이 받아 왔다. 이 책 역시도 그녀가 세상을 향한 솔직하고 순결한 욕망이 한층 깊게 담겨 있는 글귀들에서, 거칠고 험한 세상을 견디어나가야만 하는 우리의 지친 가슴에 생생하게 다가와 따스함으로 다독거려주고 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한번쯤 읽혀졌으면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