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
인천항에서 낯선 이 포구까지
오는 데 수십 일이 걸린 데다
그 사이 몸은 다 식고
손톱도 다 닳아졌으니
삼도천이나 건넜을까 몰라
구조된 것은 이름, 이름들뿐
네 누운 이곳에
네 목소리는 없구나
집에 가자 이제
집에 가자 (P.66 )
회전 식탁
아이들에게 지구의를 나눠 준 적 있지
지구라도 되는 듯 좋아하던 딸아이 탄성 때문에
진작 사 주지 돌리고 놀게, 원성이 오래 남아
지구의 함께 돌리다보면 하느님이 된 것 같았지
푸른 바닷물이 출러덩, 물고기들도 펄떡
튀어 나오는 것 같았지
빙빙 돌리면 둥글게 넘치는 잔칫상 같았지
지구의를 돌려라 중국집 회전 식탁 처럼
지구의를 돌려라 팔 짧은 아이도 음식이 닿게
지구의가 도는 까닭은
누구도 굶지않는 회전 밥상이 되기 위해서다
아이들아, 지구의를 돌려라 새 지구를
저기, 푸른 식탁이 돌고 있다 (P.87 )
김동협
-2014년 4월 16일 09:10
나 무섭다, 진짜 나,
아, 나 살고 싶어, 진짜 나
나 꿈이 있는데, 나 살고 싶은데,
배가 60도 기울었어,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이쌍! 진짜 욕도 나오고, 울 것 같은데,
아씨, 나 무섭다고, 지금, 씨바, 니가 와바요,
아, 난, 진짜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여자 친구도 없고, 키스도 못 해봤는데,
치킨에 생맥주도 하고 싶은데, 돈 벌어
철근쟁이 우리 아빠 집 사주기로 했는데
마지막으로 라임 하나 뽐내야 ..쿵,
쿠쿠궁 소리 저거 뭡니까? 진짜, 저거 뭡니까?
전기도 나갔어, 아, 진짜, 나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아, 씨바, 빨리 와봐요, 나 살고 싶다구요,
죄송해요, 하느님, 네, 하느님, 살아서 봅시다,
물이 차고 있어, 애들이 자빠지고 있어,
나, 구해달라고,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이 개자식들, 없애버릴 거야,
이런 물길 속에 내가 묻혀? 니들은 날 못 묻혀,
내가 니들 뺨을 쳐? 니들은 내 등을 쳐,
지금 배는 85도, 내 머릿속 온도는 100도,
너흰 지금 무탈? 난 너흴 쳐부술 각시탈,
내가 은장도로 너흴 쳐? 너흴 칠 공수도,
아름다워,
배가 잠기고 있어,
내가 잠기고 있어,
마침표 같은 건 찍지 마, 돌아오고 말 테니,
꺾어도 가만있는 꽃 같은 건 되지 않을 거야,
증언도 못하는 새도 아니고 물고기도 아니고,
반드시 사람으로, 난, 다, 시, 와, 야, 겠, 어, (P.102 )
닻
쇠사슬을 풀어라
우당탕 굉음 질러대며 불꽃 튕기며
지금은 진창에 도끼날 꽂을 때
노도와 같은 질주를 멈추고
바닥에 닿아야 할 때
바람과 햇빛과 말라붙은 흙과 벌건 녹
지난 잔해 토해내며
갯벌 속으로 처박히는 칼날이여
조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흙 칠갑을 해야 하는가
한 바닥에 골똘히 나를 부려
어둠 속 기나긴 배밀이를 견딘 다음에야
밟고 지나가버린 밑창을 들여다보게 되리라
우리가 건너온 아픈 바다의 심중을 (P.109 )
-김해자 詩集, <집에 가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