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축제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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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루히요가 31년 전 도미니카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것, 즉 자유의지를 가질 때만 비로소 커피 한 잔이나 럼주 한 잔도 더 맛있게 음미할 수 있을 것이었고, 담배 연기와 무더운 여름날의 수영, 토요일마다 보는 영화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메렝게 음악, 이 모든 게 육체와 정신에 더 좋은 느낌을 선사할 것이었다'.( 1권 252쪽 )

 

 독재자가 지배하는 모습과 논리는 어디서나 언제나 이리도 비슷한 걸까? 읽는 내내 우리의 역사와 오버랩되었다. 

 

 이야기는 다섯 부류의 사람들이 펼쳐나간다. 독재자 트루히요, 독재자 주변에서 특별 혜택을 받고 사는 기득권을 지닌 상류층 사람들,  트루히요가 만들어낸 환상과 현실적으로 배부름에 만족하는 대다수의 국민들, 독재와 인간성 말살에 저항하며 결국 트루히요의  암살을 꿈꾸는 사람들,  트루히요 가장 측근이었고 그 시대에 많은 것을 누렸지만 결국 몰락하고만 상원의원 카브랄의 딸, 우라니아. 1권 처음 부분은 다소 복잡하게 얽힌 시간과 인물들로 인해 읽기에 조금 적응이 필요하다. 또한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이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어 갈수록, 특히 2권에서는 엄청난 흡인력으로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행복했다.하느님이 용서해줄거라고 믿었다. 임신 6개월 된 올가와 루이스 마리아노를 두고 떠난 걸 용서할 것이다. 하느님은 트루히요가 죽더라도 그가 얻을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그런데 이런 빌어먹을 짓에 가담하는 바람에 그는 자신의 자리와 가족의 안전을 위태롭게 했던 것이다.......그는 이 모든 걸 하느님이 이해하실 것이고 자기를 용서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2권 98쪽 )

 

  결국 독재자 트루히요는 암살당했지만 독재자 암살에 가담했던 사람 중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독재자는 죽었지만 독재자의 그림자가 사라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서서히 새로운 역사의 시대로 진입한다. 시간은 더디고 그에 따른 또 다른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현실은 오히려 소설보다 잔인한 것 같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자신의 탐욕과 독재자의 언저리에서 차지한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부인, 아니 딸까지 트루히요에게 바칠 수 있는 기득권층. 자신의 판단 가치관 모두 보류한 채 독재자의 생각과 손끝에 전부를 걸고 살아간다. 반면 가족의 희생과 죽음까지 불사하며 목숨 바쳐 트루히요를 암살하는 사람들. 그로 인해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재산과 목숨까지 잃게 된다. 그런데도 인간성 회복을 외치며 독재 시대의 청산을 위해 생을 마감한다.

 

 트루히요가 살아있는 시대에 사람들은 비교적 분명한 가치관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독재자의 그림자만 남아 있는 시대는  혼란스럽다. 그림자에 지레 질식하여 스스로의 판단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과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모른채 시간을 맴돈다. 31년 독재의 그림자는 사라지는데 긴 시간과 휴유증을 남기고  독재자가 사라진 세상에서도 사람들을 통치한다.  대중들 스스로가 그것을 허락함으로서.....

 

 이 소설의 가장 핵심 인물인 카브랄의 딸 우라니아. 카브랄은 독재자 트루히요에게 자신을 바쳐 평생을 충성했지만 어느 순간 이유도 모른채 내침을 당하자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14살의 딸, 우라니아를 70대인 트루히요에게 바친다. 영문도 모르고 갔다가 영혼까지 상저입은 우라니아는 35년간 아버지는 물론 친척들과도 관계를 끊는다. 독재 시대에서 더 인간성을 말살당하는 여성의 이중적 고통을 그리고 있지만 우라니아는 최상류층 출신의 뛰어난 외모에 지적인 재능까지 겸비하고 운도 무척 좋아 미국에서 공부하며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여성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소설의 축이자 이 소설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문득, 나를 둘러싼 현실을 읽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구 반대편이라는 지리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염소의 축제( 우리의 정서와 조금 다른 염소에 대한 이미지가 낯설지만 )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또한  재미있지만 가볍게만 읽을 수 없는 소설이다. 며칠 지나면 다시 일상에 파묻혀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아갈 거다. 하지만  작가의 뛰어난 역량 덕분에 잠시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 인간성, 인간 존중에 대해 생각했고 현재의 우리 사회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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