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큐베이터 애호박
길이와 굵기가 같은 애호박
채소 가게에 진열되어 있다
휘어지지도 울퉁불퉁하지도 않은 애호박
어릴 적부터 인큐베이터 비닐 속에서 자라서란다
답답한 비닐 감옥 속에서
속으로 얼마나 휘어졌을가
속으로 얼마나 울퉁불퉁해졌을까
상처 난 곳도 없는 애호박
쭉쭉 몸짱 애호박
엄친아 애호박
기계로 찍은 듯한 애호박
애호박을 잡는 순간 전기가 통한다
휘어지고 울퉁불퉁한 내 속마음이 꿈틀댄다 (P.109 )
면회
엄마가 면회를 왔다
사식으로 주스와 과일을 넣어 주었다
지은 죄도 없이 나는 갇혔다
몇 번 항소를 해 보았지만
나를 변호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곳에서 나는 문제 푸는 노동을 한다
노동은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는다.
탈출은 꿈도 꾸지 못할 일
사방이 감시 카메라다
출소일은 수능 보는 날
망치면 또 갇힐 것이다
화장실을 가다가 소파에서 졸고 있는
엄마를 봤다
교도관 복장을 하고 있다
누워서 자지도 못하고 꾸벅꾸벅 존다
엄마도 나처럼 갇혀 있는 것이다
지금은 내가 엄마를 면회하는 시간이다
이불을 덮어 주었다
우린 지은 죄도 없이 갇혀 있다 (P.66 )
친구의 산
내 앞에 앉은 친구는
꼽추다
쉬는 시간 책상에 엎드려 잘때 보았다
산처럼 생긴 혹
에베레스트 산보다 험난해 보였다
키는 작지만 꿈은 큰 친구
수행평가로 자신의 꿈을 발표할 때
높은 산으로 보였다
의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밤늦도록 공부를 한다는 친구
산이 산을 오른다 ( P.100 )
나는 지금 꽃이다
팔랑팔랑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 같다
사각사각
미용실 누나 손에 들린 은빛 가위
붙었다 떨어졌다
내 머리 주위를 날아다닌다
풀풀 날리는 꽃가루
살랑살랑 나는 은빛 나비
나는
지금
꽃이다 (P.43 )
-이장근 청소년시집, <나는 지금 꽃이다>-에서
지금 우리 아이들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詩集이다.
선생님 부탁합니다, 자마자, 사춘기 신화, 꿈속의 꿈, 심청뎐, 면회, 친구 면접
안전빵, 돈벌레, 금단 현상, 파란 장미의 노래, 전봇대 나무, 그리고..꼭.
우리 아이들이, 인큐베이터 애호박처럼 자라가고 있는, 어른들이 잘 못
만들어 버린 세상이 부끄럽고 미안하기만 하다.
그래도, 아이들은 '내게는 큰 나무 되라 하지만/ 난 넝쿨이 되고 싶다/ 전봇대를
감고 올라 전봇대와 함께 푸르고 싶다.' 말한다.
'팔랑 팔랑/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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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금/ 꽃', 인 것이다. 고맙다.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