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동이는 오늘 짜증이 지대로다.

 어제 200큐브수조에서 두마리의 자홍달팽이 팽이와 팽군 부부와 아비아누스나나수초와 스킨다비스, 개운죽들 사이에서 너무 비좁은 것 같아 장미공방에서 수작업해온 조금 넓은 수조로 집을 옮겨주고 나니, 왠지 휑하니 심심해보여 다른 방의 수조에 있던 두달남짓 자란 저먼옐로우 치어 몇마리를 넣어주었다. 심심하지 말라고. 그런데 저먼베이비들이 들어오니까 쫓아다니며 해찰을 하려하다 오히려 제가 더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다. Why?  너무나 작은 치어들의 동작들이 잽싸게 움직여 귀동이의 둔한 몸으론 매번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 보는 낭패를 겪으며 더욱 신경질이 나 입맛도 없고 밥맛도 다 떨어져 본의아니게 일시적인 다이어트모드인데..천방지축인 저먼베이비들이 귀동이의 푸드팬서를 접수하며 사료들을 폭풍흡입을 하니 참 미치고 환장하게 심란한 것이다.  베타라는 어종은 원래 혼자 사는 종류이지만 동종끼리만 피하면 다른 어종과의 합사는 괜찮은데 왠지 우리 귀동이는 하프문 특유의 붉은 드레스를 입은 듯한 아름다운 외모와는 달리 무척 까칠하구나. 우리만 보면 강아지처럼 쪼르르 어여쁜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면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저먼베이비들. 평소에도 커다란 두마리의 수중달팽이들이 자기의 식탁을 눈깜박할사이에 접수해버려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았는데..이제 좀 널널하게 살아보려 했는데 이번엔 어디서 눈꼽만한 것들이 나타나 분잡하게 만드니 아참..정말 울적하구나, 울적해. 확연히 침체된 모습으로 진종일 우거진 수초 구석에서 우울모드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우리 어여쁜 영순위 귀동이를 바라보니 나도 쪼금 심란해. 흠흠..과유불급일까, 다정도 병일까. 어쨌든 생각해서 해준 일이 그를 몹시 고요의 물속에서 평상심을 깨게했으니 미안 미안해. 내일 아침에 다시 치어들을 제집으로 보내야겠다. 잘자라. 귀동아 안녕. 내일은 다시 평화로운 날들이 시작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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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은 성탄절.

 어둠속으로 눈이 하염없이 내린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을 지나 새벽으로 가는 길에 책을 읽다가 자판을 두드리다 화장실에 갔다가 문득, 작은 창밖으로 그제도 눈이 내리더라. 일몰 후 불켜진 세상에 내리는 눈들은 눈의 요정들의 군무같이 아득하고 황홀했는데 새벽에 내리는 눈은 알싸하더군. 알싸해. 연식이 오래되어서일까 아니면 작은 창이 보여주는 특별한 정서일지. 마을도서관 화장실에 앉아서 보는 손바닥만한 창밖의 경로당 지붕의 기와와 나무들이 마치 한폭의 작은 액자같은 . 그렇다. 넓은 창은 시원하고 널찍한 건너편의 모습들을 여과없이 다 보여준다. 그러나 작은 창이 보여주는 지극히 사적이고 순간적인 풍경들은 흘러가고 있는 시간을 잠시나마 카메라 렌즈안의 순간처럼 찰나의 시간들을 포착하고 각인시켜 주는 차이같다. 그리고 거의 그 순간의 포착이 나를 나의 현재의 순간들을 아름다운 한 폭의 작은 액자로 만들어 주다. 어젯밤에 '도가니'를 보았다. 그 책이 처음 발간되었을 때 읽었는데 그때의 느낌은 뭐 이런 일이 이런 나쁜 사람들이 다 있어, 하며 무진이란 지명이 주는 그대로 어둡고 뿌옇고 앞을 알 수 없고 뭔가 끈적이고 불쾌한 그런 느낌으로 책장을 덮었던 기억이 든다. 그리고 지난 밤에 다시 보게 된 '도가니'는 보다 선명하고 간결해졌고 눈이 확인해 주는 사실성과 가끔은 갑갑해지기도 했던 그래서 더 나았던 영화였다.  에필로그같은 영화의 마지막 메일의 글이 가슴에 남는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후의 느낌을 피해자였던 아이들에게 서선생이 물었더니 "이제는 우리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어요."라는 말.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는. 모호하면서도  생각해보면 참 중요한 말이다. 그리고 서로 마주잡은 손의 온기처럼 온기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 작은 창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안에서 발아되어 가고 있던 씨앗들이 꽃을 피우고 향기를 전하고 꽃이 지고 꽃진 그 자리에 열매 맺는 삶이라는 실천.

 창밖을 보니 여전히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이렇게 눈 내리는 밤이면 배고픈 고양이들의 발자국이 더 선명하게 눈위에 남으리라.

 나의 보드랍고 따뜻한 극세사 양말을 너희들에게 끼워주고 싶은, 춥고 눈 내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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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이 하하하 - 뒷산은 보물창고다
이일훈 지음 / 하늘아래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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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5분이면 뒷산이 있는 곳에 산다. 앞산을 도봉산으로 뒷산을 수락산으로 삼고 사는 자이기에 더욱 저자의 현장성과 해박함에 감탄하며 때때로 웃으며 공감했다. 뒷산과 약수터. 우리 환경의 극명한 바로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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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20그램의 새에게서 배우는 가볍고도 무거운 삶의 지혜
도연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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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 책을 읽으며 스님과 새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으니 참 쫄깃쫄깃 맛있게 읽었다. 그리고 책속에 담겨 있는 스님의 깊은 말씀안에서 삶의 한자락을 다시금 짚어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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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레레 2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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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동안 행복했다. 정말 오랜만에 지적 즐거움. 약간(?) 비주류인 카스딘과 블로킨 두 형사와 아이들의 목소리라는 소재로 이루어진 인간의 역사와 만행에 대한 새로운 일깨움. 이세욱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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