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
프라하 변두리 동네 늙은 주부들은
부엌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다가
공장에서 일 마치고 돌아오는
북한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창밖에 보이면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프라하 변두리 동네 늙은 주부들은
젊은 시절 각종 공장에 다녔을 적에는
고삐 잡힌 말이나 소처럼 무표정하게 움직이는
북한 젊은 여성 노동자들과는 달랐다고 생각했다
집단으로 거주하고 집단으로 외출하고
집단으로 감시당하는 북한 젊은 여성 노동자들,
이따금 해가 저물기 전에
혼자 마켓에 가서 쌀을 사 들고 오다가
잠시 잠깐 노을을 향해 고개 돌리는
한 북한 젊은 여성 노동자를 볼 때면
아직도 공산주의 국가라는
그들의 조국이 어떤 나라인지 궁금해하는
프라하 변두리 동네 늙은 주부들은
체코가 공산주의 국가였던
그 나이 때에 시름겹기는 했어도
출퇴근길엔 갸르르거리며 재잘거렸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P.56 )
행복한 시대에
북한에서 외국으로 노동자를 보내어
돈 벌어 오게 할 거라면
남한으로 보내주면 훨씬 낫겠다고
채수봉씨는 생각한다
아침마다 남한으로 출근시켰다가
저녁마다 북한으로 퇴근시키면
장기간 가족과 떨어지지 않아도 되니
외롭지 않을 테다
공장이 너무나 작은 탓에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오려고 하지 않아서
납품 일자를 맞추지 못해 애가 탈 때면
사장 채수봉 씨는 생각한다
외국인 노동자보다도 임금이 싸고
말을 알아듣는 북한 노동자들을
공장에 보내준다면
쌍수를 흔들겠다
특근수당이나 잔업수당을 많이 준다 해도
북한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라면 해볼 만하다고
채수봉씨는 계산한다
돈을 남들보다 더 벌어야 행복한 시대에
남북한 당국의 입장에도
남한 사용자의 입장에서도
북한 노동자의 입장에서도
절대로 손해 보지 않을 사업인데
다 같이 원하지 않는 게 이해되지 않을 뿐 (P. 92 )
은근히
베트남에서 시집온 젊은 부인 로안씨는
한국에 쉽게 입국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옆방에 홀로 사는 중년 여인 박숙희씨가
북한을 탈출하여 베트남까지 갔다가
한국에 어렵게 입국했다는 걸 알았을 때
로안 씨는 이국인인 자신과
동족인데도 이방인 취급받는 여인이
한 집에 세 들어 산다는데 안심했다
로안씨는 너무 가난해서
친정 식구를 돕기 위하여
박숙희 씨는 너무 가난해서
굶어 죽지 않기 위하여
한국에 왔다는 걸 아는 데는
둘 다 여전히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기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베트남에선 아사한 주민이 있었다는
뉴스를 들어 본 적 없어서
로안 씨는 은근히 자랑스러워했다. (P.106 )
-하종오 詩集, <세계의 시간>-에서
-요즘에 와서 나는 시를 쓴 뒤에 그 시의 바깥과 그 시의
너머로 가서 살아야 하고, 그 곳에 끝없는 서사와 서정,
수많은 사실과 허구가 있으니 그것을 또 시로 쓰려면
꽉 차고 텅 빈 마음을 지탱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인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