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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평소 영화나 드라마, 만화 같은걸 볼때는 해피엔딩인지 여부가 내게는 매우 중요한데...
왜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걸까?
추리소설, 범죄소설은 100% 비극인데 말이다. ;;
추리소설이나 CSI 같은 걸 볼때면 늘 불편한 사실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 불편한 사실의 절반은 인간의 악함과 잔인하도록 무서운 무지함이고
나머지 절반은 '법'이라는 건데
그 법이라는 것 역시 인간들이 만들어 낸다는걸 감안한다면
절망적 불편함을 느낀다.
딸의 복수를 위해 범인을 죽이려는 아버지. 살인을 막으려는 경찰은 범인에게 총을 겨눈 아버지를 쏜다. 이건 한마디로, 이 뭐밍? ㅡ.ㅡ;;
결과적으로 범인을 보호해주게 된 꼴이다. 젠장...;
누군가 경찰은 시민을 지키는게 아니라 법을 지키는 거라고 중얼댔다.
법은 누구를 지키고 있는가 말이다.
법은 정의를 지키는 것도 아니란 말이다....
10대 후반 무렵, 제법 심각하게 경찰이나 형사가 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몸도 부실했고 관찰력이나 머리도 딸렸지만 무엇보다 시력이 나빴다.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지.
만약 그랬다면 범인과 싸우는게 아니라
나 자신과 싸웠을 일이 더 많았을테니까;;
- 죄인을 격리한다는 것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들을 보호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일정 기간 보호받은 죄인들은 세간의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다시 죄를 저지른다.
그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 죄를 저질러도 누구에게도 보복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국가가 자신들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우리가 정의의 칼날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정말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을까?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연 그 칼을은 진짜일까? 정말로 '악'을 차단하는 힘을 가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