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에 가끔만 놀러와
고선경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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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시인의 마음이 허세나 예쁜 짓이 아닌 문장을 통한 그 마음이 찰떡같이 와닿는 튼튼하고 청량하고 때론 정직한 봇짐 같기도, ‘제각각의 빛깔을 띠고도 투명한 물방울들‘같기도 하고, 풍덩 소다수로 가득 찬 수영장에 상쾌하게 뛰어들은 느낌의 책. 오랜만에 반짝반짝 찬란한 빛이 깃든 너무 좋은 산문집을 만나, 고온 다습 예정이라는 이번 여름이 무성한 청록 숲에 내릴 시원한 소나기처럼 잘 버티며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고선경 시인의 시 ‘럭키슈퍼‘를 다시 읽는 그런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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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묘묘 방랑길
박혜연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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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와 미스터리가 만난 한국형 판타지 소설. 범상치 않은 외모로 사람의 눈길을 끄는 사로와 호기심 대마왕인 세도가의 도련님이, 첫 번째 에피소드 이후 1년간의 방랑길을 떠나 일곱 번째 에피소드로 막을 내리는 그야말로 ‘기기묘묘 방랑길‘. 언제나 그렇듯이 기담의 존재들은 대부분 손쓸 수 없는 약자들이고, 사건 해결 뒤엔 세상과 사람들의 숨겨진 마음과 진실이 드러나고, 인연의 길에서 존재의 사명과 의미를 찾아낸 이야기라 탄탄하고 애틋하고 즐거웠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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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행 내일의 나무 그림책 5
최은영 지음, 도아마 그림 / 나무의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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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하루를 살아간다. 사람들은 그날의 기억들로 잠자리를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고, ‘기억은행‘ 직원들은 이때부터 오늘의 기억들을 금고에 차곡차곡 보관하고, 사람들이 꿈을 꾸기 시작하면 꿈속으로 찾아가 슬픈 사람들에게 행복했던 기억들을 함께 하며 회복시켜준다. 추억의 힘은 강인하다. 내게 오늘은 파파 프란치스코를 떠올렸고, 별다방 바리스타 달순 씨를 생각했고, 베라 쿼터를 2차 안주로 소주를 마신 양호한 날. 어린이들이나 어른들 모두 좋은 기억들을 많이 기억금고에 쌓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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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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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장사법에서 차별적 요소를 살펴보고, 분투의 장이었던 장례 경험을 육성으로 듣는 시간을 지나, 추모의 공간이 펼쳐진다‘(295). 우리는 모두 예비 고인이고 예비 사별자들이다. ˝죽음에 슬퍼하는 자를 넘어, 그 이후를 살아갈 윤리적 주체˝로 산 사람은 자신을 세운다.(293). 참으로 뜻깊고 유의미한 冊이다. ‘죽은 다음‘ 이후의 전과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오히려 삶이 더욱 진지해지고 산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과제를 주는 책.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읽고 싶은 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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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오월의 너는 마음과 씨름을 하는 사람이다



오월의 너는 목이 간지러운 사람이다



오월의 너는 옷의 주머니를 꺼내보는 사람이다



오월의 너는 한낮에도 꿈을 헤매는 사람이다



오월의 너는 다시 눈부터 움직이는 사람이다



오월의 너는 넘어졌다가 꽃잎을 털며 일어나는 사람이다



오월의 너는 아침 공부를 마치고 새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P.78)







바람의 언덕





그런 언덕이라면

좋겠습니다



구부러진 길

끝에서도 내다보이는



발보다 

눈이 먼저 닿는



중간중간 능소화 얽힌 담벼락 이어져

지나는 사람마다 여름을 약속하는



젖어도 울지 않는



바람도 길을 내어

사람의 뒷말 같은 것이 남지 않는



막 걸음을 배운 어린아이도

허공만을 쥐고 혼자 오를 수 있는



누군가는 밤으로 기억하고

누군가는 아침으로 기억해서



새벽부터 소란해지는   (P.40)







아껴 보는 풍경





어머니는 꽃을 좋아하지만 좀처럼 구경을 가는 법이 없다

지난 봄에는 구례 지나 하동 가자는 말을 흘려보냈고 또 얼

마 전에는 코스모스 피어 있는 들판을 둘러보자는 나의 제

안을 세상 쓸데없는 일이라 깎아내렸다 어머니의 꽃구경 무

용 논리는 이렇다 앞산에 산벚나무와 이팝나무 보이고 집

앞에 살구나무 있고 텃밭 가장자리마다 수선화 작약 해당

화 백일홍 그리고 가을이면 길가의 국화도 순리대로 피는데

왜 굳이 꽃을 보러 가느냐는 것이다 만원 한장을 몇 곱절로

여기며 살아온 어머니는 이제 시선까지 절약하는 법을 알게

된 듯하다 세상 아까운 것들마다 아낀다는 것이다   (P.44)






소일





해가 지면

책도 그늘이 됩니다



두어장씩

넘겨가며 읽었지만



이야기 속 인물들은

아직 친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호숫가 마을에

막 도착한 대목에서

책을 덮습니다



귀퉁이를 잇새처럼

좁게 접어둡니다



바람이 크게 일고

별이 오르는 밤이면



우리가 거닐던 숲길도

깊은 속을 내보일 것입니다  (P.24)






/ 박준 詩集, <마중도 배웅도 없이>에








어쨌든 오월, 바람이 부는.

해마다 다시 오는, 그리운 사람 같은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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