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 하고 수심 오십 미터에서 건져 올렸다는 생물 홍합들

이 이대로는 절대로 포장마차 끓는 물 속으로 들어갈 수 없노라며

입술을 앙다물고 버티시는 바람에 오늘도 목포집 아주머니는 시

퍼런 바다와 싸우느라 구슬땀을 흘리시다

 

-이시영 [홍합] 전문

 

 

 

 내 한 친구는 어떤 상황을 명쾌하고도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이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계곡의 상류는 조용하고 하류는 시끄럽다네. 물이 적으니 소란도 적은 법, 세상사도 그렇지 않은가."

 이 도사(?)가 홍합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홍합 안주를 돈 받고 팔기 시작하면서 인정에서 물질의 시대로 경계가 넘어간 것이지."

 녀석의 해석인지 넋두리인지 모르겠지만 꽤 그럴듯했다. 시장에서 홍합은 여전히 싼데, 술집 인심은 야박해진 것이다.내가 술을 배우던 때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인정의시대였다. 홍합을 흔히 빈자의 굴이라 한다. 값이 싼데 맛은 좋다는 뜻일 게다. 포장마차 주인은 홍합이 담긴 양은대접을 서너번은 더 채워주었다. 홍합을 워낙 좋아했던 나는 그 홍합 안주가 무료라는 사실이 더 불편했다. 돈을 받고 팔았다면 당당하게 먹고 싶은 만큼 시켰을 텐데, 공짜인지라 청하기가 무색했던 셈이다. 그 공짜 홍합에도 예(禮)가 있었으니, 알맹이를 다 까먹었다고 한그릇을 더 청하는 건 예가 아니었다.

 

 

 국물까지 알뜰하게 먹고 난 뒤에야 당당히 추가를 외칠 자격이 주어졌던 것이다. 또 충분히 끓어서 국물이 진득해지기 전에 퍼주는 건 주인의 예가 아니었고, 단골에겐 마지막 홍합을 퍼주는 게 또 예였다. 왜냐하면 홍합을 끓이면 거대한 들통 바닥에 홍합 알갱이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중간한 때 홍합을 받으면 껍질만 수북하고 알맹이가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어떤 포장마차에서는 홍합을 미리 꺼내두었다 주문이 오면 토렴하듯 홍합을 빠트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골고루 분배가 되는 장점은 있었는지 몰라도 알맹이가 말라서 그다지 인기는 없었던 것 같다.

 홍합은 요리법이 간단하다. 그런데 홍합탕 하나 끓이는 데에도 마늘을 넣네 어쩌네, 파는 넣네 안 넣네 말이 많다. 나는 홍합 그대로의 순수한 요리법을 지지한다. 홍합 무게의 절반쯤 되는 물을 넣고 오직 홍합만으로 탕을 끓이는 것이다. 비린내를 잡아준다는 술도 필요없고 마늘이며 파도 의미없다. 더러 후추를 뿌리기도 하는데, 이거야말로 '과공비례(過恭非禮)'(?)다. 홍합은 그냥 홍합 스스로 맛을 내는 희한한 재료다. 그렇게 맑게 끓이면 국물에 청량감이 있고, 시원한 맛이 머리끝에 이른다. 그리고 뒤늦게 감칠맛이 천천히 찾아든다. (P.12~15 )

 

 

 

 홍합은 성을 바꾼다. 생식을 위해서 성을 바꾸는 건 고등동물에서는 볼 수 없다. 홍합은 성을 바꾸어서 개체수를 늘린다. 수컷은 기꺼이 암컷으로 성을 바꾸어서 잉태한다. 이 눈물겨운 결정이여. 홍합은 살을 찌우고 비우기를 반복한다.  (P.12 )

 

 

 

 

 

                                                                            -박찬일, <뜨거운 한입>-에서

 

 

 

 

 

     간밤도 달렸기 때문에, 아직도 약간 어지럽지만 정신 차리자, 생각하며 꺼내 읽기 시작한

     박찬일 님의 <뜨거운 한입>을 펼치자마자 첫번 째로 딱 나오는 이 '홍합'에 대한 글을

     읽으며 흠...흠... 나도 이따 저녁에는 홍합탕을 끓이자. 아무것도 넣지 않고서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비롯해 소중한 님께서 어제 보내주신 네 권의 책들을 짜르륵, 넘겨본다.

     서경식 님의 <나의 조선미술 순례>, 원철스님의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

     좋아하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배우 고바야시 사토미 님의 <사소한 행운>.

     다들 참 마음에 쫙 든다. 오늘은 즐독의 하루를 누리고, 저녁에는 '홍합탕'을 끓이자!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 시집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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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12-17 11:53   좋아요 0 | URL
바다를 넉넉히 품에 안은 짭쪼름한 숨결을
기쁘게 누리셔요~

appletreeje 2014-12-18 09:03   좋아요 1 | URL
예~시원하고 감칠맛 있게 잘 누렸습니다~^^

2014-12-17 1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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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8 09: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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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7 12: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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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8 09: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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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7 14: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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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8 0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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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7 19: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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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8 09: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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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9 16: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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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0 0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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