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운 받아 둔 '휴먼다큐, 사노라면'을 보았다.

 경남 통영에서 뱃길로 한 시간 남짓 들어간, '알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한 곳'이라는 地名의 섬 욕지도에 사는 특별한 두 모녀의 이야기다. 그녀들이 사는 곳은 섬에서도 가장 끄트머리 바다와 맞 닿은 곳, 인근 마을에서도 뚝 떨어진 버스도 다니지 않는 오지이다.

 머리를 삭발을 한 이들의 이름은 최숙자(72세)와 윤지영(41세).

 그녀들이 사는 곳엔 꿈의 궁전같은 흙집에 하얀 페인트까지 더해져 묘한 분위기를 내는, 아름다운 집들이 버섯같은 담장을 따라 여러 채가 있었다.

 아침 6시 모녀의 하루가 시작된다.

 딸은 망치로 바위를 깨트리고 엄마는 그 바위를 다시 망치로 깨고 흙을 개고 집을 짓는 하루이다.

 어느 날은 유일한 수입원인 고구마를 캐는데, 이번 수확은 태풍으로 인해 거의 팔 것이 없다. 그래도 엄마의 얼굴은 "빨간 흙에 자란 빨간 고구마. 빨갛게 열량 높아 겨울 추위 이긴다네. 달콤한 고구마는 내 고독을 위로하네 아 멋져부러! 멋져부러~" 해맑기 그지 없다.

 그녀들이 이 섬에 들어온 지도 15년이 지났다 한다.

 딸 윤지영씨가 대학 4학년때, 위암 말기 3개월 판정을 받았다. 그때까지 부산에서 평범하고 단란한 주부였던 엄마는 딸을 살릴 거라며 모든 생활을 접어두고, 딸 손 붙들고 아무 연고도 없는 이 섬으로 들어 왔다. 부산에서의 사진을 보면 이들은 아주 '패셔니스트' 멋쟁이들이었다.

 숟가락도 하나 없이 그냥 맨몸으로 입은 옷 채 그대로 들어 왔는데,  잡초가 키만큼 자라고 뱀과 지네, 벌레들만 많은 그 곳에서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딸을 위한 집을 짓는 일이었다.

 "예쁜 집을 지어 하나님께 드려서 내 딸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만들었던 집. 집과 그 안의 아기자기한 조형물들은 딸을 살려달라는 엄마의 마음 그 자체이다. 처음에는 망치사용도 몰라 숟가락으로 바위를 부수고 . 공사장에서 돈이 없어 40kg 세멘트 한 포를 얻어 둘이 20kg씩 머리에 이고 6, 7시간을 걸어 돌아왔다 한다. 건축에 대한 어떤 지식도 갖고 있지 않았던, 집 짓는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험난하고 고된 여정으로 지어진 집들. 하루 하루 고된 여정에 기적이 일어났다. 1년 전 대학병원에서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계속 집을 짓는다.

 저녁이 오자 딸이 "엄마~오늘 저녁 메뉴는 뭔데?" 묻자 "먹고나면 만병이 통치되는~" 엄마의 답에 딸이 또 "아~정구지 총총 썰어서 고명 얹힌 맛있는 '국시'?" 하니 "땡큐 땡큐 땡큐~그거 한 그릇 먹고 나면 만병이 통치하는 국시야~" 또 답한다. 이들의 얼굴은 마치 천진불같이 웃음꽃이 함박.

 "'국시'와 '국수'의 차이는?" 딸이 묻자, 엄마는  "'국시'는 순박한 사람들이 배가 고파서 맛있게 먹는게 '국시'고 '국수'는 도회지 사람들이 별미로 어쩌다 한 번 씩 먹는거~" 답하는 모녀.

 이 곳은 도시가스가 들어 오지 않아 전기밥솥에 국수를 끓인다. 수도관도 연결 안돼 1년 반 동안 직접 우물을 파 물도 끌어다 쓴다. 정말 부추만 들어 있는 국수지만 그녀들은 "하루종일 일했네. 숨도 못 쉴 정도로 그래도 나는 이 세상이 행복하네. 맛있겠다~땡큐 땡큐 땡큐"하며 행복한 저녁을 먹는다. 리포터가 왜 땡큐땡큐 땡큐하시느냐 물으니 엄마는, "땡큐밖에 남은 게 없어."  누구한테요 물으니 "하늘에 계시는 분께" 하신다.

 치유가 되었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처음에 들어와 먹을 게 없어 남들이 버린 영양분이 다 빠져 나가 버린 씨고구마 '무광'만 3년 먹고 살았더니 영양부족으로 치아가 다 빠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봄에는 쑥 캐 먹고 냉이 캐 먹고 달래 캐 먹고 고들빼기 캐 먹고 여름에는 상추 먹고 배추 먹고 가을 되면 고구마 먹고 먹을 거 많네~ 진수성찬이야~"하며 행복해 한다.

 저녁에 한 달에 한 번 머리를 깎는다. 신문지를 펼쳐 놓고 엄마가 머리를 아래로 숙이면 딸이 이발기로 능숙하게 엄마의 머리를 깎아 드린다. 이발기가 생기기 전엔 가위로 잘랐다 한다.

 머리를 삭발하는 이유를 묻자, 딸이 암말기에 혼자 머리 빠지는 게 꼴보기 싫어서 엄마도 깎았다 한다.

 "근데 요즘은 홀랑 자른 스타일 억수로 좋아~편하고. 이태리 타올에 비누 문디가 싹싹 문지르면 얼마나 좋아 깨끗하고." 또 아이 같이 웃음 짓는다.

 서로가 있어 행복하고 소중한 꿈이 있어 즐겁다는 욕지도 모녀 최숙자씨와 윤지영씨를 보며 놀랍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고 많은 감회에 젖는다.

 그녀들은 요즘도 여전히 하루의 대부분을 집을 짓는다. 흙을 만지고 쇠를 다루니 손톱도 다 문들어지고 늙은 노모의 손은 관절염으로 고통이 심하지만 그들은 집짓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기적을 만나고 그 기적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다.

 또 하루가 저문 저녁.  엄마를 위해 딸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둘은 서로의 부은 발과 손을 어루만져 주며 서로의 얼굴을 지극하게 바라보며 얘기한다.

 "내 나이 칠십이네. 이제 하늘나라 갈 날짜가 얼마 없네. 엄마 오래오래 살아야 될긴데. 니 놓고 갈 순 없잖아. 오래오래 살아야 할텐데." "엄마 혼자 가지마" "응 혼자 안간다. 엄마 오래오래 살다가 같이 가자." 딸의 얼굴을 자꾸 어루만진다.

 요즘은 가끔 소문을 듣고 찾아 왔던 사람들이 와서 집짓는 일을 도와 주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모녀의 하루 대부분의 일이다.

 모처럼 마을로 나온 모녀는 맨 처음 이 섬에 들어 왔을 때부터 친구와 은인이 되어준 귀한 이웃들을 찾아 가고 그들 역시 섬에선 귀한 과일을 내 주며 숟가락도 함께 주는 세심한 정을 준다. 이가 없는 모녀를 위한 마음의 정인 것이다.

 바다를 바라 보며 딸과 엄마는 또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앞으로 십 년이면 다 짓겠다." "그래도 힘은 들어. 두번은 힘들 것 같애." "요번만 성공하면 돼. 두 번 할 필요 없어. 좋아~좋아~좋아"  "엄마하고 같이 있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아~맞아~맞아~맞아. 우리 둘이면 이 세상에서 못 할 게 없다."

 "앞으로 10년 동안에 예쁜 사랑의 동산을 만들어서 대한민국 외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놀이터를 만들거예요. 땡큐~땡큐~땡큐~"

 이 다큐를 다 보고 나니 정말 사람에겐 '사노라면' 어떤 특별한 삶도 다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 특별한 순간에 어떤 모습의 삶을 이끌어 가냐는 숙제는 각자의 선택이며 최선이 아닌가 한다.

 희망을 주제로 펼쳐진 다큐였지만, 문득 이 최숙자씨와 윤지영씨의 삶은 너무 많은 것을 사유케 했다. 종교를 넘어 며칠전에 읽은 불필스님의 '영원에서 영원으로' 에서의 수도팔계(修道八戒)도

떠오르고 불필(不必)도 떠올랐고 나 자신의 삶에 대한 물음도.

 욕지도에는 오늘도 하루하루가 고행이지만 여전히 행복한 두 천진불이 살고 계신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댓글(4) 먼댓글(1)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효주 2012-10-18 21:3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이거 지금 보고 있는데 너 무 엄마께서 천사같으시네여',

    appletreeje 2012-10-18 23:09   좋아요 0 | URL
    정말 천사같으시죠~? 이 다큐 보고나서 며칠동안이나 자꾸 마음이 어릿어릿 했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요.

    숲노래 2013-03-29 23:51   좋아요 0 | URL
    내려놓을 것 내려놓고
    붙잡을 것 붙잡으면
    누구나 날마다 하늘나라 아름다운 사랑누리가 되겠지요.

    내려놓을 것 안 내려놓으니
    붙잡을 것 안 붙잡으니
    다들 몸이 아프고 일찍 죽고 마는구나 싶어요.

    시골살이 참 재미난데
    도시사람은 시골을 너무 모르는지 아예 생각이 없는지
    도시 떠나 시골로 올 생각 거의 없는 듯해요.

    오늘도 고운 밤 지나갑니다.
    appletreeje 님도 곱고 예쁜 하루 누리셔요.

    appletreeje 2013-03-30 10:00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오늘도 감사합니다.~~^^
    함께살기님도 곱고 예쁜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