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대에는 '다른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산업사회 이후, 더 정확히는 체르노빌, 후쿠시마 이후에도 인류에게 희망은 남아 있을까?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마땅히 필요한 위기의식이 실종된 땅에서도 문학이 가능할 수 있을까? 도덕의 파탄과 붕괴 속에서 불가피하고 당연한 일이지만, 문학도 지리멸렬해지고 풀이 죽었다. 산업사회 붕괴 이후 총체적 도덕의 파탄을 응시하고 괴로워하지 않으면서 생산된 문학도 과연 문학일까? 문학의 파탄은 윤리와 위기의식, 죄의식의 실종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인권선언문 작성에 참여했던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출신 지식인 스테판 에셀은 만년에, "인간으로서의 책임이 이제는 인간 가족에게만 해당 되는 게 아니다. 새로운 형제애를 자연에 대해서도 발휘해야 한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1948년 인권선언문을 작성할 당시에 그는 '마치 그런 책임까지는 인식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그때는 자연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였다"고 덧붙이며 "이제부터는 초록, 태양, 동물이 없어지지 않고 살아남도록 행동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술회했다(스테판 에셀 외,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 돌베개, 2012, 21쪽). 이 나라 문학은 이 나라의 보통 사람이나 이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도처의 주류들과 똑같이 '초록'이나 '태양'이나 '동물들'에 대해 오늘도 아무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억지스럽게 단언하자면, 내 나라는 한 프랑스 지식인이 자신의 체험으로 회고한 '1948년 이전'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환경 단체까지 만들게 된 나는 '우리 모두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느냐고 호소했다. 더 이상 무례하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요새의 부리는 수천 년 동안 부드러운 갯벌을 파헤칠 수 있도록 뭉툭하게 진화했다고 말했다. 그 부리와 갯벌과 우리 삶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살처분은 우리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짓이라고 슬퍼했다. 지렁이가 살 수 없으면 우리도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자각이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운동은 북극의 빙하가 녹았으므로 새로운 항로가 생기고 물류이동 비용이 절감되었다고 환호작약하는 이들에 의해 처절하게 외면당했고, 나는 다시 순진한 열정의 얼굴로 희망을 말하기 힘들어졌다. 그러다 문득 하염없이 슬프지만 언제나 당당하고 시원스러운 김수영의 시를 만났다. '문명에 저항하려면 너 자신이 문명이 되라'는.

 내게 문명은 도시가 아니라 시골에서 고향을 만들거나 풀을 뽑아 거름을 만드는 것이었다. 푸르고 어린 것들을 조심스럽게 심고 그것들이 자라는 것을 놀라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겨워하는 일이었다. 일 년 내내 땔감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러기를 아홉 해째, 밭둑이나 강둑에 앉아 나는 절망이 나의 전부를 꺾지는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9~11 ) / 작가의 말

 

 

 

 

                                                       -최성각 생태소설집, <쫓기는 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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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8-24 09:18   좋아요 0 | URL
즐겁게 살아가며 새로운 하루를 기다리고
새로운 하루 찾아들면서
날마다 즐겁게 사랑을 꽃피우겠지요

appletreeje 2013-08-24 13:35   좋아요 0 | URL
예~개개인이 저마다 성화되면
온 세상이 다 성화되리라 믿습니다.

2013-08-24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4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4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5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