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밀크랜드의 털실로 짠 호수에서의

           플라잉 낚시

                   -우산꼭지 같은 버섯기둥이 낚아 올린 것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머리카락, 형광연두색 금붕어,

            리시안셔스, 라넌큘러스, 프리지아, 검은 안경, 돼지 모자,

            갸우뚱거리는 고개, 얌체, 숟가락 받침, 스머프 마을, 로렐

            라이, 아르페지오, 접시닦이, 구두코, 빈 라덴, 조각보, 두근

            거리는 심장, 반쯤 마시다 만 얼 그레이 홍차, 너는 왜, 수

            수깡, 시름시름 앓는 병아리, 뉴햄프셔, 아그리콜라, 미친

            흰 수염 고래, 오로라, 스웨덴, 별 모양 사탕과자, 지리멸렬,

            한 번도 말해본 적 없는, 바람 빠진 고무풍선, 유리구슬 세

            개, 바둑알, 나르시시즘, 급진주의자, 대륙횡단열차, 작설

            차, 우롱차, 현미, 오누이, 배꼽 피어싱, 피겨스케이팅, 나이

            팅게일, 오리무중, 플라이 투 더 문, 간이역, 그게 전부가 아

            닌데 전부라고 믿는 병신 쪼다들, 가시 박힌 이마, 소경, 트

            래펄가 광장, 이태리 폰타나, 코인라커 베이비, 툰드라, 참

            나무숲, 난쟁이, 야구공, 너의 예상을 빗나가게 해주지, 중

            학교 국어 선생, 삐둘어진 입, 오르골 소리, 깜박깜박 조는,

            유월의 삼학산, 장마, 깨진 저그, 폭설, 이랑, 장미, 적란운,

            하얀 목련이 필 때, 아로마 캔들, 베르가못, 비옷, 개미가 줄

            줄이 따라오는, 골목길, 나쁜 여자, 카르마, 라흐마니노프,

            트럼프, 집시 바이올린, 물이 마른 계곡에 처음 보는 돌멩

            이, 반려자, 지하보도, 개구리 뒷다리, 피구, 벼룩의 춤, 나

            는 오늘, 로 시작하는 그림일기장, 평화를 위해서라며 불평

            등 조약서에 낙관을 하고 악수를 청하는 손, 흰 손, 사라방

            드, 차가운 발, 함흥, 돗자리, 모닥불, 소라게, 하늘, 꽃, 눈,

            비, 그리고  (P.34 )

 

 

 

 

 

 

 

                늦은 밤

 

 

 

 

 

              누군가 죽었다

              나는 문상을 갔다

              검은 옷을 입고

              망자에 대한

              최대한의 예를 갖추고서

 

 

 

              상주에게 인사를 하고

              생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망자에게

              분향을 하고 절을 한다

              두 번,

              그리고

              반절

 

 

              고사리가 들어간 육개장에

              공기밥을 훌훌 떠먹고

              소주를 두 잔,

              그리고 반 잔

 

 

              흐트러져 있던 신발들이 가지런히 출구를 향해 나 있다

              신발장에 걸린 구두주걱은 쓰지 않고

              천천히 구두를 신는다

 

 

              늦은 밤

              집에도 도착하기도 전에

              허기가 진다

              알타리만 꺼내어

              다시 밥을 먹는다

              오드득, 하고 씹히는 삶.  (P.48 )

 

 

 

 

                -유형진 詩集, <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에서

 

 

 

 

 

 

 

 

 

 

 

                                                                 

문예중앙시선 39권. 유형진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그는 첫 시집에서 아스팔트조차 밟지 않고 모니터만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모니터킨트'들을 대변하며 2000년대 중반 '미래파'의 선두 주자로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두 번째 시집에선 한층 더 심화된 동화적 상상력을 펼쳐내며 알록달록한 유토피아 '랜드 하나리'로 우리를 초대한 바 있다.

그의 시가 어떤 길 하나를 내고, 그 위에 우리의 삶을 자신만의 언어로 담아내려 했다면, 그는 적어도 그 지점에서는 아직 방향을 틀지 않았다. 유형진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언어의 차원에서 자행되고 있는 편견과 권위, 통념을 떨쳐낸 자유로운 상상력의 공간 '허니밀크랜드'를 펼쳐 보인다.

그곳은 환상이나 공상으로 지어올린 허구가 아닌, '지금-여기' 살아 숨 쉬는 생생한 말들의 풍경과 잔치 속에서 빚어낸 독창적인 공간이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낯섦의 거처를 현실의 평면 위로 들어 올린 것이다. 삶의 다채로운 결들에 상상력을 덧입힐 줄 아는 유형진 시인이 그려낸 칼레이도스코프(만화경)의 세계, 그러나 결국 현실인, '있지도 없는 세계'가 지금 이곳에 펼쳐진다.

 

 

 

     이제는 오히려 무감각해진 미친 폭염 속, 여전히 쌓인 일들을 입에 술칠을 하기 위해

     기진맥진 하다가, 선물로 온 冊들과 그 와중에도 또 뭐가 그리 궁금한지 퍽퍽 주문해

     온 冊들을 바라보다가, 아우, 모르겠다. 일단, 여기서 잠시 쉬자 하고 지난번 미팅때

     받은 詩集들 중, 표지도 시원한 '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를 집어들고 발치에 선풍기

     틀고 대자리에 배깔고 누워, 산정캠프의 검은 고양이 띰띰이가... 가늘게 좁혀지는

     동공으로 지을 수 있는 가장 멋진 눈동자로 만족의 화답을 해준, '허니밀크랜드

     의 털실로 짠 호수'를 읽으니 조금 시원해졌다. 냉동실의 멸치만큼 감칠맛은 아니겠지만.

     누구의 것인지 정말 알 수는 없지만, 나에게도 늘 가끔 여전히 마음을 잡아 이끄는 의미들.

     그리고 아직 늦은 밤 아닌 아직 이글거리는 한낮 오후지만, 알타리 대신 나는

     아이스커피의 돌얼음을 오드득, 씹는 어느 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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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6 18: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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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6 20: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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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6 19: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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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6 2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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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7 07: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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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7 08: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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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08-07 07:27   좋아요 1 | URL
절기로 입추가 코앞이면서
저녁과 새벽에는 서늘서늘 시원한 바람이 부는
팔월 첫머리입니다.

오늘 하루도 아름다운 노래로
마음 가꾸셔요~

appletreeje 2015-08-07 08:51   좋아요 1 | URL
예~ 내일이,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시작되는 절기
입추이지요~~
아무리 무덥다 해도 자연의 시계는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듯 싶습니다. ^^

숲노래님께서도 아름다운 노래 부르시면서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고맙습니다~

2015-08-07 1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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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7 12: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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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8 00: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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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8 01: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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