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성탄절.

 어둠속으로 눈이 하염없이 내린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을 지나 새벽으로 가는 길에 책을 읽다가 자판을 두드리다 화장실에 갔다가 문득, 작은 창밖으로 그제도 눈이 내리더라. 일몰 후 불켜진 세상에 내리는 눈들은 눈의 요정들의 군무같이 아득하고 황홀했는데 새벽에 내리는 눈은 알싸하더군. 알싸해. 연식이 오래되어서일까 아니면 작은 창이 보여주는 특별한 정서일지. 마을도서관 화장실에 앉아서 보는 손바닥만한 창밖의 경로당 지붕의 기와와 나무들이 마치 한폭의 작은 액자같은 . 그렇다. 넓은 창은 시원하고 널찍한 건너편의 모습들을 여과없이 다 보여준다. 그러나 작은 창이 보여주는 지극히 사적이고 순간적인 풍경들은 흘러가고 있는 시간을 잠시나마 카메라 렌즈안의 순간처럼 찰나의 시간들을 포착하고 각인시켜 주는 차이같다. 그리고 거의 그 순간의 포착이 나를 나의 현재의 순간들을 아름다운 한 폭의 작은 액자로 만들어 주다. 어젯밤에 '도가니'를 보았다. 그 책이 처음 발간되었을 때 읽었는데 그때의 느낌은 뭐 이런 일이 이런 나쁜 사람들이 다 있어, 하며 무진이란 지명이 주는 그대로 어둡고 뿌옇고 앞을 알 수 없고 뭔가 끈적이고 불쾌한 그런 느낌으로 책장을 덮었던 기억이 든다. 그리고 지난 밤에 다시 보게 된 '도가니'는 보다 선명하고 간결해졌고 눈이 확인해 주는 사실성과 가끔은 갑갑해지기도 했던 그래서 더 나았던 영화였다.  에필로그같은 영화의 마지막 메일의 글이 가슴에 남는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후의 느낌을 피해자였던 아이들에게 서선생이 물었더니 "이제는 우리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어요."라는 말.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는. 모호하면서도  생각해보면 참 중요한 말이다. 그리고 서로 마주잡은 손의 온기처럼 온기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 작은 창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안에서 발아되어 가고 있던 씨앗들이 꽃을 피우고 향기를 전하고 꽃이 지고 꽃진 그 자리에 열매 맺는 삶이라는 실천.

 창밖을 보니 여전히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이렇게 눈 내리는 밤이면 배고픈 고양이들의 발자국이 더 선명하게 눈위에 남으리라.

 나의 보드랍고 따뜻한 극세사 양말을 너희들에게 끼워주고 싶은, 춥고 눈 내리는 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