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삶 2016.8 (개역개정판.새찬송가)
생명의삶 편집부 엮음 / 두란노(잡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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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으로서 가장 많이 듣는말이 사랑하라는 말과 삶으로 본을 보여라는 말일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것이 어쩌면 주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말로는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면서 내 말과 행동이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한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전할수 있겠는가?

내 삶으로 번역한 성경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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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 도쿄대학원생인 시마자키와 전쟁에 아내와 자식을 잃고 소매치기로 살아가는 무라타가 1964년 도쿄에서 열린 올림픽을 인질로 국가를 상대로 돈을 요구하며 훔친 다이너마이트로 테러를 일으키는 이야기이다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경시청 사람과들과 공안부, 경찰과의 얽키고 설킨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공안부와 경찰과의 서로 성과를 독차지 하기 위한 싸움이 조용하면서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처음엔 남들이 부러워하는 도쿄대학원생이 왜 이런일을 할까?에 고생하는 엄마와 형수님과 조카들을 생각하면 그러면 안되는데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 꼭 테러만 있는것은 아닌데 오히려 세상 조직에서 성공하는 것이 더 사회를 바꾸기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앞서지만
마지막 올림픽 경기장에서의 사건에서는 그들의 테러가 성공하기를 바라게 된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과 필로폰을 상습적으로 투약한것. 너무 허무한 결말에 실망도 많이 하지만
그래도 올림픽을 인질로 삼아 국가를 상대로 한 사건이였다는 것, 공안부와 경찰과의 미묘한 갈등이 흥미롭다

아무튼 단번에 끝나는 일은 하나도 없다.
땀을 흘린 자만이 수확을 얻는다는 격언이 잘 어울리는 형사 일은 농사꾼의 고된 작업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전쟁은 사람을 마귀 짐슴으로 바꿔버려
사람 목숨을 무슨 벌레처럼 갖고 놀았던 거라고
그게 전쟁이야

정말 인간은 어떤 과거를 뒤에 끌고 다니는지 알 수 없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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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장막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 10주년 기념판
토미 테니 지음, 이상준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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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다시 지어 일으키리니(사도행전 15장 16절)

 

왜 하나님은 본인이 최초로 지으라고 하신 모세의 장막이 아닌

다윗이 짓고자 갈망하며 모든 것을 준비한 웅장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솔로몬의 성전도 아닌 초라한 장막밖에 없는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그리워하며 다시 오신날 그 장막을 재건하시고 싶다고 하셨을까?

 

이 책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커다랗고 화려한 웅장한 건물과 그 속에서 예배하는 수천 수만의 성도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한다

 

하나님은 온전히 하나님과 자녀들이 맞대고 대화하기를 원하시며 오직 하나님만을 찾고 원하며,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때 그곳에 같이 계셔주신다

 

하나님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예배를 드려야 그게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다윗의 마음이다. 우리가 해야할것은 교회의 부흥이 아니라 내 삶의 세상적인 성공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얼굴과 임재를 구할때에 우리에게 모든것을 더 해 주신다

하나님은 왜 그집을 재건하고 싶으신 것일까? 왜 모세의 장막을 원형대로 복원하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을까? 사실 모세의 장막이야말로 지상에 세워진 천상의 처소 중 최초의 작품이 아닌가. 아니, 그보다 더 웅장한 것으로 치자면, 하나님은 왜 솔로몬 성전을 그 웅장함 대로 복원하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을까? 하나님은 왜 다윗의 장막을 재건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을까?
그 순간 나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가장 기뻐하는 집이기 때문이란다.

당신 머리 위의 하늘을 여는 길은 하나님이 지금 어디 계신지에 대한 새로운 계시를 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최고의 은혜 가운데 머무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과거에 계셨던 곳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계시를 구하라! 하나님은 식욕 없는 사람까지 먹이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주린 자들을 먹이신다.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당신이나 내게 계시하실 때, 그 계시는 과거의 진리들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더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를 떠나 찬송과 예배로 이뤄진 은혜의 보좌에 좌정하사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세상이 하나님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그분을 위한 자리를 한 번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주님이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으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예배 가운데 거하신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곧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 영광의 빛을 켜기만 하면, 순식간에 보는 사람이 진리와 오류의 차이점을 눈으로 보고 알게 될 것이다. 대부분이 사람들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만 진리를 선택하려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일한 길을 발견할 만큼 충분한 빛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태양보다 달보다 먼저 존재했다. 그리고 태양빛과 달빛이 스러져도 존재할 것이다. 어쨌거나 그 빛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이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소름 끼칠 정도의 `좋은 집회`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이젠 우리를 `절음발이`로 만드는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현현을 부여잡고 자신의 운명이 바뀌기까지 씨름하고자 하는 이 시대의 야곱들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을 붙잡고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시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은 우리 영혼의 주림만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기름 부음과 기름 부음을 통해 강해진 은사들은 단지 우리를 돕고 힘주고 격려해서 기름 부음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하나니므이 손은 우리의 필요을 공급하시지만 하나님의 얼굴은 우리의 깊은 갈망을 만족시키신다. 그분의 얼굴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되고, 그분의 사랑스런 눈빛에서 나오는 은혜를 누리며 그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비교할 수 없는 입맞춤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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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민정 2016-08-31 2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년 전에 읽은 책인데 여기서 후기를 보니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팀 켈러의 일과 영성 - 인간의 일과 하나님의 역사 사이의 줄 잇기
팀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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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로새서 3:23)

 

크리스천으로서의 가져야할 일에 대한 관점은 주님처럼 일하고 주님처럼 쉬라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노동은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으로 인해  우리가 받은 벌로 주어지는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일은 벌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일하셨듯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고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고 그것들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신 것처럼 아무것도 필요없을것 같은 낙원에서 경작이라는 노동을 사람들에게만 임무를 주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일만을 하도록 하신것이 아니라 쉼이 필요없는 전능자도 일곱째날에는 쉼을 가지심으로 인해 우리에게 쉼도 반드시 필요함을  몸소 보여주신다

 

우리 크리스찬들이 현 시대에서 노동을 육체적인 일로 간주하며 무시하는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며 일은 손으로 하는것이든 머리로 하는 것이든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크리스천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든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든 다 고귀하고 소중한것이다

 

다만 그일을 하면서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바른 마음으로 바른 선택을 했는지 그 일을 주께 하듯하지 않고 보이는 사람에게 하듯이 했는지는 늘 끊임없이 물으며 기도해야 한다.

 

교만은 본래 경쟁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두고 싶다. 본질적으로 경쟁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교만은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만 가지고는 기뻐하지 않으며, 옆 사람보다 더 많이 가져야 비로소 행복해한다. 흔히 부유하고 똑똑하고 잘 생기면 콧대가 높아진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남보다 더 풍요롭고 더 명석하며 더 훤칠해 보이는 데서 뿌듯함을 느낄 따름이다

자신의 경우는 어떠한지 묵상해 본 적이 있는가? 현재 직장에서 차지하는 지위나 위치가 은혜의 소산이라는 애길 들으면 펄쩍 뛰면서 아무개 학교에 들어가려고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고, 학생 때는 물론이고 신입사원 시절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으며, 동기들보다 얼마나 뛰어난 성과를 올렸는지 따위를 침이 마르도록 나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값을 치르지 않고 얻은 달란트를 가지고 공부했다. 제힘으로 열지 않은 기회의 문들을 통과했다. 열쇠를 쓴 게 아니라 그저 활짝 열린 틈으로 지나간 게 전부였다. 그러므로 지금 가진 건 하나같이 은혜의소산이며, 우리 각자에게는 그렇게 수중에 들어온 힘을 마치 제 능력을 사용하듯 활용하여 세상을 섬길 자유가 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과 세상을 섬기는 일에 힘을 모을 수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발판이 될 것이다. 남들과 함께 어울려 일하는 크리스천들에게서는 겸손한 협력과 진중한 도전이 두루 나타나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할 뿌난 아니라 일반 은총이 개념을 온전히 깨닫고 받아들인다면 신앙은 다르지만 주님이 크게 쓰시는 이들과 손을 맞잡고 한없이 유이한 일들을 이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적인 세계관을 바로 세워서 남다른 길을 추구하거나 기독교 신앙이 일을 썩 훌륭하게 해낼 힘과 지침을 준다는 사실을 이웃과 동료들에게 드러내고 알려야 한다.

크리스천이라 할지라도 올바른 신앙이 이끌어갈 정점에 섰다고 볼만큼 선하지 않으며, 예수님을 모르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그릇된 신념이 끌어갈 가장 낮은 바닥에 이르렀을 만큼 악한 게 아니다. 따라서 어느 분야의 일을 하든지 양쪽 모두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서 그 문화와 표현들을 비판적으로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반쪽짜리 진리를 알아보고 우상을 배격하는 법을 배우는 한편, 삶의 모든 국면에서 정의와 지혜, 진리와 아름다움의 흔적들을 분별하고 만끽하는 비결을 익힐힘이 생긴다. 문화에 참여하는 길과 관련된 복음과 성경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받아들인 크리스천이라면, 동료와 이웃들이 하는 일의 이면에서 움직이는 하나님의 손길을 누구보다 잘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천은 오직 한분, 사랑이 많으신 하늘 아버지만을 바라보며 일해야 하며 그런 마음가짐은 책임과 기쁨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자마자 그물을 버려 두고 따라나섰던 제자들은 훗날 다시 생선 만지는 일을 계속했다. 바울 역시, 복음 전도자로 일하면서도 장막 진ㅅ는 일을 놓지 않았다. 누구도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세속적인 일을 그만두거나 열심과 열의를 낮추지 않았다. 영구적으로 바뀐 게 있다면 일과 제자들 사이의 관계뿐이었다

사실 크리스천이라는 말의 참뜻은 예수님을 찬양하며, 따라가고, 순종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안에서 쉼을 누리는 이들을 가리킨다. 저마다 제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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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일과 영성 - 인간의 일과 하나님의 역사 사이의 줄 잇기
팀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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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께서 낙원에 일을 두셨다는 사실은 노동을 필요악이나 심지어 징계쯤으로 여기는 이들에게는 기겁할 만큼 놀라운 진리다. 일을 아담의 타락 이후에 인류역사에 끼어든 상함과 저주의 결과물로 보아선 안된다. 노동은 하나님의 정원에 존재했던 축복의 일부다

하나님이 스스로 일하신 뒤에 쉬셨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은 저주이며 여가, 가족, 또는 영적인 추구 같은 그밖의 요소들이 삶의 의미를 찾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성경은 오직 노동만이 인간의 중요한 활동이며 쉼은 필요악으로여기는 반대쪽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준다..... 주님은 굳이 쉬지 않아도 기력이 떨어지지 않는 분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하루를 비우셨다. 인간은 그분의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므로, 쉼, 그리고 쉬면서 하는 일들 자체가 생기를 불어넣는 선한 요소로 볼 수 있다. 삶에는 일만 필요한 게 아니다.

도리어 일을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도구로 보아야 하며 그 목적에 따라 직장을 선택하고 업무에 임할 필요가 있다. 직업을 선택하기에앞서 던져야 할 질문은 무얼 해야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지금 가진 능력과 기회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과 이웃의 요구를 늘 의식하면서 최대한 다른 이들을 섬길 수 있을까?이어야 한다

평신도들이 스스로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주일 아침에 하는 일과 주주엥 하는 일을 연결시키지 못한 채 일종의 이중생활을 이어 가는 비극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런 이들이 알아야 할 점이 잇다. 일상생활 중에 하는 바로 그 활동들이 곧 영적인 일이며 멀리 떨어져 계시는 게 아니라 이 땅에 살아 움직이시는 하나님과 이어 준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영성은 일이 곧 기도라고 속삭일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섬기며 사랑하는 걸 으뜸으로 삼고 살도록 지음받았으며 거기에 충실해야만 비로소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 사는 쪽을 택하면 모든 게 뒷걸음질 치게 된다. 역사상 최고의 사건으로 꼽아야 할 이 전환점 이후로 인류는 우주의 결, 자신의 기원과 목적을 거스르며 살게 되엇다.

행복해지려면 일이 필요하다. 피조물의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데 이바지하게 하려고 일을 주셨으므로 인간은 스스로 성취할 수 있는 세계를 잠깐이나마 내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곧 괴에 빠지면서 일 또한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열매를 간절히 바라지만 성에 차도록 얻을 수 없으며 처절한 실패를 겪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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