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기린의 말'을 읽다가, 맨 마지막 최일남의 '국화 밑에서'를 읽으며 온갖 잡설(雜舌)과 부유(浮游)의 마음이 쿵, 쿵 달아나 버린다. 좋은 소설이란 아마, 이런 것일 것이다.
1932년 전북 전주 출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수료. 1953년 <문예>에 단편 <쑥 이야기>추천. 1956년 <현대문학>에 단편 소설 <파양>이 추천되어 등단. 소설집 <흐르는 북> <서울 사람들> <타령> <아주 느린 시간> <누님의 겨울>, 장편 소설 <거룩한 응달> <숨통> <만년필과 파피루스> 등 다수. 월탄 문학상, 한국소설상, 한국창작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수상.
최일남 작가의 소설들을 다시 찾아서 천천히 잘 읽어 봐야겠다.
문득, 녹두죽에 식혜를 끼얹어 먹고 싶다.
윤재철 시인의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노래가 맞춤한
예다.
'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술값은 쟤들이 낼 거야/ 옆자리
앉은 친구가 귀에 대고 소근거린다/ 그때 나는 무슨 계시처럼/
죽음을 떠올리고는 빙긋이 웃는다/ 그래 죽을 때도 그러자/ 화
장실 가는 것처럼 슬그머니/ 화장실 가서 안오는 것처럼 슬그
머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할 것도 없이/ 빗돌을 세우
지 말라고 할 것도 없이/ 왁자지껄한 잡담 속을 치기배처럼/
한 건 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면 돼/ 아무렴 외로워지는 거야/
외로워지는 연습/ 술집을 빠져나와/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거
리 걸으며/ 마음이 비로서 환해진다'. (P.381)
윤재철의 한 마디
내일이면 첫서리가 내린단다. 산간에는 얼음이 언단다.
이제 작별을 고하마. 잘 가거라 나팔꽃이여
너를 땅속 어둠으로 다시 돌려보내며
나도 겨울 들판으로 난 쪽문을 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