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왕바리새인입니다 - 가식으로 뒤덮인 자아의 폭로
허운석 지음 / 두란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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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브라질 아마존으로 파송되어 인디오 부족들에게 독이 든 음식을 받아먹기도 하고 독충에 물려 사경을 헤맬때에도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픈 마음 하나만으로 평생을 살아온 허운석선교사님이 2010년 페암 진단을 받고 2013년 9월 주님 품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설교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난 이렇게 율법을 잘 지키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하지 못하냐며 정죄하는 것은

내 자아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것이다

평생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는 자에게 고난이 오는것은

겉으로 들어나지 않는 속에 꽁꽁 감추어있는 날 깨뜨리기 위한 주님의 은혜이다

힘든상황이 오면 고난이 오면 감추어진 나를 볼수있도록 하신

주님께 현 상태를 인정하며 감사하는 것이다

 

한평생 자녀들까지 아마존 오지에서 오직 주님을 위해 살았는데

폐암을 주셨다면 난 과연 감사할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책은 헌금하고 예배 참석하고 교회에서 봉사했으니 나에게 복만 달라고

투정만 부리는 현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날 부끄럽게 한다

 

아들이 사춘기를 지나며 때마다 일마다 나를 괴롭게 했을 때 나는 내 죄가 깨달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들과 환경을 탓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 아들 때문에 미치겠어요. 왜 그대로 두시는 거예요하지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아들보다 더해
아들이 원수같이 미웠지만 사실 원수는 나 자신이었습니다. 어떻게 해도 깨지지 않는 나의 옛 자아였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니까 아들이 달라졌습니다. 이후로 누구를 만나든지 그 사람의 단점이나 부족한 점이 보이면 나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저는 더한 사람입니다.

나의 연약함을 발견했을 때, 혹은 어떤 시험을 만났을 때,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그 시험을 이겼으면 그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고, 반대로 내가 그 시험에 졌으며, 그로 인해 겸손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시험에 들었을 때 사탄이 자꾸 정죄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만일 사탄이 계속해서 너 그랬지?하면 그래, 그랬다. 어쩔래?하고 반응하십시오. 그러면 사탄이 꼬리를 감추고 도망갑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게 인정하고 긍휼을 구하시면 됩니다.
스스로 정죄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몸을 정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졌더라도 정죄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정죄하는 사탄에게 대항하십시오.

문제는 하나님한테 배운 것도 금세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힘든 일이 또 생기면 하나님 해도 해도 너무하시네요. 아버지, 진짜 너무하십니다하고 투정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내가 그들을 네게 보낸 것은 그들한테서 너를 보라고 한 거라는 사실을 또 잊었니?하셨습니다. 계속 반복된 항변과 대답 속에서 우리는 연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 전에 먼저 십자가를 지게 하십니다. 십자가 안에서 나의 탐심과 이기심과 교만을 깨뜨리고 제거해서 그 심령 가운데 성령이 임하신 뒤에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곧 응답이고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했는데 문제가 온다면 나를 변화시키려는 하나님의 사인으로 이해하고 기뻐하십시오.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는 것은, 그 복을 가지고 탕자처럼 나가서 허랑방탕해질까 봐 안 주시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성숙한 사람과 성숙하지 않는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은 바로 타인의 판단이나 비판을 들었을 때 그가 보이는 반응에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숙한 사람, 즉 주님과 연합한 사람은 상처가 되는 일을 당하거나 두려울 만한 일을 만나도 그로 인해 놀라지 않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연단이요, 십자가로 이끌기 위한 은총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건 사람은 나 스스로 죽기 어려운 것을 주님이 대신 죽여 주시니 감사합니다.하고 고백합니다. 타인의 판단과 비판을 받았을 때 허둥대고 상처를 받고 두려워하고 놀라는 것은 그것의정체를 몰라서입이다. 정체를 알면 놀랄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땅히 있는 일이라고 치부합니다. 믿는 자가 당연히 당하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의연하게 넘기게 됩니다.

성경에서 이것을 지키라 하는 말씀들은 율법을 힘써 지키라는 말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과하고 성령 안에 거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면 그렇게 살아진다 그렇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율법대로 지켜라가 아니라 이렇게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살아진다. 변화되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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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의 인생엔 어떤 예수가 계십니까? - 첫 번째 이야기, 시몬과 예수의 만남
김건주 지음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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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의 인생은 어떠한가요?

 

텅 비어 있습니까?

채우려 하는데 무슨 까닭인지 채워지지 않아서 힘들어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무엇을 채우고 싶은가요?

 

가득차 있습니까?

넘치도록 채워져 있어서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무엇으로 가득 채워져 있나요?

 

텅 비어 있다고 절망하지 마세요

예수가 채우실 것입니다.

가득 채워져 있다고 안심하지 마세요

헛된 것으로 채워져 있다면 비워야 합니다.

 

더는 당신을 의지하지 마세요. 경험이든 지식이든.

지금부터는 말씀을 의지하십시오.

 

지금 당신의 인생엔 어떤 예수가 계십니까?

헛된 것을 채우기 위해 당신이 편집했던 예수이십니까?

헛된 것을 비워내고 당신을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이십니까?

 

지금 당신의 인생엔 어떤 예수가 계십니까?

 

굳이 꼭 그렇게 빈 배이어야 했을까요?
빈 배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예수가 그 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빈 배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예수가 그 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시몬처럼 우리는 오늘의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좋은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든 텅 비어 있든 무거운 짐으로 가득하든 우리는 오늘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삶 속으로 들어오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땀 흘리고 고민하고 웃고 울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매일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우리의 그 오늘 속으로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낯설고 특별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매번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우리의 오늘 속으로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시민이 예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 무엇보다 익숙했던 자신의 배에서 먼저 내려야 합니다. 그렇게 익숙했던 배에서 내려야만 예수가 준비한 새로운 배에 오를 수 있지요. 고기를 잡던 배에서 내려야 사람을 취하는 배에 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익숙했던 배에서 내리는 순간 익숙했던 지식과 경험과도 헤어져야 합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요. 그런데 시몬은 머뭇거림 없이 선택합니다. 자신을 이끌 주님인 예수의 요청이었으니까요

주님, 지금 저를 부르신 것 맞죠.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요. 갈릴리 시골 어부 시몬, 무식하고 부족함이 많은 사람 시몬을 지금 부르신 것 맞지요. 주님의 일에 초청하신 거 맞죠. 주님은 제가 얼마나 부족함이 많은지 이미 알고 계시지요. 그럼에도 저를 부르신 거죠. 텅 비었던 배를 넘치도록 채우셨듯이 저의 부족함도 채우실 거죠. 무언가 새로운 걸 배우고 익히기에는 늦은 나이지만 걱정하지 않을게요. 저는 주님만 따라가면 되는 거죠. 주님만 의지하고 따라가면 되죠. 솔직히 주님이 왜 저처럼 부족함이 많은 사람을 부르시는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봐도 제겐 주님의 일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티끌만큼도 없는 데 말입니다. 그래도 주님이 부르시니 말씀을 의지하고 따르겠습니다. 저보다 저에 대해 잘 알고 계실 테니 말입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신의 꿈과 비전이 그렇게 왜곡되어 있음을 느끼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메시지에 심하게 노출이 되어 있는 사람은 자신이 꿈꾸는 꿈에 어울리는 하나님을 만들어 내기까지 합니다. 그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줄 하나님이 필요하니까요. 원래부터 그런 하나님이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하나님이 그런 분이 아니시니 자르고 더하고 그렇게 편집의 과정을 거쳐 자신의 꿈에 어울리는 하나님을 만들어냅니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자신의 꿈을 편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기준으로 하나님을 편집합니다. 이렇게 세상에 갇힌 꿈은 세상에 갇힌 하나님을 만들어내고, 자기 꿈에 갇힌 사람은 자기 꿈보다 작은 하나님을 만들어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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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수제자이자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와 예수님과의 첫 만남의 장면을

그림처럼 생생하게 보여준다

 

30년 어부생활에 밤새 그물질을 했지만 단 한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해서

빈 배로 돌아와야 했던 수치스럽고 절망스러웠던 그 날...

예수님은 그 순간에 그 장소에 어부 시몬을 찾아오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 하신다....

그리고 두 배에 넘치도록 잡힌 물고기...

자기를 사랑했던 사람들, 배와 물고기,  소중한 모든 것을 다 떠나야만 했지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남겨두고

예수님을 따라 떠난다

 

갈리리 바닷가의 빈배와 어부 베드로, 그 베드로를 부르신 예수님....

 

지금 어떤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실까?

내 상상속에 갇힌 예수님,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결해주는 알라딘의 지니와 같은 예수님이 내 속에 계시진 않는지... 

내가 만든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이 만든 내가 되어야 한다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나듯이, 좋은 음식이라 해도 잘못 먹으면 탈이 나듯이 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대로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읽어야 하는지,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읽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모른채 읽기에 매달리다 자칫 `몸의 다이어트`보다 몇 배나 힘든 `마음의 다이어트`를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마음에 깊이 새겨진 잘못된 생각을 덜어내는 것은 몸에서 지방을 덜어내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앎은 삶과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참된 지식 참된 교양이라면 언제나 삶을 향해야 한고 삶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삶과 분리된 앎은 머리를 가득 채울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마음이 성장하고 성숙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앎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위해서 읽어야 합니다. 앎이 삶을 향할 때 참된 의미와 가치를 갖듯이 읽기도 앎을 거쳐 삶을 향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 속 이야기를 읽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현재의 우리와 성경 속 이야기가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면 읽는 우리를 바꾸어야지 성경속 이야기를 우리의 필요에 따라 이런저런 모양으로 편집 해서는 안 됩니다.
읽는 우리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읽는 것이고, 참으로 읽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떠나야 할 때 그 이별을 가벼이 대해서도 가벼이 이야기해서도 안 됩니다. 때로 이러저런 까닭에 이별해야만 할 때가 있지요. 그렇다 해도 이별을 강제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이별이 버겁고 어렵고 무거운 만큼 이별에는 준비가 필요하지요. 인생의 여러 일 중에 사사로운 것도 있고, 무겁고 중요한 일도 있습니다. 무겁고 중요할수록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야 합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결정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사람 속이 어떠한지 명확히 알 방법이 있지요. 그가 무엇을 선택하느냐를 보면 됩니다. 우리는 시몬이 될 수도 있고, 사이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있지요. 선택할 자유가 주어졌으니까요.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지요. 우리 속에 어떤 하나님이 자리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자르고 덧대고 편집한 내가 만든 하나님이 자리하고 있는지 진짜 하나님이 자리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부자도 바지를 벗을 때는 한 다리씩 빼는 법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참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우리는 모두 한 번에 한 입을 베어먹고, 한 번에 한 노래를 듣고, 한 번에 한 신문을 읽고, 한 번에 한 사람하고만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시대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사람들이 시간을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는 놀라우리만큼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점에서 비슷하지만, 엄연히 명백한 차이점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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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뒤 산과 하늘
가을하늘처럼 깨끗하고 예쁘다
모내기를 한 논에서는 개구리가 노래하고
하늘의 도움과 농부의 정성으로 풍성한 수확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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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4세기 후반 중국 송나라서 태어나 하급 관리로 살아가면서 가난하게 살았지만 중국사람들이 가장 매력 있는 인물로 뽑은 장자에 대한 이야기....

이 책은 중국 서진시대의 곽사이란 사람이 장자에 대해 정리한 책중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쓴 이야기

장자이야기는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중 현재 33편만 남아 있다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장자의 호방하고 자유로운 성품, 한계가 없는 생각의 크기....

사람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가난이나 질병, 죽음과 같은 고통이 아니라 자기를 좁은 틀 안에가두는 자기 자신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슬슬 거닐며 노닌다는 건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산다는 뜻이죠
누가 우릴 구속할까요?
가장 벗어나기 힘든 구속은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옭아매는 구속이에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세상을 민들어 내요. 상상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자유`에서 오는 거예요. 가장 큰 자유는 자기로부터의 자유예요. `나`에게서 벗어나는 거예요. `저 물건은 너무 크구나.` 혹은 `너무 작구나` 하는 나의 기준,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혹은 `나쁜 사람이다`하는 나의 생각, 그것을 과감히 지우고 그 물건, 그 사람과 하나가 되어 보는 거예요

도를 얻는다는 것은 100퍼센트 자유롭게 된다는 뜻이에요. 슬픔을 느끼지만 슬픔에 사로잡히지는 않아요. 고통을 느끼지만 고통 때문에 못 견뎌 하지 않아요. 슬픔과 고통이 오고 가는 것을 담담하게 바로볼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은 그믈에 가둘 수 없는 바람과 같지요. 아무것도 그를 결박하지 못해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런 질문이 마음속에 생기면 자신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좋겠어요. 내가 그 일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는지 말이에요. 우린 곧 깨닫게 될 거예요. 화를 내거나 절망하는 것이 전혀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일은 일어나 그 순간 이미 과거의 일이라는 것을 말이에요. 지나간 일은 어떻게 해도 돌이킬 수 없어요. 과거에 묶여 괴로워할 것인가?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일이 내게 가르쳐 주려 하는것을 배울 것인가, 여러분은 어떤 쪽을 선택하고 싶으세요.

나무는 나무로, 병아리는 병아리로, 사람은 사람으로 그냥 태어났어요. 그러므로 좋은 목재로 쓰일 만하지 않아도, 맛있는 백숙이 되지 않아도, 훌륭한 일을 따로 하지 않아도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서 귀한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쓸모없다는 말을 모욕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쓸모 있기를 요구하고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를 쓸모 있느냐, 없느냐로 나누어요

억울한 일, 슬픈 일, 분한 일은 누구에게나 닥쳐올 수 있어요. 울고 불고 좌절하는 대신 그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을 찾는 것이 덕 있는 사람이 하는 공부예요. 막상 눈앞에 닥쳐오면 잘 안 되죠. 신도가도 자신을 업신여기는 이들을 대할 때 불끈 화가 났다고 하잖아요? 그러나 선생님을 만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고요한 마음으로 돌아오곤 했다고 말했어요. 공부란 그런 훈련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거예요.

돈도 권력도 말주변도 없는 추남 `애태타`가 가진 것이라곤 남의 이야기에 동조하고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 마음뿐이었어요. 물이 네모난 그릇을 만나면 네모 모양으로 담기고 둥근 모양의 그릇을 만나면 둥근 모양으로 담기듯이 `애태타`는 `애태타`가 아니라 그가 만나는 사람들과 하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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