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義마을에 가서

 

 

 

             겨울 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다다른 길이

             몇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이 세상의 길이 신성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小白山脈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빈부에 젖은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끼고 서서 참으면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도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文義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무덤으로 받는 것을.

             끝까지 참다

             죽음은 이 세상의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 본다.

             지난 여름의 부용꽃인 듯

             준엄한 正義인 듯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文義여 눈이 죽음을 덮고 나면 우리 모두 다 덮이

            겠느냐.

 

                 * 文義: 忠北 淸源群의 한 마을. 지금은 大淸댐에 가라앉았다.  (P.49 )

 

                                               - 고은 시선 , <어느 바람>-에서

 

 

 

 

        시인의 말

 

 

 

         왜 시를 쓰느냐고 묻는다면 아직도 그 대답을 마련하지 못

        하였다.

         여기까지 오는 길 44년을 나는 어설픈 농부였고 새였고 울

        음의 무당인가 하였다. 그러는 동안 말이 종교였다.

 

         시가 오지 않으면 흙을 팠다. 흙 속에 시의 넋이 더러 묻혀

        있다가 내 몸에 떨며 들어왔다.

 

         바람이 부는 날 잔 터럭이 일어나며 나는 이내 가지 끝을 차고

        날아올랐다. 공중에 시가 여럿이 더 있었다. 스치다가 한둘은

        우연히 쪼아먹었다.

 

         자주 미쳤다.

 

         운다. 울음이나 졸졸 가는 도랑물이나 강물 그리고 천년 절

        벽 때리는 파도기둥이나 다 한 집안이다. 흰 포말의 춤, 시가

        거기에 함께 있더라.

 

         세상을 좀 넓히련다. 훨훨! 이승에만 걷혀 있지 않으련다.

 

                                                              /  2002년 8월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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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3-01-21 19:32   좋아요 0 | URL
놀라워요. 트리제님은 시집을 하루에 한 권씩 읽으세요?! ㅎㅎ
고은 시인의 시는 역시 좋군요.

appletreeje 2013-01-21 20:21   좋아요 0 | URL
아니예요~~그양~~오늘 이 詩가 생각나서요.^^
제가 10대때부터 좋아한 시에요.
이진님! 좋은 밤 되시구요~~^^

2013-01-21 21: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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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1 21: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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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3 18: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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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4 15: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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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2 17: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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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2 23: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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