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뚜막
당신은 부뚜막에 살으셨습니다
은주발에 담긴 샘물에
손 비비는 달이
살으셨습니다
새벽이슬이 다디단 첫 물이 될 때
찰랑이는 불빛이 되셨습니다
당신은 이제 지평선에서
얼굴을 묻고
불씨를 불고 계십니까
정지의 아궁이에
타오르는 불빛
그곳에서도 자식 걱정이 있습니까 (P.137 )
- 박형준 詩集,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엄마. 당신은 부뚜막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그곳에서도 자식 걱정이 있습니까' 라는 귀절에 엄마 생각이 많이 나. 우리 아까 미사때 기도속에서 기쁘게 만났지?
엄마 이젠 내 걱정 하지마. 난 그런대로 잘 살고 있어. 어느덧 인생의 쓴맛도 맛볼만큼 맛봤고 그 쓴맛이 전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어. 그래서 나는 이제 조금이나마 삶에 겸손해졌어. 다른 사람들의 고통도 알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 덕분에 나의 작업도 좀 나아졌어.
엄마가 그렇게 사랑했던 프란체스코와 현빈이와 동빈이도 다 잘 있어.
내가 먼 여행을 떠났을 때, 뒤돌아 본 엄마의 손 흔들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그리고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저녁, 나를 기다리던 우리 집의 환한 불빛이 아직도 나를 따뜻하게 살게 하나봐.
엄마가 풀을 먹이고 호청을 꿰맨, 정갈하고 포근한 예쁜 이불은 아직도 그리워. 이젠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이불 대신 가볍고 푹신한 이불을 덮어. 그리고 엄마와 아침마다 마시던 커피도 많이 그리워.
엄마가 늘 걱정하던 내 불같은 성질도 이젠 많이 죽었어. 이젠 그 말이 아무리 바른 말인 것 같아도 남을 아프게 하거나 힘들게 하는 말은 안해. 대신 좀더 용기를 줄 수 있는 말. 위안이 되는 말. 긍정적인 면을 살려 줄 말을 하고 사는 것 같아. 그러니 이젠 걱정하지마.
엄마가 그랬지? 엄마가 없으면 내가 많이 외로울거라고. 그래 많이 외로웠어. 그런데 이젠 나도 나의 외로움으로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안을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해.
나는 늘 엄마에게 자랑스런 딸이었지. 뭐 그렇게 자랑스럽지도 않았지만 엄마에게는 언제나 자랑스러운 딸이었어. 내가 시험에서 실수를 하고 와서 끙끙대면 엄마는, '그깟 시험이 뭐라고 우리 딸이 저렇게 끙끙대나' 더 속상해 했지.
엄마의 멋진 딸 동렬언니도 여전히 시카고에서 잘 살고 있어. 그런데 나는 이제 대단히 멋지게 살고 싶지는 않아. 그냥 소박하게 다른이들과 순박한 기쁨과 슬픔과 연민을 함께 나누며 살고 싶을 뿐이야.
엄마가 떠난 해. 출근을 하려고 경비실앞을 나오는데 화단에 자목련이 활짝, 핀 걸 보고 엉엉 울었어. 우리 엄마가 이 세상에 없는데 꽃은 여전히 저렇게 피고 있구나, 하고 너무 기가 막혀서 울었어. 근데 이젠 담담해. 아, 꽃이 예쁘게도 폈구나 하고. 나 잘했지. 이제 엄마도 그곳에서 편안히 잘 계시리라 믿어. 그러니 엄마도 이젠 내 걱정 하지마. 나 잘 살고 있어 엄마.
엄마.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내 엄마로 가질 수 있어서 너무 고마웠어. 이젠 나도 현빈이 동빈이에게 그런 엄마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 엄마, 아빠랑 행복하게 잘 있어. 알았지?
엄마! "사랑합니다. 그리고 너무 감사합니다."
잘 살다 갈께요. 나중에 우리 다시 만나요. So long, 芝
엄마의 막내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