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의 하루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304
엘리샤 쿠퍼 지음, 엄혜숙 옮김 / 시공주니어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와 고양이의 하루 


#시공주니어 #개와고양이의하루 #그림책 #엘리샤쿠퍼 #엄혜숙 


가끔 이 책을 추천받거나 선물 받지 못했으면 정말 아쉬웠겠다. 싶은 생각을 한다. 

수많은 책들이 출판되어 서점에 있어도 바쁘다는 핑계와 그 많은 정보를 다 수집하는데 한계가 있는 이런저런 이유로 개인적으로 꼭 보고 싶어 할 책이 내 눈에 띄지 않고 그저 지나쳐간 책이 꽤 많을 텐데... 


이 책은 참 다행스럽게도 내게 왔다. 


개와 고양이의 하루가 이렇게 다른가? 생각이 든다. 

다르지만 뭔가 접점이 있고 그 안에서 같이 사는 식구라는 따순 정이 느껴졌다. 


처음에 빠르게 읽어 내려갈 때는 눈치채지 못한 부분을 책 뒤편 어린이와 함께 읽을 때 참고하라 적어준 글을 보고 다시 읽으면서 작가가 모든 지점에 담은 전달 하고픈 의미, 함께 상상해 보자고 제안하는 장치 등이 보여 더욱 흥미롭고 읽고 난 뒤 행복감은 정말 이 책에 나오는 한 낮 개와 같은 기분과 크게 다르지 않겠다고 생각해 본다. 


창을 넘어 들어오는 고양이와 담요 위 아직 곤하게 자고 있는 개 

아침이 되자 흥분지수가 급격하게 올라가는 개와 아직 모든 것이 귀찮은 듯 한 고양이 

그런 고양이를 독려하듯 담요를 치워버리는 개는 야외로 나가서 흥분도와 활동량이 최고조가 되고, 아직도 시크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고양이 

이쯤 되면 둘이 너무 다르고 친할 접점을 찾기 힘들겠다고 느껴진다. 

반려인도 그렇게 느낀 것인지! 그만! 서로 잘 돌봐주라는 부탁과 함께 둘은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풀숲을 함께 걷는 듯 따로 걷는 듯 꽃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듯 가는 길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인지 아닌지 모를 대사 없는 그림을 지나 언덕에서 흠뻑 행복감에 취한 모습으로 둘은 앉아 있다. 이 지점에서 난 하나는 상승하다가 떨어지고 누군가는 밑바닥에서 올라가며 이제야 둘이 교차하는 지점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자 좋은 하루가 끝이 난 것에 실망하는 개를 여전히 시크하지만 담요를 가져다주며 다독이는 듯한 느낌의 고양이를 보게 된다. 츤데레?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느낌으로... 

그리고 저무는 하루의 끝에 너희는 내일 그것들을 다시 할 수 있다는 반려인의 위로와 함께 잘 자라는 인사에 역시 고양이 '아니'라고 대답하며 맨 처음 페이지 그림과 달리 이제 창문으로 나가버린다. 그 옆에 담요 위에 개는 똑같이 잠이 들었다. 


천진난만하게 마냥 행복한 개가 너무 예뻐서 그림을 따라 그려보았다. 

그에 비해 고양이는 도도하고 시크한 책 속 모습이 잘 반영된 얼굴 표정도 없는 모습만 있어서 많이 따라 그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그들은 긴장과 갈등을 유발하기는커녕 한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따로 또 같이 사는 식구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아무런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 편한 느낌, 그 느낌이 전해져 나도 따라 행복해지는 기분... 


내게 그랬듯 다른 어른 수많은 어린이들이 이 그림책을 보고 많이 웃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쓱 지나쳐 못 보고 사라지는 책이 아니고, 이 책이 세상 모두에게 개가 고양이에게서 함께 놀자고 뺏은 담요 또는 고양이가 개에게 위로와 함께 전한 담요 같은 같은 책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실은, 우리 모두가 그래 - 2023년 볼로냐 국제아동 도서전 일러스트레이터 수상 도토리숲 그림책 12
디파초 지음, 강이경 옮김 / 도토리숲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은 우리 모두가 그래 

_검은 머리 황새에게 배우는 가족의 여러 모습 


#도토리숲 #디파초 #강이경 #그림책 #사실은우리모두가그래 


조선시대 축조된 저수지가 동네에 있다. 

그 저수지 덕분에 근처 논에 물은 마르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의 근심은 쌓이지 않았겠지. 

물이 풍부하고 농부의 얼굴이 밝으니 남은 것들이 풍족했는지 근처에 작은 철새부터 큰 철새까지 지금까지도 많다. 

검은 머리 황새도 있을 것 같은... 


날개를 펴면 거대한 익룡 같은 그 큰 새들은 요즘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둥지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서로 좋은 자리를 맡고 싶어서인지 동료들에게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가며 말이다. 

곧 튼튼한 둥지가 마련되고 알을 낳고 부화가 되어 새끼를 길러 지금과는 또 다른 가족을 만들겠지. 

그 가족은 조금은 시끄럽고, 내 차 위에 아무 때나 하얀 응아를 해대는 무례한 이웃이 될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 


책은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가운데 

어떤 이들은 가족이 없다. 

어떤 이들은 가족이 있다. 

'없다'와 '있다'는 정말 큰 차이인데... 

그 이후에도 늘 이런 식이다. 

정반대로 말해 놓고서는 푸념처럼 끄트머리에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이들은 가족이.... 뭐랄까 좀 달라' 


이미 한참 다르다고 이야기해 놓고 좀 다르단다.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런가 진짜 진짜 마자믹 문장은 사실은 '우리' 모두 그래! 


'우리'라는 말은 맨 처음 문장에도 나온다. 

'우리'가운데라고 시작하지 않았나? 


우리는 다른데 우리야! 

우리는 좀 다른데 우리는 모두 가족이야. ^^ 


난 이 책의 결론을 그렇게 내렸다. 


우리 사회의 가장 기초를 이루는 '가족'에 편견과 차별은 없음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번은 꼭 읽어야 할 20세기 세계사 - 세계를 바꾼 결정적 장면들
이영숙 지음 / 블랙피쉬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번은 꼭 읽어야 할 20세기 세계사 


#한번은꼭읽어야할20세기세계사 #블랙피쉬 #이영숙 #세계사 #역사 


역사와 지리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꽤 많이 있다. 

인물의 이름을 외워야 하고 지명에 익숙해져야 하는 그 첫 단계가 고비가 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역사는 시간을 다루기에 시간에 따라 사건과 사고에 영향을 준 배경이 중요하기에 순서가 바뀌지 말아야 하는 것도 부담이고, 지리 역시 인접한 국가인가? 단순히 위치뿐 아니라 종교와 인종 등 복잡한 이해관계로 묶이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지정학적인 배경을 또 알아야 하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런 고비를 잘 넘기라는 작가의 배려가 돋보인다. 

굳이 사건 사고를 시계열적으로 배열해서 백과사전식으로 쓰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인물 중심으로 어떤 한 인물의 일대기 중 중요한 순간을 들여다볼 수 있으며, 순환의 역사인 양 비슷한 운명을 맞이하거나 예외적인 결말을 맞이한 다른 인물들을 통해 다시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기억에 스며들게 장치가 되어 있다. 


무엇보다 ~거야, ~됐어, ~같아 등 친근한 서술형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역사는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려주기에 충분하다. 


스탈린의 한 마디가 참 인상 깊다. 

"한 명이 죽는 것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이 죽는 것은 통계이다." 

이렇게 잔인한 생각이 그의 선택을 좌우했구나. 싶다. 무섭다. 

이런 인물은 스탈린 한 명이 아니었다. 프랑코, 무솔리니, 히틀러 그리고 지금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어느 한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 지도자인 경우가 현재 진형이라는 사실에 놀랄 뿐이다. 


베트남 전쟁을 이야기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많이 보아온 사진이지만 책에서 다시 보니 정말 안타까운 사진이 아닐 수 없다. 

네이팜탄으로 옷이 불타 벌거벗은 채로 울며 뛰고 있는 소녀의 모습에서 우리 어른들은 왜 이리 잔혹한 일을 자행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퍼스트레이디 마담 뉴의 무지한 한 마디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심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바비큐 쇼를 하고 있네, 원한다면 석유를 얼마든지 제공하겠다."

책에 언급되었으니 진짜 그런 말을 했을 거라 믿지만, 여전히 설마... 진짜 그랬을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우리 손으로 뽑은 자의 퍼스트레이디 역시 국민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은 언행으로 구설수에 올랐으니 예나 지금이나 그 수위의 차이가 있을 뿐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 있는 그들의 눈에 진정 우리 서민들은 개 돼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인지... 씁쓸할 뿐이다. 


달라이라마 이야기에서는 다짐을 하게 된다. 

반듯하고 선한 사람, 노벨상을 받을 정도의 인물 이기는 하나 세계가 흉포하거나 악할 때는 그런 사람이 피해자가 된다는 언급에 적어도 나 스스로를 지킬 힘을 길러야 한다는 각오와 다짐은... 그런 최소한의 긴장감은 필요하지 않나 싶다. 


'기억하되 용서한다.' 

르완다 사태는 어이없는 이유가 배경에 깔려 있음에 분노하였다. 

그저 딱딱하고 객관적인 사실로 식민 지배에서 온 피해이며 민족(인종) 갈등이다.라는 교과서 표현에서 그쳤다면 몰랐을 테지만 결국 좀 더 상대적으로 밝은 피부색과 큰 키가 똑똑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편견과 차별로 후 투족과 투치족의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를 만들었다는 사실에서 답답한 마음이 생긴다. 

르완다식 재판인 가차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숨통이 조금 트이는 듯 하지만 용서가 될까? 용서는 하되 화해가 될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된다. 


리콴유 이야기에서는 말레이연방에서 독립이 아닌 OUT이었다는 몰랐던 사실과 정보에서 아직도 난 지적인 호시심을 더욱 가져야 하며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가슴 아픈 건 

이렇게 많은 인물들이 연루되어 벌어진 전쟁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다치게 만들었으나 그 누구도 원하는 바를 제대로 얻은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습격을 당하거나 피격을 당하고 권좌에서 물러나고, 전쟁 전후 달라지는 것 없이 옛날로 회귀되는 경우가 많았다. 


속상하게도 한국 전쟁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와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지금 세계 곳곳은 수많은 크고 작은 전쟁터이다. 

당사자들에게 그 이유가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선택한 전쟁이 진정 가치가 있는 것인지, 역사를 공부했는지 당신과 같은 선택을 한 인물의 최후와 세계에 미친 영향을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6.3 - 210호 2026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튀르키예가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을 부인하는 이유 


#르몽드 #르몽드코리아 #르몽드디플로마티크3월호 #르디플로 


아르메니아를 알고 있나? 

고등학교 2015 교육과정 안에서는 딱히 수능이나 모의고사에 등장하는 나라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업 중에는 서아시아의 아르메니아 고원 즉 남캅카스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내륙국으로 수도는 예레반, 종교는 아르메니아 정교회라는 것을 알고 그 주변에 있는 국가들이 모두 이슬람교 신자 비율이 높은 국가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과 튀르키예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다. 그리고 아제르바이잔과 갈등 중에 서로의 영토 안에 영토가 포함되어 있어 늘 갈등의 소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언급한다. 월경지라고 표현하며 나고르노_카라바흐(아르차흐)와 니히체반과 소규모 영토들에 대해서 소개하고는 했다. 물론 바로 직전까지 이 지역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고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복잡한 문제들이 많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기사를 읽어보면... 


튀르키예는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을 왜 부인하는가? 


첫 줄에 이런 말이 나온다. 


'강대국의 권력이 대규모 학살을 자행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행위가 집단학살이었음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동원되는 것이 축소와 은폐 그리고 역사 다시 쓰기다. 즉 1915~1916년에 벌어진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과 이를 대하는 튀르키예의 태도는 강대국이 학살의 책임을 어떤 방식으로 회피하고 부정해 왔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왜 회피할까? 

여기에는 이스라엘이 끼어 있다는 것이 놀랍다. 

튀르키예는 무슬림 다수 국가 가운데 최초로 이스라엘 신생 국가를 승인한 국가이며 이스라엘의 침묵은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란다. 

이스라엘은 단지 그 이유인 건가?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오랫동안 홀로코스트의 '유일성'을 강조했던 이유이다. 

"우리는 홀로코스트와 아르메니아의 주장 사이에 유사성을 설정하려는 시도를 거부한다.~" 


이랬던 두 국가의 관계가 뚜렷한 악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튀르키예 대통령은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을 집단학살 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그때그때 다른 정의는 정말 혼란스럽다. 

언제는 집단학살이고 어느 때는 아니다. 를 계속 주변 정세와 관련국의 이익과 관련지어 그 배경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어찌 되었건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에 대한 분명한 점 하나는 국가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기사는 설명해 준다. 강대국을 상대로 로비를 하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진행했다. 


그럼 튀르키예는 이러한 왜곡될 수 없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왜 부정하는가? 

영토적, 재정적 배상을 수반하는 문제, 즉 현재 공원이 있는 게지 공원은 과거 아르메니아 교회와 공동묘지가 있던 자리에 조성된 것인데 묘비들이 건축자재로 쓰였다고 한다. 이에 대한 배상 요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에 대한 접근 금지, 통제, 집단학살을 부정, 왜곡하는 교육, 연구기관의 설립 등 조직적인 활동으로 국가적 책임을 회피하는 전략을 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인 사망자 수는 과장됐다.' 

'전쟁이었고 모두가 고통을 겪었다.' 

'아르메니아인들 이주는 그들 자신의 안전을 위해 분쟁 지역에서 이동시킬 필요가 있었다.' 

'불운한 전염병과 지역 범죄자들의 소행이었다.' 

'사망자는 있었지만 집단학살 의도는 없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서방의 적들과 공모했다.' 

'아르메니아 민족운동은 제국의 붕괴를 기대하며 독립 영토를 얻고자 했다.' 

'아르메니아 상인과 금융업자들이 튀르키예 민중을 착취했다.' 


위와 같은 조직적인 부정과 정당화를 통해서 말이다. 

그 입장은 어찌 되었건 자신들의 건국의 아버지들을 살인자이자 약탈자로 규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유럽연합 가입 신청과 같은 욕심과 더불어 양가적인 입장인 것이다. 


참 복잡하지 않은 일이 없다. 

독일의 유대인 집단 학살에 대한 기억 작업이 실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겸재 정선 - 진경산수를 개척한 우리나라 화성 새로 쓰는 화인열전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겸재 정선 


#겸재정선 #화인열전 #새로쓰는화인열전 #유홍준 #한국미술 


솔직히 이 책의 서평단이어서 너무 뿌듯하다. 

이 책이 1권이 되어 화인열전의 시작이 되는 겸재 정선을 출판과 함께 읽어 내려갔다는 것이 어깨를 으쓱하게 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 남도 답사 일번지를 읽고 그 뒤로 지금 내 자리에 마주하는 책장 가장 높고 잘 보이는 곳 한 칸에 번호 대로 시리즈가 나열되어 있는 것은 언제 봐도 행복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데 어느 순간 누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듯 잠시 계속 이어진다는 느낌은 멈추었고, 책장 칸 서너 권 자리가 비어 있는 자리 그 칸에 어울리지 않는 다른 책을 꽂아 두었었다. 이젠 그 책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제 새로 쓰는 화인열전 시리즈에 자리를 내줘야 할 듯하다. 


그의 작품을 고급진 재질의 종이로 볼 수 있어 너무 좋다. 

그리고 그의 화풍이 변하는 것을 연속적으로 볼 수 있는 것 역시 좋다. 

책 속에서도 언급된다. 다작을 한 작가라고... 그래서인가 국립중앙박물관, 호암미술관 등 곳곳에 흩어져 전해 내려오는 그 많은 작품이 어느 날 한자리에 모여 전시되었을 때의 감동을 전하며 작가님은 '화성'이란 칭호를 언급했다. 그 전시를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었지만 이 책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정말 많은 작품이 주옥같은 해설과 함께 가득가득하다. 


또한 


겸재 정선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왕이 칭찬한 작가이다. 뭐 그럼 두 말할 필요 없는 위인 아닌가? 

그에 대한 후한 평가는 그저 허언이 아니고 단순히 장수하여 오랫동안 많은 그림을 그렸던 벼슬아치에 대한 단조로운 찬사가 아니다. 

그림뿐 아니라 학문에도 능했고, 효심도 깊었으며 끝까지 붓을 놓지 않고 많이 그렸고 많이 나누었다는 것을 책에서 알 수 있었다. 

겸재 정선이라는 사람에 대한 칭찬은 p307에서 언급된 기록이 가장 인상 깊었다.


'~박대원은 그림을 잘 알지 못하나 이 그림을 아주 사랑하여 보배로 여기며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그 사랑하는 바가 그림에 있지 않고 사람에 있다고 하지 않겠는가.... 겸재는 그 흉중에 있는 바를 붓끝에 정신을 실어 발현한 분으로 그는 늙어서까지 이를 잃지 않았다. 겸재의 그림을 말하는 세상 사람들은 문득 그 빼어나고 기이함을 보면서 절규하듯 말하기를 '핍진하도다', '신운이 감돈다'라고 하니 이는 그림을 아는 소리이다. 그러나 겸재는 모르는 말이다. 박대원은 홀로 필법의 기교를 뛰어넘어 신회가 통하듯 겸재의 마음을 얻고 팔뚝 아래에 두며 마음으로 그것을 사랑하니 박대원은 이른바 그림을 아는 자는 아니지만 그림 보는 법은 아는 자가 아니겠는가' 


"그가 사랑하는 바가 ~사람에 있다고 하지 않겠는가~" 이런 칭찬을 받는 대가인 것이다. 

지금 말하자면 인성에 전공적합성에 모든 역량이 뛰어난 서양의 다빈치이고 후대에 다산에 견줘도. 아니 굳이 누구랑 비교하지 않아도... 


가장 맘에 들었던 그림을 기록에 남겨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부채에 그린 <선면금강내산>에 가장 눈길이 많이 머물렀다. 

관동명승첩에 <시중대>, <해산정> 역시 몇 백번, 몇 천 번이라도 따라 그려보고 싶어지는 그림이다. 

<선면 송지문 시의도>에 물결을 그려내는 기법은 과거로 돌아가 그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질 정도이다. 

<우중기려도>, <강산선유도>, <강진고사도>와 같이 노년에 그린 그림들은 그 여백이 주는 멋과 나무의 가지 하나하나에 획과 먹의 농담이 보여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림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생겼나 싶어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했다. 


작가님이나 편집자님께 질문할 것도 생겼다. 


p273 그림 겸재정선화첩 중 <야수 소서도>를 소개하며 노인이 동자에게 책을 받고 있다.~라고 진술되었는데 다음 페이지 p275에 보면 겸재는 황석공을 신령스럽게, 장량은 무릎을 꿇고 공손히 소서를 받는 모습으로 그리고~라고 되어 있어 책을 주고받는 것이 뒤바뀌어 진술되고 있지 않나 묻고 싶어졌다.


이리 집중해서 읽은 책의 그 다음 인물의 작품과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진다. 구수하고 정겹고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이면서도 우리의 일상과 우리가 보는 경관을 담은 작품이다. 또는 동경하는 이상향이라서 관심이 더 갈수도...


기다려진다.

또 하나의 시리즈가...채워지는 순간순간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