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식 백반

     -주역 시편.1

 

 

     나비에겐 골육이 없고 
     작약꽃에겐 위와 쓸개가 없다. 
     골육과 위와 쓸개를 가진 
     나는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나비에겐 나비의 하루가 있고 
     모란꽃에겐 모란꽃의 근심이 있을 테다. 

     눈 내린 이른 겨울 아침 
     소년과 소녀들은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햇살로 물든 금빛 침상에서 
     소년과 소녀들이 꾸는 꿈들 때문에 
     이토록 세상이 빛난다. 
     어른인 나는 어른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초저녁 신성들을 풀지 못한 채 
     이렇게 마른 나무 등걸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후회를 씹어본다. 

     눈길을 걸어서 식당으로 가는 길, 
     가정식 백반을 파는 식당은 은하의 저쪽에 있다. 
     청양고추 하나를 된장에 푹, 찍어 먹는 
     눈보라 치는 이 아침, 
     가정식 백반 일인분을 먹는 
     내게는 가정식 백반의 근심과 기쁨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장석주 시집, <오랫동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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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2-01 13:31   좋아요 0 | URL
아, 이 시집 표지느낌부터 참 좋아요.^^
담아갈게요.^^

appletreeje 2012-12-02 23:27   좋아요 0 | URL
저도 표지느낌부터 좋았던 시집이었어요~~^^
저녁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목의 어느 식당의 유리코팅에 '가정식 백반'이라 적혀있는
글자를 보니 또 이 시가 생각났었지요. 지극히 사적인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