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의 일과 영성 - 인간의 일과 하나님의 역사 사이의 줄 잇기
팀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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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로새서 3:23)

 

크리스천으로서의 가져야할 일에 대한 관점은 주님처럼 일하고 주님처럼 쉬라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노동은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으로 인해  우리가 받은 벌로 주어지는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일은 벌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일하셨듯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고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고 그것들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신 것처럼 아무것도 필요없을것 같은 낙원에서 경작이라는 노동을 사람들에게만 임무를 주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일만을 하도록 하신것이 아니라 쉼이 필요없는 전능자도 일곱째날에는 쉼을 가지심으로 인해 우리에게 쉼도 반드시 필요함을  몸소 보여주신다

 

우리 크리스찬들이 현 시대에서 노동을 육체적인 일로 간주하며 무시하는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며 일은 손으로 하는것이든 머리로 하는 것이든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크리스천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든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든 다 고귀하고 소중한것이다

 

다만 그일을 하면서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바른 마음으로 바른 선택을 했는지 그 일을 주께 하듯하지 않고 보이는 사람에게 하듯이 했는지는 늘 끊임없이 물으며 기도해야 한다.

 

교만은 본래 경쟁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두고 싶다. 본질적으로 경쟁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교만은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만 가지고는 기뻐하지 않으며, 옆 사람보다 더 많이 가져야 비로소 행복해한다. 흔히 부유하고 똑똑하고 잘 생기면 콧대가 높아진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남보다 더 풍요롭고 더 명석하며 더 훤칠해 보이는 데서 뿌듯함을 느낄 따름이다

자신의 경우는 어떠한지 묵상해 본 적이 있는가? 현재 직장에서 차지하는 지위나 위치가 은혜의 소산이라는 애길 들으면 펄쩍 뛰면서 아무개 학교에 들어가려고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고, 학생 때는 물론이고 신입사원 시절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으며, 동기들보다 얼마나 뛰어난 성과를 올렸는지 따위를 침이 마르도록 나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값을 치르지 않고 얻은 달란트를 가지고 공부했다. 제힘으로 열지 않은 기회의 문들을 통과했다. 열쇠를 쓴 게 아니라 그저 활짝 열린 틈으로 지나간 게 전부였다. 그러므로 지금 가진 건 하나같이 은혜의소산이며, 우리 각자에게는 그렇게 수중에 들어온 힘을 마치 제 능력을 사용하듯 활용하여 세상을 섬길 자유가 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과 세상을 섬기는 일에 힘을 모을 수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발판이 될 것이다. 남들과 함께 어울려 일하는 크리스천들에게서는 겸손한 협력과 진중한 도전이 두루 나타나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할 뿌난 아니라 일반 은총이 개념을 온전히 깨닫고 받아들인다면 신앙은 다르지만 주님이 크게 쓰시는 이들과 손을 맞잡고 한없이 유이한 일들을 이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적인 세계관을 바로 세워서 남다른 길을 추구하거나 기독교 신앙이 일을 썩 훌륭하게 해낼 힘과 지침을 준다는 사실을 이웃과 동료들에게 드러내고 알려야 한다.

크리스천이라 할지라도 올바른 신앙이 이끌어갈 정점에 섰다고 볼만큼 선하지 않으며, 예수님을 모르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그릇된 신념이 끌어갈 가장 낮은 바닥에 이르렀을 만큼 악한 게 아니다. 따라서 어느 분야의 일을 하든지 양쪽 모두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서 그 문화와 표현들을 비판적으로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반쪽짜리 진리를 알아보고 우상을 배격하는 법을 배우는 한편, 삶의 모든 국면에서 정의와 지혜, 진리와 아름다움의 흔적들을 분별하고 만끽하는 비결을 익힐힘이 생긴다. 문화에 참여하는 길과 관련된 복음과 성경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받아들인 크리스천이라면, 동료와 이웃들이 하는 일의 이면에서 움직이는 하나님의 손길을 누구보다 잘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천은 오직 한분, 사랑이 많으신 하늘 아버지만을 바라보며 일해야 하며 그런 마음가짐은 책임과 기쁨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자마자 그물을 버려 두고 따라나섰던 제자들은 훗날 다시 생선 만지는 일을 계속했다. 바울 역시, 복음 전도자로 일하면서도 장막 진ㅅ는 일을 놓지 않았다. 누구도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세속적인 일을 그만두거나 열심과 열의를 낮추지 않았다. 영구적으로 바뀐 게 있다면 일과 제자들 사이의 관계뿐이었다

사실 크리스천이라는 말의 참뜻은 예수님을 찬양하며, 따라가고, 순종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안에서 쉼을 누리는 이들을 가리킨다. 저마다 제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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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일과 영성 - 인간의 일과 하나님의 역사 사이의 줄 잇기
팀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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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께서 낙원에 일을 두셨다는 사실은 노동을 필요악이나 심지어 징계쯤으로 여기는 이들에게는 기겁할 만큼 놀라운 진리다. 일을 아담의 타락 이후에 인류역사에 끼어든 상함과 저주의 결과물로 보아선 안된다. 노동은 하나님의 정원에 존재했던 축복의 일부다

하나님이 스스로 일하신 뒤에 쉬셨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은 저주이며 여가, 가족, 또는 영적인 추구 같은 그밖의 요소들이 삶의 의미를 찾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성경은 오직 노동만이 인간의 중요한 활동이며 쉼은 필요악으로여기는 반대쪽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준다..... 주님은 굳이 쉬지 않아도 기력이 떨어지지 않는 분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하루를 비우셨다. 인간은 그분의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므로, 쉼, 그리고 쉬면서 하는 일들 자체가 생기를 불어넣는 선한 요소로 볼 수 있다. 삶에는 일만 필요한 게 아니다.

도리어 일을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도구로 보아야 하며 그 목적에 따라 직장을 선택하고 업무에 임할 필요가 있다. 직업을 선택하기에앞서 던져야 할 질문은 무얼 해야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지금 가진 능력과 기회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과 이웃의 요구를 늘 의식하면서 최대한 다른 이들을 섬길 수 있을까?이어야 한다

평신도들이 스스로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주일 아침에 하는 일과 주주엥 하는 일을 연결시키지 못한 채 일종의 이중생활을 이어 가는 비극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런 이들이 알아야 할 점이 잇다. 일상생활 중에 하는 바로 그 활동들이 곧 영적인 일이며 멀리 떨어져 계시는 게 아니라 이 땅에 살아 움직이시는 하나님과 이어 준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영성은 일이 곧 기도라고 속삭일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섬기며 사랑하는 걸 으뜸으로 삼고 살도록 지음받았으며 거기에 충실해야만 비로소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 사는 쪽을 택하면 모든 게 뒷걸음질 치게 된다. 역사상 최고의 사건으로 꼽아야 할 이 전환점 이후로 인류는 우주의 결, 자신의 기원과 목적을 거스르며 살게 되엇다.

행복해지려면 일이 필요하다. 피조물의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데 이바지하게 하려고 일을 주셨으므로 인간은 스스로 성취할 수 있는 세계를 잠깐이나마 내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곧 괴에 빠지면서 일 또한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열매를 간절히 바라지만 성에 차도록 얻을 수 없으며 처절한 실패를 겪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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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 내 방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법
김상권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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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 자에겐 축복을 주시고 어려움이 없게 해 주셔야 한다는 우리의 방식을 뛰어넘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믿는 자녀들에게 아픔도 주고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상황도 주시고 질병과 각종 어려움도 주시면서 널 사랑한다고 하신다

내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독특한 사랑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이 책에는 아픔을 이기는 방법도 아픔을 겪지 않고 지나가는 방법도 없다

그냥 우리의 삶에서 아픔을 살아가라고 말한다

아픔속에서 살아 버티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증거이며

그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아픔이 만났때 비로소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이, 아픔들이 해결되고 사라지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도 얻고자 왔던 군중들이 결국은 예수님께 돌을 던졌고 침을 뱉었으며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을 향해서 구세주면 내려와보라라고 삿대질 까지 했다
지금의 많은 크리스챤들도 다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다고 해도 골고다의 그 군중들들의 틈바구니 속에 서게 될 것이다. 예수님 주위에 있지만 정작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장애물이 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된고 더는 주일 예배 한 번 드리는 것으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나를 통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라고 강조한다

그 아이 속에 있던 귀신을 쫓아내는 문제는 너희의 기도가 아니라 그 아이를 주님께 데려오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주님은 그 아이(문제)를 주님께 데리고 오는 것이 바로 기도라고 설명하신다. 감히 잡히는가? 기도란 마치 주문처럼 세게 하고 많이 하면 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문제와 아픔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을 살아 있게 하는 방법이다.

주님의 치유는 예배의 자리가 아니라 더 정확하게 말하면 교제의 자리라고 해야 적절하다. 여기서 식탁 교제는 성찬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솔한 살의 나눔을 의미한다. 갖은 슬픔, 고통으로 인한 아픔, 심지어 자신이 죄까지 나누는 자리를 상징하는 것이 식탁 교제다.

내 속에 자기 높음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는가? 쉽다. 어떤 형제가(자매가) 술을 마신다, 담배를 핀다는 말을 듣을 때 나의 맘속에 정죄하는 마음이 들면 자기 높음이 있는 것이다. 내가 쌓은 경건으로 형제를 긍휼이 여기지 못하고 판단하는 것이 자기 높음의 증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주님은 높은 자리가 아니라 끝자리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대의 삶은 어떤가? 틀림없이 그대 속에 빛이신 예수님이 계신데 그대 친구들은 그대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가? 그저 가끔 교회 가는 기독교인으로만 알고 있다면 어쩌면 그대도 그대의 삶이라는 그릇으로 예수님을 덮고 사는 인생일지 모른다. 교회 안에서는 열심히 섬기고 저것도 봉사하지만, 직장과 학교에서는 일 년 동안 단 한 명도 그대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대는 이미 변명할 수 없는, 예수님을 덮어버린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도 얻고자 왔던 그들이 결국은 예수님께 돌을 던졌고 침을 뱉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을 향해서 구세주면 내려와보라라고 삿대질했던 자들이다
그대가 만약 지금 무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그대도 언젠가 골고다에서 그들의 틈바구니 속에 서게 될 것이다. 예수님 주위에 있지만 정작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장애물이 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제발, 더는 주일 예배 한 번 드리는 것으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그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 안에 들어온 가장 무서운 총체적 이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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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놀라는 때는 하나님이 문을 두드리실 때가 아니라 두드리던 노크 소리가 멈출 때이다. 사랑하는 주님이 더 이상 노크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충격과 함께 제정신이 든다. 주님의 노크 소리가 멈추는 즉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편안하고 게으른 삶의 방식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다.

다윗은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당신은 찬송을 부르고 삶의 열매로 예배할 때마다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또한 `땀`을 하나님의 나라에 드리는 또 다른 방법은 헌금이다. 이 땅에 `땀" 흘리고 수고하여 번 돈을 하나님의 나라에 자워낳여 드릴때, 당신은 자신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가치를 올려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예배는 뭔가를 얻어내기 위한 이기적인 섬김이 아니라 그분께 우리의 전부를 드리는 섬김이 될 것이다. 나를 축복해 달라는 간구는 주님을 송축하리라`는 고백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얻기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열망하기 때문에 다 내어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단 한번의 만남은 사람고의 만남에 대한 식욕을 감퇴시킨다. 기름 부음 받은 예배인도자들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지 잘 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예배인도자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인도하려는 단 한 가지 목적으로 예배를 인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사람들을 모아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거룩한 기름 부음을 값싸게 전락시키는 실수를 저지르지 마라. 이렇게 기도하라. 나는 당신의 선물보다 당신의 임재를 더욱 원합니다. 나는 성장보다 영광을 갈망합니다. 이것은 이단이 아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하나님께서 교회의 규모에 대해 걱정해서 뭔가를 하셨다는 기록은 한 구절도 없다.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면 교회가 성장하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직 진실하게 그분을 사모하라, 기름 부음으로 당신 자신을 향기롭게 하고 주님을 향한 열정적인 예배 가운데로 들어가라. 누가 왔는지 안 왔는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그런 예배 가운데로 들어가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장벽이 없어지면, 당신은 하나님이 속삭이실 때 그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된다. 당신을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폭풍우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가슴에서 나오는 가장 고요한 바람, 가장 작은 미풍, 가장 부드러운 속삭임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회개와 깨어짐의 예배를 통해 그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오실 것이다. 다윗의 장막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이 된 것은 휘장이 없는 친밀함의 예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거주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을 세우는 것은 바로 이 친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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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 내 방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법
김상권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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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것이다. 그대가 낙망하고 낙심하는 이유는 문제가 너무 커서가 아니다. 그대 힘이 너무 나약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대가 낙심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내 아빠로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관계를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기도했는데 응답이 안 될 때, 믿음으로 살려는데 가슴 아픈 일이 생길 때, 그대가 낙심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내 아빠로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무 멀리 느껴지는 것이다.

신약에서 말하는 `눈에는 눈으로의 삶`은 형제가 나에게 행한 대로 나도 행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행하신 대로 나도 행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의 결론이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운심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내가 형제를 용서하는 것이 바로 `눈에는 눈으로의 삶`인 것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 눈의 들보를 빼는 것이다. 하나님의 용서를 보지 못하는 나의 눈에 들어간 들보를 빼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분의 용서를 헤아리는 순간순간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고, 어떻게 사랑하셨으며, 나를 용서하시기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하셨는지를 다시 헤아리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바로 그 헤아림으로 나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적어도 외식하는 인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주님은 당신을 원하시고, 그래서 늘 함께 하실 것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대가 어떤 짓을 하던 주님의 사랑을 덜하게 할 수 없다. 그대가 어떤 헌신을 하던 주님의 사랑을 더하게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대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지금 그대로 완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덜하거나 더할 재산이 없다. 기억하자, 그것밖에 안 되는 나를 주님은 그래도 원하셨다는 사실을.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무리 그대가 俗되어도 聖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아무리 아픔이 많고 상함이 많아도 그분의 유하시는 은혜로 인해 신기하게도 회복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는 세상을 더러운 곳이나 상종하지 못할 곳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세상과 함께하고 세상을 위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주님은 바로 이와 같은 목적으로 그대를 만나주시려는 것이다

백부장은 어떤 말씀이라도 괜찮다는 믿음이다. 내가 듣기 불편한 말씀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그런 믿음이 아니다. 나의 상황에 꼭 맞는 말씀을 듣고 전율하는 ㄱ런 믿음이 아니다. 예수께서 칭찬하신 `이만한 믿음`은 어떤 밀씀이든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나는 살 것이라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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