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식 백반
-주역 시편.1
나비에겐 골육이 없고
작약꽃에겐 위와 쓸개가 없다.
골육과 위와 쓸개를 가진
나는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나비에겐 나비의 하루가 있고
모란꽃에겐 모란꽃의 근심이 있을 테다.
눈 내린 이른 겨울 아침
소년과 소녀들은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햇살로 물든 금빛 침상에서
소년과 소녀들이 꾸는 꿈들 때문에
이토록 세상이 빛난다.
어른인 나는 어른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초저녁 신성들을 풀지 못한 채
이렇게 마른 나무 등걸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후회를 씹어본다.
눈길을 걸어서 식당으로 가는 길,
가정식 백반을 파는 식당은 은하의 저쪽에 있다.
청양고추 하나를 된장에 푹, 찍어 먹는
눈보라 치는 이 아침,
가정식 백반 일인분을 먹는
내게는 가정식 백반의 근심과 기쁨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장석주 시집, <오랫동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