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부님, 쫄리 신부님 -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이야기 스코프 누구누구 시리즈 5
이채윤 지음 / 스코프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베풂과 나눔을 몸소 실천한 이태석 신부님의 카톨릭 세례명인 존(john,요한)과 신부님의 성씨인 이(Lee)를 합치면 "존리" 빠르게 부르면 쫀리,쫄리가 된다.아프리카 내전이 23년간 지속되고 있는 곳 남수단의 톤즈마을에선 신부님을 쫄리신부님이라고 부른다.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하여 병원을 짓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하여 학교를 짓고 35인조 브라스밴드를 만들고 한센병과 결핵,파상풍,소아마비,홍역,볼거리,백일해의 병들에 노출 되어서 죽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던 톤즈마을에 예수님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한다.

이태석 신부님은 어릴때부터 수학을 재미있어하고 음악에 재능을 보였으며 10남매의 아홉째로 태어나 말썽한번 피우지 않고 책을 좋아하고 피아노 소리에 매료되어 성당의 풍금을 혼자서 배우며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합창대원으로 성가대원으로 작사 작곡을 하며 하나님의 주신 아름다운 소리들을 들을 줄 알며 어머니의 고생하심에 감사할줄 아는 신중하게 행동하며 사려깊은 아이로 자라갔다. 어머니의 뜻에 따라 의사가 되려 했지만 군의관으로 제대후엔 하나님의 음성을 뿌리칠 수 없노라며 신부의 길을 걷게 된다.중학교 1학년 성당에선 본 <몰로카이의 성인>이라는 영화(19세기 말 태평양의 외딴섬 몰로카이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바친 다미안 신부의 생애를 그림)를 보며 큰 감동을 받고 다미안 신부님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신부님은 살레지오 수도회에 입회하여 광주카톨릭을 거쳐 이탈리아 신학에서 공부하고 로마교황청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늦깍이 신부가 된다. 방학을 이용해 케냐와 수단을 찾았을때의 충격과 다미안 신부님을 떠올리며 자신이 꿈꾸었던 미래를 떠올리고 결국 30년을 남수단에서 활동해 오신 제임스 신부님을 만나 수단 톤즈마을에 이르러 그들과 같이 생활하기에 이른다. 2년에 한번씩 휴가라는 명목으로 한국에 들어와서도 그는 쉬지않고 톤즈 마을의 필요를 알리며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며 자신이 배워야 할 부분들을 배우기에 시간이 늘 부족하다. 그런 그에게 대장암 말기라는 결과가 나왔다.항암치료 중에도 톤즈마을을 잊지않은 우리의 쫄리 신부님은 1년동안의 투병중에도 수단의 아이들에 대한 지원을 호소하며 희망을 놓지 않았다.쫄리신부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톤즈는 눈물바다를 이루었고 선종 1주기엔 돈보스코 학교에서 추모미사를 드리고 라디오에선 미사가 생방송이 되었다.  

이웃이라는 개념을 넓게보고 지구촌이웃을 삶속에서 보여주신 이태석 신부님의 철학을 생각하면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 감사할 줄 아는 모습으로 하루하루의 기적같은 생활에 감사함을 잊지 않아야 겠다.누구보다 내가 먼저 그리고 우리가 모두 지구촌이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개인주의에 푹 빠진 현대인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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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07-0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