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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친구들 1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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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소설은 나에게는 친숙하다. 이 책의 작가 줄리언 반스는 탐정소설의 진미를 보여주었다. 이 책은 영국사회의 가치를 성실히 따르며 가장 영국인답게 살아온 인도계 혼혈인 조지와 그가 겪는 사회적 편견과 부조리에 맞서 자신의 불익과 희생을 감내하고 나섰던 시대의 지식인 아서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실존인물에다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누구도 탐낼 수 없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탐정소설은 어릴 때 서부영화를 보는 듯하다. 아무도 없는,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사막에서 총 한 자루에 그들의 목숨과 바꾸어야 하는, 그야말로 멋있는 남자들이 세계. 먹고 먹히는 적자생존의 세계를 이 책에서도 발견했다. 땀과 가죽으로 버무려진 남자들의 세계. 그들의 진정한 우정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인가.

 

19세기 후반의 영국, 아서와 조지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성장한다. 아서는 에든버러의 남루하지만 고상한 가정에서, 조지는 스태퍼드셔 촌구석의 목사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늘 ‘무언가’를 보고 싶어 하고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진리’와는 다른 ‘무언가’를 상상하기를 좋아했던 아서는 당대 가장 유명한 소설가가 된다. 반면에 목사인 아버지의 말씀만을 진리로 믿고 산 “수줍고 성실한 소년이며, 타인의 기대를 예민하게 감지”하지만 “상상력이 부족”했던 조지는 이름 없는 사무변호사로 살아간다.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은 당시 신문들마다 ‘그레이트 웨얼리 잔학행위’라는 선정적인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된 일련의 사건이었다. 마치 코난 도일이 창조한 셜록 홈스 시리즈의 한 장면을 보는 듯 긴장감 넘치는 수사과정과 사건의 이면을 찾아들어가는 심리묘사는 탐정소설을 읽는 듯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또한 수사과정에서 갈등하고 주저하는 조지와 결단하고 행동하는 아서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갈등은 두 남자가 그간 얼마나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는지를 상상하게 한다.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은 치열한 삶의 현장을 묘사하고 있다. 즉 사건을 추리하고 추적하는 임무를 맡은 것이다. 살아왔던 환경은 다르지만 그들에게 목표가 주어졌고, 그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 판 멋들어지게 사건 속으로 들어간다. 과연 그들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탐정소설은 흥미진진하다. 서부의 개척자들이 그들의 모험을 위해 황량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서부의 사나이가 그들의 땅을 개척하듯 두 주인공들은 그들의 목표로 달려 들어간다.

 

그렇게 전혀 다른 두 남자가 만나 9개월 동안 매달렸던 사건은 불완전하게나마 일단락이 되고, 아서와 조지는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23년 후, 아서는 조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 여전히 미혼인 사무변호사로 생활하던 조지는 신문에서 아서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를 보고 장례식에 참석한다. 장례식을 지켜보면서 조지는 크게 흔들린다.

 

이처럼 심리적인 묘사를 소설속의 갈등으로 그려내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탐정소설의 알 수 없는 부분을 연상케 한다. 어떤 사건을 맡아서, 끝내는 그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형사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경험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두 사람의 심리적인 갈등에서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고 함께 그 순간을 맞이한다면 이미 두 사람의 관계는 운명적이라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드라마 같은 소설을 여기서 보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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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2015 제39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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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가족여행을 해외로 갔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증세가 점점 심해짐을 느낀다. 이런 불안 증세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탓이 크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착륙을 할 때 온 몸에 힘이 들어가고 착륙이 안전하게 착지하자 안도감을 느꼈다.

 

뉴스나 신문에서는 온통 사건들로 빽빽하게 지면을 채우고 있다. 오히려 사건이 없는 날은 허무하기까지 하다. 왜 이럴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비이상적인 사건, 사고들을 즐겨하는 것 같다. 정상적인 뉴스거리는 더 이상 존재 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갈등은 심각하다. 그 중에서 아동 학대, 교육 불평등, 계급 격차, 노동 착취, 빈곤 등 많은 사회적인 병폐는 누구 하나 반대를 하지 않는 것처럼,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주위에 방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방임하는 것이 우리의 현 주소이다.

 

이 소설은 구차한 삶을 소중하게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다. 하지만 이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것은 친구의 부고를 듣거나(「여기 말고 저기, 그래 어쩌면 거기」) 지독하게 가난한데 홀로 아이를 키운다거나(「관통」) 아동 학대를 우연히 목격하는(「이창」) 등 현실에서 운 나쁘면 겪을 법한 일이다. 모든 걸 녹이는 산성비가 내린다든지(「식우」), 감정을 착취당하던 ‘을’들이 덩굴식물로 변해버리는 전염병이 마침내 창궐하는(「덩굴손증후군의 내력」) 것처럼 비현실적인 일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의 「이창」에서는 당신은 개인적인 관심사를 자꾸 있어 보이게 포장하려 들어. 행위의 본질은 대동소이한데 거기 자꾸 논리와 이유를 부여함으로써 자신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인간이라 자위하고 싶은 거지, 라며 비아냥거린다. 무슨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처럼 우린 이런 자기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 자기 합리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을 인정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진정한 관계가 성립한다.「어디까지를 묻다」에서는 우리는 인간인데 어째서 오랜 지배와 구속에 길들여진 짐승처럼 어느새 나를 때리는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반응하고 꼬리를 흔들거나 내리게 되었을까. 그러니 너희들은 더더욱 짐승 취급을 당해도 당연하다며 누군가들은 의기양양하게 돌을 던질 텐데, 라며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언제부터 사회적인 틀 속에서 우리는 안정감을 찾는다. 그게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것을 모른 채 말이다. 정말 한심한 얘기이지만 변화를 즐기는 사람은 없다는 것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은 우리의 치부를 살살 건드리고 있다. 언젠가는 그 치부가 곪아 터져 용솟음치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크게 나무라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그늘진 구석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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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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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와 같은 소설을 쓸 예정이다. 저번 주 일요일 글쓰기 모임에서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질문에 우리 아버지는 무능했다, 고 표현했다. 아버지의 이미지는 그렇게 초라하게 남아 있었다. 나도 어느덧 사십대 후반이 되면서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아버지처럼 무능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 치고는 있지만, 아버지처럼 약한 모습이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을 볼 때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나 역시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아버지의 자식이구나, 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아버지를 미워했다기보다는 무능한 아버지를 용납할 수 없었다, 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다. 아버지의 실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초라한 아버지의 실루엣은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그림자를 남겨놓고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아버지, 아버지. 난 분명 아버지를 닮았다. 내성적인 것도 그렇고, 잘 우는 것도 그렇고.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이라는 무게가 그를 일찍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싸늘한 시체로 누워있는 아버지를 볼 때는 아무 감정이 없었다. 그렇게 누워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이 소설은 내가 쓰고 싶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나도 아직 손을 대지 않고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젠가 반드시 써야 한다는 명제를 안고 있다. 준비가 덜 되어 있다기보다는 아직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아버지는 내가 아홉 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전쟁이 끝나기 전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왜 갑자기 죽어버렸을까, 계속 생각해왔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나도 아버지의 정체성에 대해 잘 모른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다. 아버지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육이오 때 피난을 내려와 홀로 삶을 꾸리면서 가정을 이루었다. 공사판에서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술을 자주 드시던 아버지였고 말씀이 없으신 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아버지가 싫었는지도 모른다. 남들 아버지처럼 능력이 없었던 것이 어린 마음에 싫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술은 그런 아버지를 늪으로 끌고 가는 일등공신이었다.

 

나도 술을 좋아하고 많이 마신다. 아버지와 많이 닮은 점이다.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고 한 것이 언제인데, 어느덧 아버지와 같은 짓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참 많이 닳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의 작가처럼 나도 아버지를 알아가기 위해 소설을 쓰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이해하는 그 날이 오길 희망하고, 나 또한 두 딸의 아버지로서 그들에게 좋은 실루엣으로만 남기를 원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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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경비원 월급이 적은 것을 뻔히 알 텐데도 굳이 그 앞에 와서 돈 자랑을 해대는 남자, 있지도 않은 고양이 울음소리를 없애 달라며 밤늦도록 인터폰으로 괴롭히는 할아버지, 주차 시비 끝에, 그러니까 평생 경비원 노릇밖에 못 한다며 쌍욕과 함께 퍼붓는 아주머니까지… 아파트 주민들과의 하루하루는 녹록하지 않다. 어려운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수다와 고스톱으로 시간을 보내는 계모임에서는 잔칫집에 국수 얻어먹는 셈 치라며 늘 자장면 한 그릇을 경비실로 전해 준다. 아파트에 사는 우리 자신도 느끼지 못했던 문화가 이 이야기 속에는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항상 우리곁을 지켜주고 있는 경비아저씨에게 당장 상냥한 인사라도 해야할 것 같다.

 

 20세기 현대 소설에 큰 영향을 준 카프카의 작품은 부조리하고도 광적이며 환상적인 현대인의 무의식 세계를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현대 철학자, 사상가들에게도 열렬한 반향을 이끌어냈다. 카프카의 작품은 '뉴욕타임스 선정 100대 필독 도서'뿐 아니라 '서울대 권장 도서 100선', '연세 필독 도서 200선' 등 청소년 필독 도서 목록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꼭 읽어야 하는 세계문학 리스트 중 하나다.

 

카프카의 책을 아직 접하지 못했다. 그것이 선정한 이유다. 한번 그 향수에 빠져보고 싶다.

 

 

 

 

 

 

 노벨 문학상으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귄터 그라스. <암실 이야기>는 그가 2006년 뼈아픈 자기 고백을 담은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를 발표한 후, 다시 한 번 '성공한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써 내려간 실험적 자전 소설이다.

 

소설은 자기의 얘기가 기본이 된다. 그의 자전 소설이 궁금하다.

 

 

 

 

 

 

 

 

 

박범신의 주름을 추천한다. 내용을 볼 수 없어서 박범신이라는 작가만 보고 추천한다. 다른 작품들은 여러권 읽어봤다. 특히 그중에서 '소금'은 아버지의 삶을 잘 묘사했다. 아직도 소금의 아버지가 생생히 살아 있는 느낌이다. 주름은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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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부터 헬로라이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55세부터 헬로라이프 스토리콜렉터 29
무라카미 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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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40세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 2의 사춘기를 겪는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으레 치르는 홍역처럼 중년들도 이를 다시 한 번 겪는다. 예방주사가 있으면 한 대 맞고 시원하게 툴툴 털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쉽지가 않다. 인생이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겪어야 하는 필수 코스가 있기 때문이다. 이 필수 코스를 훌쩍 뛰어 넘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도 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쓰디쓴 아픈 과정이다. 물론 완벽하게 해소 된 것은 아니지만, 세월이 약인 것처럼 서서히 아물고 있다. 이 책의 작가 무라카미 류는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작가다. 같은 동양인으로써, 같은 시대에, 같은 감성을 가지고 있다. 그의 감성과 위트는 많은 위안과 여유를 내포하고 있다. 그의 선물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크게 5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지만 쭉 이으면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결혼상담소’에서는 나카고메 시즈코라는 주인공이 쉰네 살에 이혼을 한다. 그녀는 “헤어지고 싶다.”고 하자 남편은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미건조하게 “맘대로 해.”라고 말하고 태연하게 있다. 이혼한 그녀는 남편과 다른 남자를 만나 제 2의 인생을 꿈꾸고 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게 황혼 이혼을 하게 된 그녀는 결혼상담소를 통해 재혼남을 만나게 된다.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에서는 작은 출판사에서 정리해고당한 인도 시게오는 다른 일거리를 찾아보려 애쓰지만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그는 자신의 생활 기반이 이토록 취약했다는 사실을 정리 해고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느 날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그 앞에 중학교 시절 친구 후쿠다가 나타난다. 노숙자 행색의 후쿠다는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시게오 역시 누군가를 도울 처지가 아니다. ‘캠핑카’에서는 정년퇴임을 앞둔 토미히로 타로는 캠핑카를 사서 부인과 함께 전국일주를 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 바쁜 부인의 냉담한 반응과 이유 없는 불안 때문에 캠핑카를 취소한다. 재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일자리를 알아보는데 나이 때문에 그게 쉽지가 않다. 오히려 그 소식을 들은 업체 담당자들은 그를 피하게 되는데.‘펫로스’에서는 평범한 가정주부 다카마키 요시코에게 시바견 보비가 전부다. 남편보다 보비에게 더 애정을 쏟는 그녀는 애견모임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즐거움이다. 하지만 애완견 보비의 병세가 악화되어 먹지도 못하고 앉아 있지도 못한 채,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다. ‘여행 도우미’에서는 햇차를 좋아하는 시모후사 겐이치는 운송회사를 다니다 그만두면서 아내와 헤어진다. 일본은 30년 전이나 40년 전에 비하면 월등히 풍요로워졌는데도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돈이 돌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구조조정 칼바람의 희생양이 된다. 그는 다른 인연을 만나지만 그녀하고의 사랑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 책의 짧은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경제적인 문제는 가장 큰 고민거리다. 중년 이후의 삶도 마찬가지다. 물론 청년들도 어깨의 많은 경제적인 고민을 얹고 살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모습을 보기 힘들 정도다. 희망이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불혹이라면, 어느 것에도 미혹되지 말아야 하는데, 오히려 훅하면 날아가는 가벼운 깃털처럼, 여기저기로 흔들리고 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 짝이 없다.

 

무라카미 류는 “이데올로기의 어원은 ‘사회적인 이상’이라는 뜻이다. 그런 근본적인 의미의 이데올로기는 어느 사회나 필요하다. 되도록 공평한 사회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공산주의적 공평함, 다들 똑같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기회가 균등해야 하고 쓸데없는 차별은 없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근원적인 이상은 필요하다.”라고 했다. 그의 말에 공감이 간다. 공평한 기회와 차별이 없는 사회, 내가 바라는 사회이다. 현재의 우리의 모습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안개에 쌓인 망망대해에서 높은 파도에 흔들리는 작은 돛단배가 떠오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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